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물병원 진료 데이터, 정말 내 것일까? 전자차트 선택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

SaaS 칼럼니스트 한나 기고


4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국내 동물병원의 운영 환경이 빠르게 디지털화되면서, 전자차트(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차트)는 동물병원의 진료 흐름과 운영 기준을 좌우하는 핵심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 동물병원 수는 지난 10년간 약 40% 증가했고, 반려동물 양육가구 비율은 2025년 기준 29.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시장 확대와 동물병원 간 경쟁 심화로 기존 운영 시스템을 재정비하려는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전자차트 변경 과정에서 진료데이터와 처방·처치 코드의 소유 및 이전 권한 문제가 업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자차트 교체 과정에서는 수년간 축적된 진료기록, 처방 이력, 처치 코드, 청구 기준의 이전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 이때 핵심 쟁점은 데이터 백업 여부가 아닌, 동물병원이 축적한 진료데이터와 코드 체계에 대한 소유권과 이전권이 어디까지 보장되는지다.

동물병원에서 생성된 진료기록, 처방코드, 처치 이력은 수의사가 직접 입력하고 축적한 데이터다. 그러나 실제 계약 시 해당 데이터의 소유권과 이전 범위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전자차트가 동물병원 운영의 핵심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과 달리, 차트 변경 시 데이터와 코드 체계를 어떻게 이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업계 기준은 아직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데일리벳 기사에 의하면 한국동물병원협회(KAHA)는 이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뤘다. KAHA는 국내 주요 전자차트(EMR) 업체들에 진료데이터 소유권이 동물병원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차트 변경 시 원활한 데이터 이관에 협조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업계 차원의 원칙적 합의가 필요할 만큼 이 문제가 현실적인 이슈로 부각됐다는 의미다.

법적 근거도 있다. 수의사법 제13조는 진료기록 보존 의무를 수의사와 동물병원에 부과하고 있다. 진료기록을 만들고 보존해야 할 법적 의무가 동물병원에 있다면, 그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과 이전권 역시 동물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법적으로도 타당하다.

차트 변경 시 간과하기 쉬운 또 하나의 쟁점은 코드 체계다. 진료기록 데이터뿐 아니라, 동물병원이 장기간 사용해온 처방·처치 코드의 소유 및 이용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인의학 전자차트(EMR) 시장에서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와 같은 공식 표준 코드 체계가 활용된다. 병원이 어떤 전자차트를 사용하더라도 일정한 표준을 기반으로 진료정보를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업체가 코드 자체를 독점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반면 수의 임상 분야에는 아직 공식적으로 표준화된 처방·처치 코드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상황에서 특정 업체가 자사가 구축한 코드 체계를 독점적 권리 대상으로 주장할 경우, 동물병원은 차트 변경 시 기존 진료 체계와 청구 기준을 그대로 이전하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전자차트 업체들의 계약서와 이용약관을 살펴보면, 데이터와 코드의 귀속 주체에 대한 입장이 업체마다 명확히 다르다. ‘제품을 사용하면서 입력한 모든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은 계약 해지 이후 동물병원에 있으며, 원본 데이터를 제공한다’고 명시하는 업체가 있는 반면, ‘프로그램 및 이와 관련된 모든 제작물의 저작권과 소유권은 차트 회사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업체도 있다.

후자의 해석에 따를 경우, 업체가 프로그램 사용자에게 사용하도록 제공한 코드 체계를 기초로 동물병원이 작성한 데이터의 소유권 또한 회사에 있다고 보아야 할지 해석상 명확하지는 않으나, 직접 설정하고 수년간 사용해 온 처방·처치 프리셋과 코드 내역들 조차 동물병원 소유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계약서의 문구 하나가 동물병원의 진료 데이터 주권 전체를 좌우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동물병원이 매일 사용하는 약품, 진찰료, 검사, 처치 코드가 특정 업체의 자산으로 해석된다면 차트 변경은 사실상 제한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 바꿀 수 있더라도, 코드 체계가 묶여 있다면 동물병원의 선택권은 계약상 권리가 아니라 전자차트 제공업체의 협조 여부에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동물병원 전자차트 이전/신규 계약 시에는 다음 기준들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첫째, 동물병원이 사용해 온 처방·처치 코드(프리셋 포함)의 소유권이 동물병원에 있는가, 차트 업체에 있는가?

