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WVOC 참관기] 로마에서 다시 묻다, 나는 어떤 외과수의사가 되고 싶은가 – 오준영
세계의 수술실에서 얻은 질문, 그리고 함께 나눈 배움 : 오준영 수의사(경기동물의료원)

2026년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제7회 세계수의정형외과학회(World Veterinary Orthopaedic Congress, WVOC)가 열렸다. 유럽수의정형외상학회(ESVOT)와 북미의 Veterinary Orthopedic Society(VOS)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학회는 전 세계 수의정형외과 임상의와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구 성과와 수술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공식 프로그램에는 65명이 넘는 연자와 250개 이상의 발표, 다섯 개의 동시 진행 세션이 소개되어 있었다.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이 무대에 지도교수님들과 실험실 선후배, 동기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출발 전부터 설렜다.

교과서 밖의 경험이 시야를 넓히다
학회장에서는 늘 선택이 필요했다. 외상, 슬개골 탈구, 인공관절, 척추, 관절경 등 흥미로운 강의가 여러 강의실에서 동시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날 저녁 각자 듣고 싶은 세션을 공유하고, 관심 분야에 따라 나누어 강의를 들었다. 혼자였다면 놓쳤을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통해 다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외과 수의사들의 강의를 듣는 것도 뜻깊었지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정답만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술식의 적응증과 한계, 예상하지 못한 합병증, 실제 임상에서 판단을 바꾸게 된 경험까지 들을 수 있었다. 질문을 직접 건네고 답을 듣는 과정에서 논문 한 편이나 수술 영상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고민의 깊이를 느꼈다.
국가와 지역에 따라 자주 만나는 품종과 질환이 다르다는 사실도 새삼 흥미로웠다. 특히 휘핏, 그레이하운드에서 많이 나타나는 발바닥의 corn(국소 각질성 병변)을 다룬 발표가 기억에 남는다. 익숙한 정형외과 검사에서 뚜렷한 원인이 확인되지 않는 파행 환자라도, 다른 지역의 임상의에게는 비교적 익숙한 질환이 감별진단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새로운 지식을 하나 얻었다기보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진단의 범위가 조금 넓어진 느낌이었다.


가능성의 끝을 보여준 수술들
평소 관심이 컸던 관절경 세션은 특히 집중해서 들었다. 관절경을 이용한 반월상연골판 봉합과 어깨관절의 봉합 앵커 활용 등은 관절을 들여다보는 기술 자체를 넘어, 어떤 병변을 어떻게 판단하고 치료할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앞으로 나만의 전문성을 어떤 방향으로 깊게 쌓아갈지도 자연스럽게 고민했다.
아직 수의 임상에서 흔히 접하기 어려운 인공 무릎관절 전치환술(TKR), 팔꿈치 관절 치환술과 같은 사례도 눈길을 끌었다. 문헌에서 충분히 답을 찾기 어려웠던 질문들이 실제 증례와 술자의 경험을 통해 조금씩 구체화됐다. 물론 새로운 수술이 언제나 더 나은 수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어떤 조건에서는 신중해야 하는지까지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도 함께 느꼈다.
쉬는 시간에는 전시장으로 향했다. 새로운 플레이트와 수술 기구를 직접 만져보고, 업체 관계자에게 사용 방법과 설계 의도를 물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슬개골 활차 융기 보철물, 고관절 전치환 시스템, 척추 고정용 pedicle screw, 환자 맞춤형 3D 프린팅 가이드와 임플란트, 의지·보조기 기술까지 수술의 정밀도와 치료 선택지를 넓히려는 시도들이 곳곳에 있었다. 강의실에서 들은 미래가 전시장에서는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놓여 있는 듯했다.



