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증거기반의학의 핵심! RWD/RWE의 이해 – 전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질병관리부장/수의학박사 이명헌
들어가는 말
지난 2016년 클라우스 슈바브가 다보스포럼 공식의제로 채택하면서 4차산업혁명은 21세기를 관통하는 세계적인 담론으로 등장하였다. 주지하는 대로 4차산업혁명은 정보통신, 사물인터넷, 휴머노이드 로봇, 첨단 바이오 등으로 대표되는 핵심기술이 진보적 융합을 통하여 산업 전반을 재편한 과정으로, 이에 따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꾸준한 내재화 과정을 거치면서 원격진료, 디지털헬스케어, 맞춤형치료 등 혁신적인 성과를 견인하고 있다. 특별히 주목할 지점은 의료데이터의 통합관리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조합한 알고리즘이 상용화됨에 따라 1차원적이고 분절적 수준에 머물던 의료데이터를 역동적이고 다층적 형태로 통합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의료데이터 통합관리 영역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요소로 최근 활용 빈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사용데이터(Real World Data, RWD) 와 실사용증거(Real World Evidence, RWE)의 개요를 살펴보고 활용 현황과 향후 전망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실사용데이터(RWD)와 실사용증거(RWE)란?
실사용데이터는 다양한 출처에서 일상적으로 수집되는 환자의 건강상태 또는 보건의료 전달체계에서 파생되는 자료의 총칭으로, 규격화된 임상시험 환경이 아닌 실제 의료현장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로 정의된다. 건강보험 청구자료, 환자 레지스트리, 전자의무기록(Electric Medical Record, EMR), 웨어러블·IoT 기기 데이터, 설문조사 및 시판 후 조사결과 등이 실사용데이터의 범주에 속한다(그림 1).

한편 실사용증거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수집된 실사용데이터를 적절하고 유효한 통계 기법으로 분석하여 도출한 임상적 근거를 말한다. 의료제품의 안전성, 유효성, 경제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사용되며 최근에는 공중보건학적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목적으로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실사용증거는 필요에 따라 특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새로운 데이터를 능동적으로 수집함으로써 생성될 수 있고(1차 자료), 기존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2차 자료).
도입 배경과 현황
전통적으로 의약품의 안전성·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무작위대조시험(Clinical Trial, RCT)을 통하여 얻어진 임상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엄격한 기준에 맞는 시험군만을 선별하므로 실제 의료현장의 다양한 사용 환경을 반영하기 어렵고, 기저질환, 복합질환이 있는 개체의 반응이나 여러 가지 약물의 병용으로 발생하는 간섭현상을 파악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과 대조군 설정에 따른 윤리적인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무작위 대조시험의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ICT의 비약적 발전으로 전자의무기록 보급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실제 진료환경이 반영된 다양한 자료가 양산되었고 여기에 빅데이터 기술이 융합되면서 바야흐로 의무기록의 디지털 통합관리 기반이 완성되었다. 이후 2016년 미국에서 21세기 치유법(21st Century Cures Act)이 제정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FDA가 의약품허가, 적응증 확대 및 사후관리의 과학적 근거로 RWD/RWE를 인정하면서 무작위임상시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공인자료인 동시에 증거기반의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2020년 동물용의약품센터(Center of Veterinary Medicine, CVM)가 동물용의약품에 대한 RWD/RWE 활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수의영역에서도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허가 심사 및 사후 관리 프로세스에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은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동물용 신약의 효능을 입증하거나 승인된 약물의 적응증 확대는 물론 시판후 조사에도 RWD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유럽도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인체 의약품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RWD 네트워크인 DARWIN(Data Analysis and Real World Interrogation Network, EU)을 동물용의약품 분야와 연계하려는 시도와 함께 약물 부작용감시 및 항생제 내성 모니터링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아직은 초기단계이지만 공적기반의 반려동물의료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중이며, 신약개발 및 안전성 모니터링에 전자의무기록, 보험 데이터, 레지스트리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RWD활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제도적기반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동물용의약품 분야에서는 사실상 관련 인프라가 전무한 수준이다.
