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AI 피해에 백신 도입론 재점화..산란계협회·가금수의사회 “시범 접종이라도”
정부는 신중론 여전..방역 행정 부담 증가, 비관세 무역장벽 약화 우려도
지난 겨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다시 한번 큰 피해를 일으키며 백신 도입 논의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산란계 농장과 가금수의사들은 고위험지역, 차단방역 수준이 높은 농장부터라도 백신을 시범 도입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산란계 농장에서는 음압 환기 시스템으로 인한 공기 전파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정부는 여전히 신중론이다. 중국을 제외한 선진국 사례를 살피고, 이르면 내년 혈청학적 DIVA가 가능한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신을 시작하면 중국 등 백신접종국으로부터의 가금축산물 수입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점도 지목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국회의원(경기 화성시갑)과 산안마을, 대한산란계협회는 4월 27일(월)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상습 AI발병 농장 대책 및 AI백신 정책 타당성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고병원성 AI 산란계 피해 집중에 계란값 상승
‘음압 환기 타고 들어온다’ 차단방역으론 원발 제어 한계
시범 접종 제안..차단방역 우수농장이라도 먼저
인체감염 위험은 일축
2024-2025 겨울 국내 가금농장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62건이다. 산란계에서만 1천만수가 살처분될 정도로 피해가 집중됐다. 산란계가 줄고 강화된 방역조치로 인해 수급이 불안정해니 계란값은 오른다. 5월 5일 기준 계란값은 7,273원을 기록했다(특란 30구).
이날 발제에 나선 서울대 권혁준 교수는 “(고병원성 AI) 발생 때마다 백신 정책을 거론하지만, 봄이 되어 철새가 북상하고 상황이 마무리되면 잊어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농장 간 전파는 잘 관리하고 있지만 철새로부터 농장에 들어오는 원발을 어떻게 막을 지가 핵심”이라고 지목했다.
농장 차단방역 강화와 강력한 능동예찰을 중심으로 한 현행 방역정책이 농장 간 전파 위험을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원발농장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포천에서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는 대한산란계협회 정근수 감사는 “산란계 농장은 음압 환기로 들어가는 공기의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주변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바이러스 배출량이 늘어나거나, 인근 살처분 현장으로부터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농장의 환기 시스템을 통해 바이러스가 유입된다는 것이다. 농장으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지난 겨울 국내 유입된 H5N1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예년에 비해 감염력이 10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규모도 예년에 비해 컸다. 들어오는 바이러스의 감염력과 정도에 따라 가금업계의 피해는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경향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가금수의사회 송치용 회장은 백신 도입이 가금농장 피해를 극적으로 줄이고, 계란값 안정과 산업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살처분보상금에 들어가는 재원을 백신 도입을 위한 예방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도입안도 제시했다. 기존에도 높은 차단방역 역량을 갖춘 일부 산란계 농장에 시범적으로 접종하는 형태다. 전담 가금수의사를 지정해 철저한 사후관리를 벌이고, 항체검사는 물론 정기적인 폐사계 항원검사를 통해 야외주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 시범 백신 농장이라도 야외주 감염이 확인되면 일반 농장과 마찬가지로 살처분하는 조건이다.
‘고병원성 AI 백신을 사용하게 되면 무증상 감염으로 인한 확산이나 돌연변이로 인해 인체감염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일축했다.
송 회장은 “중국에서는 백신을 통해 포유류 감염력이 높은 야외주가 오히려 도태됐다”며 “백신을 해야 인체감염 가능성이 더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보다 반복되는 살처분 작업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권혁준 교수는 “어떤 상황에 어떻게 백신을 사용하겠다는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상시백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농장도 백신을 도입하면서 방역당국에 모든 것을 오픈하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시범사업이라도 최대한 협조’
중앙정부는 신중론 여전
2027년 DIVA 백신·진단법 개발
방역행정 부담, 무역장벽 약화 우려도
경기도 이은경 동물방역위생과장은 “중앙정부에서 AI 백신 도입을 결정한다면 가장 먼저 접종할 곳은 경기도”라고 말했다. 산란계 농장이 밀집되어 있고, 물류도 집중되어 있다 보니 방역이 항상 어렵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이라도 최대한 협조하겠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농식품부 황성철 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장은 “작년에도 중국에서 수입된 열처리 가금육에서 고병원성 AI 유전자가 검출됐다”며 백신을 사용하는 중국도 여전히 유행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 발생을 보고하지 않는 중국은 문서상으론 ‘고병원성 AI 청정국’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황성철 과장은 “EU의 도입 사례도 지켜보고 있지만 완벽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리에 백신을 도입한 프랑스에서도 백신농장에서의 발생이 늘고 있고, 영국에서도 고병원성 AI 발생이 기존 최대치의 2배에 달해야 편익이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는 것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이윤정 AI연구진단과장은 “WOAH도 백신은 살처분 정책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권고한다.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려면 감염항체와 백신항체를 구분하는 DIVA가 반드시 요구된다”면서 2027년까지 DIVA 백신과 그에 따른 진단법을 개발할 예정임을 덧붙였다.
당장 백신을 도입하면 현재도 포화상태인 방역행정 부담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백신에 따른 혈청예찰뿐만 아니라 숨어 있을지 모를 야외주 감염을 찾아내기 위한 항원예찰 물량까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이미 포화 상태인 지자체나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에서 추가로 담당할 수 있을지, 국가조직을 늘릴 수 없다면 누가 담당할 것인지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성철 과장은 “(고병원성 AI) 백신을 도입하면 중국이 우리 가금산업을 어떻게 공략할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신 도입 여부가 무역 장벽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황성철 과장은 “(백신을) 전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다. 면밀한 정책적 검토를 통해 신중히 추진하겠다”면서 “곧 마련할 방역개선대책에서도 백신 부분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