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고병원성 AI에..AI 백신 요구 다시 수면 위로
개별 농장 방역만으론 원발 막기 어렵다..지역 단위 철새 대응 효과 주목
이번 겨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피해가 커지면서 AI 백신 도입 요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대한산란계협회는 11일(수) 양재 aT센터에서 고병원성 AI 방역대책 개선을 위한 가금수의사회와 간담회를 개최했다.

외부 공기 빨아들이는 환기 시스템..차단방역으론 AI 방지 한계
철새 접근·원발 발생 막는 지역 단위 대응 필요
이날 간담회 시점까지 25/26 겨울 가금농장에서 발생한 고병원성AI는 42건이었다. 설 연휴를 지나면서 발생농장은 46곳으로 더 늘었다.
간담회에서는 차단방역을 강화하기 위한 징벌적 규제만으론 원발 발생을 막기 어렵다는 인식이 드러났다. 농장에 출입하는 사람·차량에 대한 소독 등 차단방역도 물론 중요하지만, 철새나 주변 농장 발생으로 인한 AI 바이러스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한국가금수의사회 송치용 회장은 “그간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서 농가의 방역수준과 의지는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면서도 “수의사 출입도 막고, 철새가 덜 오도록 농장 주변 논밭까지 다 갈아엎은 농장에서까지 AI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이래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선 가금수의사인 송 회장은 “지금도 일주일에 2~3일은 (AI 방역을 위한) 정기검사, 출하검사를 다니는데 ‘열심히 하면 AI를 예방할 수 있겠구나’ 하는 보람도 없다”면서 “방역정책을 더 강화할 게 남았는지, 강화한다 한들 뒷받침할 행정력은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고병원성 AI의 피해 정도는 가금농장이 얼마나 방역을 열심히 하는지 보다 그해 겨울 국내 유입된 바이러스의 오염 정도나 감염력에 더 좌우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차단방역을 열심히 하는지’가 여부가 AI 발생을 가르는지를 두고서도 회의론이 불거졌다. 권혁준 서울대 교수는 “발생농장에서 AI가 터질만한 이유를 찾자면 여럿 잡아낼 수 있겠지만, 상황이 비슷한 다른 농장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며 농장 책임으로만 몰아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산란계 농장의 구조적인 취약성도 거듭 지적됐다. 김재홍 산란계협회 총괄국장은 “외부 공기를 빨아들여야 하는 산란계 농장의 환기시스템 상 (AI 바이러스의) 오염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기영 산란계협회 세종지회장은 2017년에 이어 2025년에 AI가 다시 발생한 경험을 소개하며 “(개별 농장의) 방역 미흡이 아닌 구조적 실패임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주변 지역 가금농장에서 AI가 발생하면 증폭된 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확산되고, 환기 시스템을 통해 산란계 농장 내부로 유입된다는 점을 지목하면서다.
이와 관련해 간담회에서는 철새 접근과 원발 발생을 막기 위한 지역 단위 대응 필요성을 강조됐다. 개별 농장의 노력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천안 풍세면, 김제 용지면 등 고병원성 AI가 다발하면서 피해 규모도 큰 가금농장 밀집지역에서 이번 겨울 레이저를 활용한 조류퇴치기를 다수 설치해 가금농장 밀집지역으로의 철새 접근을 막으려 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김점주 한국양계연구소장은 “이들이 철새 북상시기까지 잘 버텨낸다면, 서해안 벨트 전역에서 (조류퇴치기를) 활용해야 한다”면서 특정 지역에서 철새를 몰아낸 여파로 주변 가금농장의 발생 압력이 높아졌는지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 도입 요구 다시 수면 위로
찬반 논쟁 비슷하지만..유럽 도입 등 해외 상황은 달라졌다
‘도입 축종·범위·사후관리 등 통합적 검토해야’
이처럼 차단방역을 열심히 해도 원발 발생을 막기 어렵다는 인식은 백신 도입 요구로 이어진다. 이만형 산란계협회 이사는 “불가항력적인 한계에 부딪혔다”면서 이미 판명된 다발지역을 대상으로 백신을 시범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년 주기로 대규모 발생이 벌어질 때마다 AI백신 논의도 반복되어 왔다. 찬반 주장의 요지도 비슷하다.
백신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야외주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고, 감염되더라도 바이러스 배출이 크게 줄어 수평확산 위험이 감소한다는데 주목한다. 대규모 발생 위험이 줄어드는만큼 살처분으로 인한 직접 피해는 물론 계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여파도 억제할 수 있다.
반대측은 무증상 감염이 물밑 전파되며 AI 발생을 억제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예방 목적의 상시백신 형태가 될 수밖에 없는데, 주사비용과 행정관리 부담이 따라붙는다. 백신이 AI 바이러스 변이를 가속화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다만 달라진 점은 해외 상황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일부 가금 축종에 백신을 도입했거나 임상시험을 벌이고 있고,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백신에 보수적이었던 일본에서도 정책 변화 조짐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권혁준 교수는 “해외에서 여전히 문제인 뉴캣슬병을 백신정책으로 극복한 성공경험이 이미 있다”면서 “철저한 준비로 백신을 도입한다면 고병원성 AI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시백신으로 도입한다면 백신항체 모니터링은 물론 폐사·위축 개체를 중심으로 야외주 AI 항원 모니터링을 벌여야 한다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장형관 전북대 교수는 AI 백신을 도입한다면 기존 방역정책을 보완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상 상황에 긴급히 도입하는 형태가 아닌 예방적 목적의 상시백신이라는 것이다.
뉴캣슬병처럼 모든 가금에게 일괄 접종하는 방식은 비용 타당성이 없고, 대신 기존의 살처분 정책을 바탕으로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발생을 억제하는 수단으로서 국가별 환경을 고려해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형태다.
장형관 교수는 “유럽은 국가별 상황에 따라 어떤 백신을 어떻게 투입할 지, 사후관리는 어떻게 할지, 백신접종축으로부터 생산된 가금산물은 어떻게 거래할 지 등을 통합적으로 시험하고 있다”면서 “한국이 AI 백신을 검토한다 해도 이러한 차원으로 접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