이점과 한계
RWD/RWE는 의사결정 과정 중 과학적 근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고려하는 이른바 증거기반의학이 보건의료 분야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정착하는데 강력한 추동력을 제공하였다. 이는 고전적인 무작위대조시험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이점에서 기인한다. 우선 임상현장에서 실재하는 환자의 행동과 치료반응을 가감 없이 반영함으로써 외적타당도가 높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충분한 수의 표본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소규모의 하위집단에 미치는 영향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특히 희귀질환, 응급신약과 같이 임상자료 수집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 현실적인 대안으로 활용가치가 높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더불어 의약품 개발단계에서 용법·용량, 치료일정, 기대반응 등을 조사하여 제품의 필요성이나 시장요구도를 예측하고 시판후에는 치료성과 및 비용, 복약이행도, 안전성 관련 실사용데이터를 근거로 제품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등 마케팅 전략 수립에도 쓰임새를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찰연구에서 비롯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RWD/RWE의 특성상 여러 가지 교란 요인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워 무작위 대조 시험과 달리 치료와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데이터의 품질이 일관되지 않고 누락되거나 부정확한 데이터 및 코딩 오류가 연구 결과의 신뢰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개인정보 이슈나 데이터 소유권에 대한 법적, 사회적 합의와 함께 전문인력 부족, 열악한 행정인프라 등은 현장 수용성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생각된다.

향후 전망, 그리고 도전과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RWD/RWE가 의약품개발 전주기 가치사슬에 걸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견고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최근에는 기존의 스마트 바이오·제약산업을 뛰어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수의·축산 영역에서도 실사용데이터를 현장 업무에 접목하기 위한 실용적 시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먼저 대동물 임상·경영 관리 플랫폼‘무무’가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데 이는 공공데이터 기반의 RWD인 축우의 출생기록, 접종 이력, 질병검사, 출하·도축 이력 등으로 구성된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수의사 진료업무를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순천향대 의대·경북대 수의대·더바이오인포매틱스 공동연구팀도 동물병원 EMR, 생체신호, 영상, 임상병리검사 결과 등 반려동물 임상자료를 통합하여 인공지능 기반 진단·치료 의사결정지원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 밖에도 국가재난형 가축질병의 유입·확산경로를 예측하고 선제적 방역전략 수립을 위하여 축산물이력시스템, 농장 ICT 환경 데이터를 위험평가 기법에 적용하여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항생제처방시스템의 방대한 데이터를 추출·가공함으로써 항생제 남용을 최소화하고 친환경·안전성 중심의 사육 환경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공공부문에서의 적용 사례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실사용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사용환경과 관리기반 구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정부 주도로 데이터의 종류와 표기방식 등을 통일하여 표준화 방안을 제시하고 민간이 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산재한 데이터는 검증 절차와 비식별화를 거쳐 국가 빅데이터 플랫폼으로 일원화함으로써 신뢰도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주요 선진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열악한 제도적 지원과 연구개발에도 배전의 노력과 투자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데이터 무결성을 담보할 블록체인 기술도입, 현장적용성에 대한 검증문제, 전문가 양성 교육프로그램 운영도 미룰 수 없는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는 실사용데이터! 올바른 이해와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終).
<참고문헌>
1. https://blog.naver.com/bioinportal/222455601381
2.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9531
3. 국내 동물병원 항생제 처방률 영국과 비슷..다빈도 성분 15종이 처방 92% 차지 – 데일리벳
4. 박정연, 21세기 치료법 2.0과 실사용 증거, 바이오인 45호, 2024
5. 김은진. 美 첨단바이오의약품 개발 관련 법률 제정의 의미: 「21세기 치료법」 제정내용 및 시사점, 외국입법 동향과 분석 제5호, 국회입법조사처. 2019.
6.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미국 21세기 치료법 2.0. 의약 R&D 이슈 보고서. 2022.
7. Dang A. Real-World Evidence: A Primer. Pharmaceut Med. Jan;37(1). 2023.
8. Dhruva SS, Ross JS, Desai NR. Real-World Evidence: Promise and Peril For Medical Product Evaluation. P T. 43(8). 2018.
9. FDA. Examples of Real-World Evidence (RWE) Used in Medical Device Regulatory Decisions. 2021.
10. Rudrapatna VA, Butte AJ. Opportunities and challenges in using real-world data
for health care. J Clin Invest. Feb 3;130(2). 2020.
11. Trevan Locke, Rebecca Ray, Rachele Hendricks‐Sturrup, Marianne Hamilton Lopez, Morgan Romine, Mark McClellan. Building a Modern Health Data Infrastructure : Cures 2.0 Act Provisions on Real‐world Evidence and Federal Agency Communication, CURES 2.0 ISSUE BRIEF, Duke-Margolis Institute. 2020.
12. “농식품 공공데이터 활용해 만든 서비스, 수의사들의 필수템 됐죠” – 매일경제
13. 건국대 고진형 수의사, 의료데이터 분석 대회 ‘한국 임상 데이터톤’ 우승 – 데일리벳
14. 식품의약품안전처, 실제임상자료를 활용한 허가심사체계기반 마련 연구보고서,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