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교육 국회토론회②] 임상교육 개선 핵심 열쇠, 대학병원에 있다
졸업 직후 진료 못하는 수의사, 사설 병원에 수련 부담..대학병원 법적 지위, 수익 구조 바꿔야
수의학교육 역량강화 국회토론회가 12월 1일(월)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수의학교육에만 초점을 맞춰 국회에서 공론의 장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삼석·조경태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수의과대학협회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무너지는 공공수의학에 대응하지도, 반려동물 임상 발전을 선도하지도 못하고 있는 수의대 교육 인프라의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수의학교육 인증과 국가시험 개편, 대학동물병원 개선, 수의사과학자 양성 등을 폭넓게 다뤘다.
주요 사안별로 이날 거론된 지견을 나누어 전한다<편집자주>.

1년차 수의사를 곧장 진료에 투입할 수 없다
사설 병원이 ‘수련의’ 뽑아..대학 역할 대체
임상대학원 와서야 핸즈온 교육
이날 토론회에서 임상교육 개선의 주요 과제로 ‘대학동물병원’이 도마에 올랐다. 졸업생이 곧장 동물을 진료할 수 있을만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수의대생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교육병원(teaching hospital)’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해마루반려동물의료재단 김소현 이사장은 “해마루는 지속적으로 학부생 실습과정과 초년차 수의사 임상기본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현재의 수의대생들은 기본적인 임상술기조차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채 현장에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갓 졸업한 수의사를 진료에 투입할 수 없다 보니 1년 이상의 수련의 과정을 두고 교육한다. 해마루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병원들이 마찬가지로 겪고 있는 문제다.
김소현 이사장은 “매년 새로운 신입 수의사를 교육하기 위해 상당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며 사설 병원이 수의대가 해야 할 역할을 메꾸고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수의사들로서도 초봉 상승에 필연적인 한계에 봉착하고, 외부교육까지 쫓아다니며 들어야 하는 부담에 시달린다.
학부생들도 이 같은 문제를 실감하고 있다.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가 최근 수의대생 2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현행 수의학 교육이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실무역량(day 1 skill)을 키우기에 부족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65.8%에 달했다.
김 이사장은 2002년 연구원으로 방문한 워싱턴주립대 부속 동물병원에서 ‘교육병원’으로서의 대학병원을 제대로 접했다고 전했다. 이미 20년도 더 전에 미국의 수의대생은 로테이션 과정을 통해 대학병원의 진료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단순 참관이 아닌 ‘준 임상의’로서 교수진의 감독하에 직접적으로 술기를 수행하거나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한국임상수의학회장을 맡고 있는 서강문 서울대 교수는 “임상 로테이션 실습을 1년간 실시하는 서울대도 과목별로 보면 1~2주에 그친다. 그 시간 안에 익숙해지길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대학원에 와야 핸즈온(Hands-on) 교육이 시작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원으로 미뤄져 있는 교육을 학부 과정으로 내리려면 교원 확충과 재원·기자재 등 여러 조건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수의과대학 6년 학제 구성이 유연화된 데서 개선의 실마리를 찾았다. 과거 예2+본4 학제를 1+5나 통합 6년제 등으로 개편하면서 임상교육 비중을 늘리고, 이론 강의를 줄이되 핵심 실습 위주로 개편한다면 지금보다 나은 역량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테이션에서 접한 실제 증례를 바탕으로 학생이 수의사 역할을, 대학원생이 보호자 역할을 만나 모의 진료를 진행한다.
(사진은 2024년 7월 수의기본진료수행 지침 개발 연구 회의 중 촬영)
실습교육 강화 ‘시뮬레이션 활용+대학병원 진료 참여 확대’
‘매출의 15~20%’ 이익 대부분 간접비로 뺏기는 현행 대학병원 구조
진료·교육 재투자 어려워
대학병원 법적 지위 정립 ‘대학동물병원법’ 제정 제안
핸즈온 실습 교육을 강화한다며 실험동물 사용량을 늘릴 순 없다. 모형으로 충분히 연습하고,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학병원의 진료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 박인철 원장도 대학병원의 인프라 개선 과제에서 시뮬레이션 교육 시스템과 임상교육 기록용을 포함한 병원관리 시스템 개편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김소현 이사장은 “학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문제다. 법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단순한 기자재뿐만 아니라 교원 확충, 증례 기반 교육 인프라 강화,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병원) 수의사에 대한 인건비 지원 등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지금의 대학동물병원에서는 과목별 대학원생들이 저마다 수련하기도 바쁘다. 몇 안 되는 교수들은 더 바쁘다. 학부생 실습에까지 많은 시간을 들이기 어려운 구조다.
이를 개선하려면 대학병원에 전문진료인력이 많아져야 한다. 임상교원뿐만 아니라 전문의 제도 하의 전공의들도 자신의 수련에 더해 학부생 교육에서도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그러자면 정부의 예산 지원과 대학병원의 자구책이 모두 필요하다. 전자에는 법적 근거가, 후자에는 대학병원 운영체계의 개편이 요구된다는 것이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지적이다.
조제열 서울대 수의대 학장은 “현재의 대학병원은 교육병원이 아니다. 대학 산하의 사업체”라며 “동물병원에 부과하는 간접비가 매출액의 15~2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구조다 보니 임상교원을 확충하거나 새로운 장비나 교육에 투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제열 학장은 “국가가 대학병원을 ‘교육·공공·연구 기반의 공공재’로 재정의해야 한다”면서 가칭 ‘대학동물병원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행 수의사법·고등교육법 어디에도 법적 근거가 없는 대학병원의 위상을 정립하자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간접비 부과를 금지해 대학병원의 수익이 진료·교육 개선으로 재투자될 수 있도록 하고, 응급·재난형 질병 대응 등 공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오히려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이다.
조 학장은 “수의사 면허를 주관하는 농식품부가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면서 전문의 제도 도입 시 대학병원이 담당해야 할 수련병원 기능에 대한 지원을 포함해 대학병원에 대한 국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학 병원의 편차 개선도 과제다. 박인철 원장은 10개 대학동물병원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고가의 전문진료용 장비나 임상교육용 인프라에서 편차가 컸다는 점을 지목했다.
일선 대형 사설병원보다도 뒤쳐지는 규모와 진료 숫자로는 학생들까지 실습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 체계를 갖추기 어렵다.
박인철 원장은 중장기적으로 500억원을 투입해 10개 대학 동물병원과 권역별로 첨단 영상장비와 방사선 치료, 핵의학, 중재시술 등의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