슬라이드 한 장이 던진 질문
학회장에서 마주한 슬라이드 한 장은 지금도 선명하다. 제목은 ‘전형적인 정형외과 수의사의 머릿속(The head of a typical Orthopaedic Surgeon)’. 커다란 머릿속 한구석에 조그맣게 자리한 뇌를 보며 웃음이 났다. 그런데 웃고 나니 조금 뜨끔했다. 뼈를 몇도 교정할지, 어떤 플레이트를 선택할지, 나사를 어느 방향으로 삽입해야 더 정확하고 안정적일지.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 내 머릿속 역시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곤 하기 때문이다.
정형외과 수술에서 정확한 교정과 견고한 고정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목표다. 다만 그 수치와 영상에 몰두한 나머지, 환자가 수술 후 어떤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라는 더 큰 질문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 좋은 수술은 방사선 사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다시 걷고 움직이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술을 더 정교하게 갈고닦는 동시에 수술의 이유와 환자에게 돌아갈 가치를 함께 바라보는 외과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날의 유쾌하고도 날카로운 그림은 어떤 긴 강의 못지않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로마의 밤, 우리만의 ‘HB 포럼’
돌이켜보면 이번 학회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시간은 강의가 끝난 뒤였는지도 모르겠다. 이해범 교수님, 정재민 교수님, 실험실 선배님들과 동기들이 같은 숙소에 모여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발표를 하나씩 꺼냈다. 누군가는 새로운 술식을 소개했고, 누군가는 그 술식의 적응증을 다시 물었다. 같은 강의를 들어도 각자가 주목한 부분은 달랐고, 그 차이에서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났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대화는 종종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농담처럼 그 시간을 ‘로마에서 열린 HB 포럼’이라고 불렀다. 함께 공부해 온 사람들과 같은 주제를 두고 마음껏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다시 느꼈다. 강의장에서 얻은 지식이 숙소의 대화 속에서 비로소 내 생각으로 정리되는 순간들이었다.
이제는 대학 실험실이 아닌 로컬 동물병원에서 환자를 만나고 있다. 진료와 수술이 반복되고 하루하루의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왜 이 방법을 선택하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묻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내게 한 가지 다짐을 남겼다. 자주 오기는 어렵더라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이런 세계적인 학회에 참석해 다른 외과수의사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수술하는지 보고 듣고 싶다. 익숙함이 무심함으로 바뀌지 않도록,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고 싶다.

언젠가 내 연구도 저 무대에
개인적으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우리 실험실에서 발표한 논문들이 여러 강연에서 인용되는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의사들이 듣는 강의의 한 장면에, 가까이에서 지켜본 연구의 결과가 등장했다. 한 연자가 해당 논문을 두고 “내가 본 논문 중 가장 뛰어난 논문 중 하나”라는 취지로 높이 평가했을 때는 놀라움과 함께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때 이해범 교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준영아, 네 논문도 내년이나 다음에 이런 발표에 나오면 너 스스로도 정말 뿌듯할 거야. 계속 열심히 노력해 보자.”
짧은 말씀이었지만 오래 마음에 남았다. 지금 투고를 준비하는 연구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한층 커졌고, 언젠가는 내가 쓴 논문이나 직접 쌓아온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이 무대에서 발표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됐다.
포스터 발표장을 둘러보는 시간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하는 외과수의사들이 저마다의 임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고민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뛰어난 사람들을 보며 나의 부족함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위축되기보다 더 배우고 싶어졌다. 누군가의 성취가 다른 누군가의 다음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최고가 아니더라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외과 수의사
로마에서 만난 수많은 수술법과 연구 중 어느 하나를 당장 내일부터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학회가 남긴 가장 큰 변화는 특정 술식 하나보다 질문하는 태도에 있다. 지금 선택한 치료가 이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가능성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더 안전하고 좋은 결과를 위해 내가 오늘 공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매번 ‘최고의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만나는 환자에게 그 순간의 ‘최선의 수술’을 제공하기 위해 배우고, 의심하고, 다시 확인하는 외과수의사가 되고 싶다. 이번 학회에서 얻은 새로운 관점과 통찰을 그저 좋은 추억으로 남겨두지 않고, 앞으로 만날 환자들의 진료와 수술에 하나씩 녹여내고자 한다.
아직 배울 것이 훨씬 많다. 그래서 오히려 앞으로가 기대된다. 조금씩 더 깊이 공부하고, 더 나은 수술을 고민하며, 언젠가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새로운 질문과 용기를 건네는 외과수의사가 되고 싶다.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 내 마음속에는 배운 지식만큼이나 선명한 다음 목표가 하나 더 생겨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