계약서에 ‘프로그램 및 이와 관련된 모든 제작물의 저작권·소유권은 차트 회사에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면, 수의사가 직접 입력하고 축적한 처방 코드 내역들 조차 업체 자산으로 해석될 수 있다.

둘째, 서비스 이용 중 입력한 모든 데이터의 소유권이 계약 해지 이후에도 병원에 있는가?

일부 전자차트 업체의 계약서는 데이터를 포함한 ‘모든 제작물’의 소유권을 동물병원이 아닌 업체로 규정하고 있어, 해지 후 원본 데이터 반환 여부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셋째, 계약 종료 후 병원이 원본 데이터를 실제로 수령할 수 있는가?

일부 약관은 계약 만료 시 모든 데이터베이스를 삭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본 데이터를 동물병원에 전달하고, 즉시 폐기가 이루어지는 구조인지 확인해야 한다.

넷째, 제3자 차트사로의 데이터 이전 시 업체의 실질적 협조가 계약서에 명문화되어 있는가?

전자차트 교체는 동물병원의 정당한 경영 결정이지만, 데이터 이전 과정에서 기존 차트 업체의 협조가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협조 의무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동물병원의 전자차트 변경 권리는 업체의 자발적 협조 여부에 달린 셈이 된다. 계약 체결 전 데이터 이전 절차와 업체 협조 범위가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다섯째, 전자차트 교체 과정에서 수의사법상 진료기록 보존 의무 이행에 공백이 생기지 않는가?

수의사법 제13조는 진료기록의 보존 의무를 수의사와 동물병원에 부과하고 있다. 차트 교체 과정에서 데이터 이전이 지연되거나 누락될 경우, 법적 보존 의무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새 차트로의 이전이 완료되기 전까지 기존 진료기록에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지, 이전 일정과 데이터 검증 절차가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진료 데이터의 접근·이전 권한을 둘러싼 전자차트(EMR) 업체와 의료기관 간의 갈등은 해외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2021년 미국은 21세기 치료법(21st Century Cures Act)을 통해, 전자차트 업체가 병원이나 환자의 데이터 접근·이전을 부당하게 막는 ‘정보 차단(Information Blocking)’ 행위를 법으로 금지했다. 전자차트 업체가 이를 위반할 경우 건당 최대 100만 달러의 제재금이 부과될 수 있다.

법적 규제가 마련된 이후에도 충돌은 계속됐다. 2024년 데이터 플랫폼 기업 Particle Health는 미국 최대 EMR 업체 Epic Systems가 자사의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경쟁사의 데이터 접근을 차단하고 신흥 시장 진입을 봉쇄했다며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 연방법원은 소송의 핵심 청구를 인정해 재판을 계속 진행하도록 했다.

이러한 흐름은 진료 데이터가 차트 업체의 시스템 안에 저장된 정보뿐만 아니라, 의료기관과 환자, 그리고 의료 생태계 전체의 접근성과 경쟁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기반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의 시장 역시 이 흐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동물병원 전자차트 시장에서도 진료데이터 접근권, 이전권, 코드 이용권에 대한 원칙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동물병원 전자차트 시장의 경쟁이 가속화될수록 수의사가 확인해야 할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기능이 좋은 차트를 고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물병원이 축적한 진료데이터와 코드 체계에 대해 어떤 권한을 갖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동물병원 전자차트 데이터와 코드의 소유·이용 권한을 둘러싼 법적 쟁점이 부각되고 있다. 업체마다 계약서에 명시된 데이터 귀속 조항이 다르고, 그 차이가 병원의 실질적 권리를 좌우한다는 사실이 업계에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수의사가 직접 쌓아온 데이터를 스스로 확인하고, 필요할 때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답은 명확해야 한다. 진료 데이터의 실질적 주체는 그 데이터를 작성하고 활용하며, 법적으로 보존할 책임을 지는 수의사와 동물병원이다. 전자차트는 데이터를 보관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동물병원이 만든 진료기록과 코드 체계에 대한 접근권과 이전권은 처음부터 동물병원에 있어야 한다.

내 동물병원 진료 데이터, 정말 내 것일까? 전자차트 선택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