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밥그릇과 노키즈존-금지와 허용 사이, 함께 살아가는 기준을 묻다 : 김성호

김성호 한국성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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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서대 김성호 교수

요즘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다 문득 ‘노키즈존’ 논쟁이 떠올랐다. 전혀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길고양이 급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굶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 곳에나 밥그릇을 놓고 남은 먹이를 치우지 않거나, 배설물과 주변 위생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서 주민의 불편을 외면하는 방식의 돌봄을 문제 삼는 경우도 많다.

노키즈존도 비슷하다. 아이들이 무조건 싫어서라기보다 매장 안을 위험하게 뛰어다니거나 다른 손님에게 계속 방해가 되는데도 보호자가 적절히 제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작된 불만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디까지가 아이의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어디서부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일까. 어디까지가 길고양이를 위한 돌봄이고 어디서부터 주변에 부담을 주는 무분별한 돌봄일까. 그 선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도 다르다. 그러다 보니 복잡한 기준을 만들고 서로 조정하기보다 훨씬 간단한 방법이 등장한다. ‘노키즈존’, ‘길고양이 급식금지’가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막고 싶은 것은 아이와 고양이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과 책임 없는 돌봄일까.

최근 길고양이 급식을 제한해 달라는 국민청원과 이에 반대하는 청원이 모두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나란히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됐다. 한쪽에서는 굶주린 생명에게 밥 한 끼를 주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소음과 배설물, 냄새 등의 피해를 왜 주민들이 감수해야 하느냐고 한다. 야생동물과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도 제기된다.

각각의 주장에는 이유가 있다. 눈앞에서 굶는 고양이를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을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실제 생활상의 불편을 겪는 주민에게 무조건 참으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줘도 되는가?”가 아니라 “우리 동네의 길고양이를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돌보고 관리할 것인가?”라고 말이다.

길고양이는 밥을 주지 않는다고 당장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곳에서나 먹이를 주는 것도 좋은 해결책은 아니다. 선의만으로 풀기에는 길고양이 문제가 너무 복잡해졌다.

다른 나라와 도시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어왔다. 이들이 찾고 있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밥을 주는 사람을 무조건 막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밥을 주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는 것이다. 외국 사례를 조금 들여다보면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먹이를 주고, 남은 사료와 밥그릇을 치우며 주변을 깨끗하게 관리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TNR을 돌봄의 조건으로 두거나 돌봄자를 등록해 일정한 기준과 책임 아래 관리하도록 하는 곳도 있다. 반대로 큰 공원이나 자연보호지역, 철새도래지처럼 생태계 보호가 중요한 곳에서는 급식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곳에 똑같은 잣대를 적용할 필요는 없다. 주택가와 공원은 다르고,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과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또 다르다. 장소의 특성에 따라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떤 책임을 요구할 것인지 그 선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나는 외국을 다니다 식당이나 카페, 대중교통과 공공장소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처음에는 ‘여기는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곳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그런데 의외로 허용이나 금지를 알리는 표시가 없는 곳도 많았다. 더 인상적인 것은 보호자의 발밑이나 의자 곁에 조용히 앉아 있어 한동안 반려견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였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굳이 모든 것을 ‘허용’과 ‘금지’로 나누어야 할까. 노키즈존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아이들이 없는 공간일까? 오히려 아이와 어른이 서로 조금씩 배려하며 함께 있어도 누구나 편안하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러려면 아이도 그 공간에서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보호자에게도 필요한 역할이 있다. 반대로 아무런 불편이나 피해를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단지 아이라는 이유로, 혹은 동물이라는 이유로 공간에서 배제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불편을 조정하는 문제를 넘어 배제와 차별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길고양이를 둘러싼 최근의 갈등에서도 이 지점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책임 없는 급식이나 관리되지 않는 돌봄을 비판하는 것과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나 고양이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불편에 대한 문제 제기가 특정 대상에 대한 적대와 비난으로 향하는 순간, 문제의 성격도 달라진다. 최근의 길고양이 논쟁에서는 이미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생활상의 불편에서 시작된 갈등이 특정 대상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넘어 혐오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책임 있는 돌봄의 필요성과 이러한 혐오의 문제는 구분되어야 한다. 돌봄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그 행동에 대해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고 개선하면 된다. 그것이 길고양이나 돌봄자 자체를 비난하고 배제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무엇을 금지할 것인가를 정하기 전에, 어떻게 함께 지낼 것인가를 먼저 이야기해 보자.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데 더 필요한 것은 수많은 ‘허용’과 ‘금지’의 표시가 아니라, 그런 표시가 없어도 서로를 배려하며 같은 공간을 편안하게 나누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편집자 주 : 이 글은 서울복지교육센터 복지큐레이션WISH에 게재된 글을 기고형식으로 수정해 게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길고양이 밥그릇과 노키즈존-금지와 허용 사이, 함께 살아가는 기준을 묻다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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