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교육 국회토론회③] 경제적 유인 없이는 수의사과학자 양성도 없다

임상 대비 긴 준비과정, 불투명한 미래..‘매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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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학교육 역량강화 국회토론회가 12월 1일(월)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수의학교육에만 초점을 맞춰 국회에서 공론의 장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삼석·조경태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수의과대학협회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무너지는 공공수의학에 대응하지도, 반려동물 임상 발전을 선도하지도 못하고 있는 수의대 교육 인프라의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수의학교육 인증과 국가시험 개편, 대학동물병원 개선, 수의사과학자 양성 등을 폭넓게 다뤘다.

주요 사안별로 이날 거론된 지견을 나누어 전한다<편집자주>.

이날 토론회 발제에 나선 조제열 서울대 수의대 학장은 “DVM 이후 연구자로 이어지는 경로가 사라지고 있다. 저희 실험실에도 수의대생이 온 지 7~8년이 지났다”며 “산업·방역 분야의 연구 인력이 고갈되고 있다. 수의학 기반 바이오 연구도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이는 향후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많은 수의대생들이 ‘연구’ 대신 임상으로 향하는 원인으로 경제적 이유를 꼽았다.

졸업 직후 반려동물 임상수의사가 되면 빠른 소득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본격적인 연구 트랙은 8~10년에 달하는 긴 훈련기간을 요구하면서도 이후 소득이나 일자리 측면에서 불확실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가 최근 전국 수의대생 2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91.8%가 반려동물 임상을 희망 진로로 꼽았다. 교수·학계는 17.8%, 연구직 공무원은 8.7%에 그쳤다(복수 선택 응답).

조 학장은 연구자가 되려는 수의대생·수의사에 대해 학위과정 중의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이후 공공수의학·질병통제 관련 기관과의 경력 연계(career path)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종일 서울대 의대 의사과학자 양성사업단장

이날 토론회에는 최근 출범한 한국의사과학자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은 김종일 서울대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김종일 회장은 서울대 의대에서 의사과학자(MD-PhD) 양성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김 단장은 “의대가 생각하는 여러 문제를 수의대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기초과학을 하는 의사뿐만 아니라 임상을 하더라도 연구도 잘하는 의사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의사과학자’를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MD-PhD 과정의 성패도 당위가 아닌 ‘매력’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MD-PhD 과정이 다양한 유인을 갖췄다는 점을 지목했다.

미국 의대는 학비가 비싸다. 미국의과대학협회(AAMC)에 따르면 2025년 미국 의대 졸업생의 평균 학자금 대출 규모가 21만6,659달러(약 3억2천만원)에 달한다. 그만큼 MD-PhD 과정이 제공하는 학비가 큰 매력을 가진다.

전문의와 GP(General Practitioner)의 소득 격차가 큰 미국에서 MD-PhD 과정생이 전공의 선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한국 의대는 미국에 비해 학비도 저렴하고 전문의로의 유인도 크지 않지만, 한국만의 특별한 상황을 살려 ‘군대체복무’를 활용했다는 점을 소개했다. 카이스트를 시작으로 연세대·서울대가 주도한 초기 방법론이 ‘박사학위과정과 전문연구요원 군대체복무를 연계하면서 대전이나 서울시내에서 학위와 함께 군문제를 해결한다’는 메리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해당 과정이 군의관보다 조금 길긴 하지만, 최전방이나 오지에 배치될 가능성도 있는 군복무와 달리 학위도 받으면서 대도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실질적인 매력을 어필한 셈이다.

정부 주무부처의 정책적 지원이 뒤따른 점도 눈길을 끈다. 김 단장은 “민간에서 시작된 이들 대학의 시도가 조금씩 성과를 내자, 2019년부터는 보건복지부가 관심을 보이면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생겼다”면서 전공의와 기초의학 학위과정를 병행하거나 풀타임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경우 등을 지원한다고 전했다.

정부의 예산·정책적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바이오산업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조언도 전했다.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치대·수의대로 들어오는데, 이들이 단순히 개업의로만 일하게 두지 말고 연구에도 참여하게 하여 미래 바이오산업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호재 서울대 교수

대한수의학회장을 맡고 있는 한호재 서울대 교수는 “원헬스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수의사는 국가의 전략 자산”이라며 수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제도의 핵심 요소를 꼽았다.

미국의 수의과대학들이 운영하는 ‘DVM-PhD’ 과정을 토대로 ‘한국형 수의사 과학자 펠로우십(K-VET Scientist Fellowship)’을 제언했다.

이날 한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DVM-PhD’ 과정이 학부 교육과 깊이 연계되어 있다. 1.5~2년간 기초수의학을 공부한 후 PhD 코스를 선택해 3~4년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임상교육과정으로 복귀하는 방식을 취한다.

한 교수는 “미국의 일부 대학은 DVM-PhD 과정생을 아예 분리해서 선발하기도 하지만, 한국은 대입 제도상 쉽지 않다”면서 “일단 입학한 수의대생을 대상으로 과학자 양성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의대생들이 연구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학부 과정에 연구 트랙을 만들고, 해당 트랙으로 이수한 학점은 대학원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통합학사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수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에 입성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 등 재정적 지원을 국가 예산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한 교수는 “흥미 있는 학생들이 연구에 마음 편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면서 “양성된 수의사과학자를 사회가 받아주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대학이 수의사과학자를 교원으로 채용하거나, 관련 국가기관이나 산업체에도 우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호재 교수는 “수의사도 국가 산업의 핵심축을 이루는 인재에 상응하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동물 진료뿐만 아니라 국가 방역, 바이오제약, 미래 감염병 대비, 원헬스 기반의 지속가능한 국가 정책과제에 핵심적 인력으로 자리 잡아야한다고 당부했다.

[수의학교육 국회토론회③] 경제적 유인 없이는 수의사과학자 양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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