반쪽짜리 달을 품은 곰

국립공원 야생생물보전원 야생동물의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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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실습후기 공모전 [우수상] 제주대 수의대 김민석

야생동물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반려동물, 산업동물과 비교하여 온전히 동물의 습성과 삶을 고민하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상적인 생각에 그칠 뿐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끊임없는 고민에 빠졌다. 백문불여일견의 마음으로 관련 분야를 직접 눈으로 담고 경험해 보고자 했다.

야생동물 분야에서 ‘종 복원’은 야생동물의 공존에 굉장히 큰 능동성과 실천성을 가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종 복원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종 복원이 야생동물 분야에서 어떤 역할과 의의가 있는지 막연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반달가슴곰 복원을 다루는 지리산의 야생동물의료센터를 방문하였다.

국립공원 야생생물보전원 야생동물의료센터는 공식적으로 실습지원을 받지 않는다. 직접 야생동물의료센터에 문의하여 실습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실습 첫날 경의범 수의사님이 센터를 전반적으로 소개해주시면서 시설도 안내해 주셨다. 야생동물의료센터는 크게 2가지 업무를 진행한다. 반달가슴곰의 번식 연구와 야생동물 구조 및 치료다.

전자의 업무를 다루기 위한 수술실·부검실·조직병리실·방사선실이 있었다. 다양한 실험실 진단 장비도 구비하고 있었다. 외부에는 곰을 위한 계류장이 A, B동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큰 규모와 잘 정비된 시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후자의 업무를 위해서는 진료실과 내·외부 계류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대감과 설렘으로 야생동물 의료센터에서의 실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야생동물의료센터에서의 업무

2018년 반달가슴곰 인공수정의 첫 성공 이래 현재는 동결 정자를 활용한 인공수정을 연구하고 있다. 인공수정 연구 특성상 다량의 정자 샘플이 필요하다.

곰의 발정기는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오는 계절 발정이지만 유도 배란, 지연 착상, 가성 임신과 같은 특유의 생리 주기로 인해 발정 주기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계류 곰을 모니터링하면서 수컷 곰의 정액을 채취하고 암컷 곰의 발정기 판단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1) 기본 모니터링

기본 모니터링은 채혈에서 시작된다. 경의범 선생님과 채혈을 하러 나섰다. 철창 너머에 있는 곰을 마취 없이 채혈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철창 가까이 나무판자를 놓으니 거대한 손을 내밀며 채혈을 자처하는 모습에 경탄했다.

손을 내미는 행동과 꿀물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연결 지은 긍정적 강화 훈련에 기인한 것이었다. 나무판자에 손을 대면 꿀물을 주고, needle에 손이 꽂히기 직전에 더 강력한 보상인 꿀을 주어 마취 없는 채혈을 할 수 있었다. 곰의 스트레스도 줄이며 채혈자의 수고로움도 더는 방법에 일거양득이라 생각했다.

채혈을 통해 전혈구 검사, 혈액화학검사 등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계류 중인 곰의 건강 상태를 살핀다. 특히 암컷 곰의 혈액으로 progesterone 수치를 따로 검사하여 발정기 판단 지표 중 하나로 활용한다.

그림1. 제작한 다트 표적

2) 마취 다트 제작하기

단순한 채혈 이외에도 인공수정 연구를 위해 정자 샘플이 필요하다. 또한 언제 올지 모르는 발정기를 위해 암컷의 난포 상태를 꾸준히 검사해야 한다. 위 검사에는 마취가 필수다. 따라서 마취 다트를 제작해야 한다.

마취 다트를 제조하기 위해 다트, 바렐, 공기압 피스톤, 마취약이 필요하다. 곰의 무게에 따라 100kg 이하면 작은 다트, 100~200kg 사이면 큰 다트를 사용하여 약의 용량을 조절한다.

마취약으로는 zolazepam·tiletamine과 medetomidine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마취약을 다트에 넣고 공기를 주입하여 양압을 건다. 고무 패킹은 니들의 양옆으로 뚫려 있는 구멍을 막아 압력이 유지될 수 있게 한다. 바렐을 조립 후 다트를 넣으면 마취총 준비가 완료된다.

