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의사법 개정을 바라본 10명의 수의학도, 그리고 우리가 생각한 ‘수의사다움’ -데일리벳 14기 학생기자단 일동-
수의사법 개정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아직 수의사 면허가 없고, 직접 동물병원을 운영해 본 경험도 없으며, 보호자에게 진료비를 설명하거나 치료 결과에 책임을 져본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년 뒤 우리는 진료실에 서게 된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제도는 결국 우리가 수의사가 되었을 때 마주하게 될 동물의료의 환경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수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10명의 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 수의사법 개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앞으로 어떤 수의사가 되고 싶은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수의사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답변이 나왔다. 보호자의 알 권리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동물의료의 특수성과 수의사의 전문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수의학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학생도 있었고, 수의사 사회 내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답변을 하나씩 이어 붙여보자,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우리는 어떤 수의사 사회를 물려받고, 어떤 수의사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
1. 아직 수의사가 아닌 우리가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이유
이번 논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위치는 애매하다.
우리는 아직 현직 수의사가 아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보호자와 갈등을 겪어본 적도, 진료비를 책정해 본 적도, 자신의 의료적 판단에 법적·경제적 책임을 져본 적도 없다. 따라서 현직 수의사가 경험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모두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가 우리와 무관한 것도 아니다.
한 수의학도는 처음 수의사법 개정 이야기를 접했을 때를 돌아보며, “어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 년 뒤 자신이 직접 그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질문이 달라졌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이번 논쟁을 바라보며 “왜 수의사와 보호자가 서로 반대편에 서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동물의 건강과 복지라는 목적을 생각한다면 수의사와 보호자는 본래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목표를 향해 가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물병원 이용자의 알 권리와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수의사법에는 이미 여러 제도가 도입됐다. 2022년 개정 이후 수술 등 중대진료에 대한 사전 설명과 서면 동의, 예상 진료비용 고지, 주요 진료비용 게시 등이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이러한 제도의 취지를 보호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자신의 동물이 어떤 진료를 받는지, 왜 필요한지,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의학도에게는 또 다른 질문이 남는다.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그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같은 일인가?
우리는 학교에서 하나의 증상 뒤에 수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같은 증상을 보이는 동물이라도 나이, 품종, 병력, 신체검사와 검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진단과 치료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진료는 단순히 특정 처치나 약품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수많은 정보를 종합하고, 그중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판단하며, 개별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보호자의 알 권리와 수의사의 전문성은 서로 반대편에 서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질문은 점차 달라졌다.
누구의 권리가 더 중요한가가 아니라, 보호자의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동물에게 필요한 전문적인 진료가 이루어지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2. 우리는 무엇을 배우며 수의사가 되어가고 있는가
이번 논쟁을 통해 우리가 또 하나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수의학교육에 대한 고민이었다.
수의대에서는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약리학부터 내과, 외과, 영상의학, 임상병리학에 이르기까지 동물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방대한 지식을 배운다. 이러한 지식과 술기는 수의사의 전문성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토대다.
그러나 실제 진료실에서 필요한 능력이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보호자에게 검사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여러 치료 방법의 장단점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비용과 예후를 어떻게 함께 논의할 것인지, 보호자의 의견과 수의사의 판단이 다를 때 어떻게 합의점을 찾아갈 것인지 역시 중요한 능력이다.
한 학생은 “무엇이 질병인지, 어떤 검사를 해야 하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해야 하는지는 끊임없이 배우지만 그것을 보호자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고민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수의학교육에서 의료윤리와 법·제도, 커뮤니케이션을 실제 사례와 연결해 배울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이는 단순히 ‘친절한 수의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보호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이 중요해질수록 수의사는 자신의 전문적 판단을 보호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전문성이 왜 필요한지,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수의학교육의 범위를 어디까지 넓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수의학은 개와 고양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다. 산업동물, 말, 야생동물, 수생동물, 공중보건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한다. 일부 학생들은 소동물 임상에 집중된 교육환경 속에서 대동물·야생동물·수생동물 분야를 경험할 기회가 제한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수의학교육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넣는 교육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는 것을 어떻게 책임 있게 사용할 것인지 배우는 교육.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의 수의학교육에 필요한 방향 중 하나다.
3. 전문성을 지키는 것과 신뢰를 얻는 것은 다른 일일까
이번 논쟁에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아마도 여기였을 것이다.
수의사의 전문성은 분명 중요하다. 동물은 자신의 증상을 직접 설명할 수 없고, 수의사는 보호자의 설명과 신체검사, 혈액검사, 영상검사 등 여러 정보를 종합해 환자의 상태를 판단해야 한다.