곰에 다트가 꽂히면 고무 패킹이 뒤로 밀려나면서 양옆의 구멍으로 마취약이 분사된다. 주로 근육이 많은 허벅다리를 조준한다. 마취총에 학습된 곰은 허벅다리를 숨기거나, 마취 다트를 스스로 제거하여 마취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허벅다리에 조준이 어려운 경우, 어깨 근육을 조준한다.

실습 동안 마취 다트를 직접 제작할 기회가 있었다. 자투리 시간에 만들어 놓은 스티로폼 표적에 쏴 보는 연습을 했다. 군대에서 배웠던 사격 자세를 어렴풋이 기억하며 쏴 보았지만, 생각보다 조준이 쉽지 않았다.

직접 차례대로 다트를 제작해 보면서 원리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직전 학기에 배운 약리학 지식을 활용하여 마취 작용기전에 대해서도 다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림2. 정액 채취 준비 과정

3) 수컷 곰의 정액 채취

마취된 수컷 곰에서 채혈을 진행한 후 라인을 잡는다. 단, 정액에 소변이 섞이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정액 채취 전까지는 수액을 틀지 않는다.

관장 후 초음파를 통해서 요도 카테터가 전립샘 부근까지 도달하는지 관찰한다. 전립샘 부근에서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여 일부 정액을 추출한다. 추출한 정액은 바로 pH검사를 통해 소변 오염 여부를 판단한다.

추출된 정자는 viability와 motility를 측정한다(그림3). 또한 eosin-nigrosine 염색을 통해 살아있는 정자를 직접 셈으로써 정자 활성도 측정의 오차를 줄인다. 남은 정자는 glycerin, 난황이 포함된 배지와 함께 straw에 첨가하여 냉동시킨다.

그림3. motility 측정

정자의 viability와 motility는 인공수정 성공 여부에 매우 중요하다. 양정진 센터장님은 동결 기술의 어려움을 말씀해 주셨다. 반달가슴곰의 정자는 이미 선행 연구된 인간, 동물 종의 정자와 다른 성상을 보이기 때문에 동결 기술의 개발이 어렵다고 한다.

동결 기술에 고려되는 요인만 하더라도 배지의 종류, 냉동 속도 및 온도 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한정적인 샘플에서 수두룩한 요인을 고려하는 일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림4. 발정기 검사 준비 과정

4) 암컷 곰의 발정기 측정 및 인공수정

반달가슴곰은 독특한 생리 주기 때문에 발정기, 배란 및 수정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정기를 평가하는 다양한 지표를 활용한다. 대표적으로 초음파 검사, 질 상피세포 관찰, 질 점막 저항 측정이 있다. 또한, 혈중 progesterone의 수치를 보거나 ELISA를 통해 estradiol 농도를 확인한다.

마취된 암컷 곰을 검사하려면 센터 내로 이동시켜야 했다. 제한된 시간 내 다양한 지표를 검사해야 하기에 바쁘게 움직이는 연구원 선생님들을 볼 수 있었다.

채혈과 기본 처치가 끝나면 질 상피세포를 관찰하기 위해 질 도말을 실시한다. PAP 염색으로 각화 상피세포의 비율을 확인하여 발정기의 진행 상태를 판단한다. 질 점막 저항 측정은 질 점막의 비후와 각화 상피세포의 상관관계에 근거하여 배란 측정의 지표로 이용된다. 관장이 완료되면 초음파 검사를 실행한다. 초음파를 통해 암컷 생식기의 구조를 관찰하고, 난소 내 난포 및 황체의 크기를 측정한다. 실제 초음파상의 사진을 찍고, 직접 기록도 하여 난포 크기 변화를 통해 발정기 예측에 활용한다.

그림5. 인공수정 과정

위의 주기적인 검사로 암컷의 발정기를 판단하여 인공수정의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 KF -49의 인공수정을 참관할 수 있는 감사한 기회를 얻었다(그림5).