같은 증상처럼 보이는 동물이라도 필요한 검사와 치료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진료기록에 적힌 약품명이나 검사 결과만으로 수의사의 판단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한 학생은 진료기록이 특정 환자의 상태와 수의사의 판단이 담긴 의료정보인 만큼, 단순한 처치 목록이나 가격표처럼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동물의료에서는 보호자가 인터넷이나 다른 경로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동물에게 임의로 치료를 적용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대편의 질문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보호자에게 “전문가의 판단이니 믿어달라”고만 말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보호자가 진료 과정과 비용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의사는 보호자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왜 특정 검사가 필요한지, 어떤 치료 선택지가 있는지, 예상되는 비용과 예후는 어떠한지 설명할 책임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보 공개와 전문성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진료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보호자가 진료비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이유를 단순히 수의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돌릴 수도 없고, 반대로 진료비에 대한 불만을 수의사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의심으로만 해석할 수도 없다.
진료비에는 진료에 사용되는 장비와 인력, 시간, 검사와 치료의 과정 등 여러 요소가 반영된다. 동시에 보호자에게는 자신이 지불하는 비용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진료의 가치를 설명하는 문화일 것이다.
4.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수의사는 어떤 사람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수의사’는 어떤 사람일까.
10명의 답변은 조금씩 달랐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실력 있는 수의사.
계속 공부하는 수의사.
보호자의 이야기를 듣는 수의사.
자신의 판단을 설명할 수 있는 수의사.
그리고 동물을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는 수의사.
한 학생은 좋은 수의사를 “동물에게는 최선의 치료를, 보호자에게는 충분한 이해와 안도감을 전하는 번역가”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학생은 좋은 수의사란 동물을 돈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면서,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학생은 ‘다정함과 실력’을 함께 이야기했고, 또 다른 학생은 수의사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스스로 더 나은 수의사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답변들은 조금씩 달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
좋은 수의사는 보호자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는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전문성을 이유로 보호자의 질문을 차단하는 사람도 아니다.
동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지고, 그 판단을 보호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며, 함께 치료의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수의료는 수의사 혼자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은 자신의 의사를 직접 말할 수 없고, 실제 치료를 선택하고 지속하는 과정에는 보호자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수의사와 보호자는 경쟁자가 아니라 결국 하나의 팀이어야 한다.
5. 10년 뒤, 우리가 만들고 싶은 수의사 사회
10명의 수의학도에게 10년 뒤의 수의사 사회를 물었을 때, 답변에는 여러 모습이 등장했다.
더 투명한 진료환경.
보호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수의사의 전문성이 존중받는 사회.
동물복지와 공중보건에서 수의사의 역할이 인정받는 사회.
다양한 진로가 존중받는 수의사 사회.
그리고 수의사 스스로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회.
특히 한 학생은 수의사 사회가 외부의 규제에 대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부적으로도 진료의 투명성과 윤리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수의사 사회가 자신들의 주장을 시민의 언어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무리 수의학적으로 타당한 주장이라 하더라도 대중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의사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답변 역시 다양했다.
동물복지부터 공중보건, 인수공통감염병, 항생제 내성, 환경과 생태계까지 수의사가 책임져야 할 영역은 진료실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
수의사는 동물의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인 동시에 동물과 사람, 그리고 사회를 연결하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수의사의 권리를 지키는 것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전문직으로서 더 큰 역할을 요구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신뢰는 일방적으로 요구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설명하고, 듣고, 책임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EPILOGUE. 수의사법에서 수의사다움으로
10명의 답변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보호자의 알 권리를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수의사의 전문성을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제도의 준비와 절차를 고민했고, 누군가는 수의사 사회 내부의 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차이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수의학도이고,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답변을 한데 모으자,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남았다.
전문성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문성을 이유로 사회의 신뢰를 요구한다면, 그 전문성이 왜 필요한지 설명할 책임도 함께 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보호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곧 수의사의 전문성을 부정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수의사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이 보호자의 질문과 요구를 무시하는 이유가 되어서도 안 된다.
결국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하나의 법안만이 아니었다.
몇 년 뒤 우리가 진료실에 서게 되었을 때, 보호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동물의 건강을 위해 보호자와 함께 고민하는 수의사.
자신의 판단을 설명할 수 있는 수의사.
전문성을 지키면서도 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수의사.
그리고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수의사.
아직 우리는 수의사가 아니다.
그래서 모든 답을 알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수의사 사회를 물려받고 싶은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수의사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