초음파상에서 난포의 크기는 이전 기록에 비해 큰 변화가 없었지만, 질 상피세포 도말에서 다량의 각화세포를 볼 수 있었기에 인공수정 진행이 결정되었다.

인공수정 진행이 결정된 직후, 수의사 선생님과 연구원 선생님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 팀은 암컷 곰의 질 opening으로 카테터를 삽입하여 정액이 잘 주입되게끔 공간을 확보했다. 동시에 다른 팀은 그동안 냉동돼 있던 정자를 해동했다.

Motility와 viability를 측정한 후 여러 개체의 정자를 혼합하여 주입할 정자를 준비했다. 모든 준비가 되었을 때 암컷 곰 자궁 경부 내로 주입하여 인공수정을 진행한다.

실제로 인공수정을 하는 순간에 경외감을 느꼈다. 어찌 보면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을 함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한 번의 인공수정을 위해 수반되는 방대한 준비 과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10명 남짓 되는 수의사, 연구원 선생님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면서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함께 일하면 즐겁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종 복원의 의의와 남겨진 숙제

실습을 마무리하며 야생동물종 복원 사업의 의의와 인공수정의 역할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양정진 센터장님은 인공수정의 기술을 활용하여 개체군 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국가에서 동일 종을 도입하는 것에 한계가 있고, 낮은 번식률과 근친교배 때문에 현재 지리산 반달가슴곰 개체군의 유전적 다양성은 낮은 수준이었다.

과거 생태학 강의에서 유전적 병목현상으로 인한 유전적 다양성 감소가 개체군에 미치는 영향을 배운 기억이 났다. 적은 개체 수 내에서의 근친교배는 유전적 다양성을 더욱더 감소시키며 이는 전염병이나, 환경변화에 취약해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종 복원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인공수정은 선택적으로 교배를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개체군 내 유전적 다양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201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공수정 성공 사례가 있었다. 이후로 진행 중인 동결 정자 연구는 각 개체의 선택적 인공수정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데 필수적인 기술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복원된 반달가슴곰은 지리산과 더불어 한반도 생태계의 다양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은 자명하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실습하면서 오삼이(KM-53)에 대한 사건을 알게 되어 뉴스 기사를 찾아보게 되었다. 지리산을 벗어나 김천 수도산에서 출현하며 민가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18년도에는 교통사고도 냈다. 올해 안타까운 사고로 폐사했지만, 오삼이의 행적은 복원 사업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반달가슴곰이 널리 분포하던 과거와 비교하여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인구가 증가하며 100년도 안 되는 세월에 급속한 산업화와 더불어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반달가슴곰의 서식처 또한 눈에 띄게 줄었다.

오삼이의 사례를 보면 앞으로 활동 반경이 넓고, 모험심이 강한 제2, 3의 오삼이가 나올 수 있다. 이를 대비하여서라도 서식처에 대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균형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생태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종 복원 사업은 야생동물 분야에서 분자 수준의 유전학부터 거대한 생태학을 망라하는 지식을 요구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림6. 구례 전경

실습을 마무리하며

실습에 앞서, 다른 실습 경험이 없었기에 오히려 선생님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연구원 선생님들, 같이 실습했던 실습생 선생님의 도움 덕에 업무적으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두서없는 질문에도 흔쾌히 답변해 주시고 가르쳐 주신 경의범 선생님, 임승효 팀장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실습 기회를 제공해 주신 양정진 센터장님께 감사드린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 동안 사장님을 따라 사성암(그림6)을 들리게 되었다. 장마철인 와중에 유일하게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다. 황혼 아래 구례 전경과 지리산의 능선이 보였다. 저기 어딘 가에 반쪽짜리 달을 가슴에 품고 사는 곰이 떠올랐다.

급속한 도시화 세상 속에 자연과 야생동물을 보전하기 위한 연구원 선생님들의 노고에 나 또한 가슴 한편 책임감을 품게 되었다.

 

대동물 및 야생동물에 관심이 있다면, 반달가슴곰의 종 복원 연구 외에도 전반적인 야생동물 구조 및 치료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주된 업무가 여름철에 진행되기에 여름방학때 실습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반쪽짜리 달을 품은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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