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구’가 남긴 교훈과 수의사의 역할 – 전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질병관리부장/수의학박사 이명헌
# ‘늑구’의 일탈
2026년 4월 8일 오전 9시 18분경, 대전광역시 중구 사정동에 위치한 공영동물원 오월드에서 2살 된 수컷 늑대 ‘늑구’가 사육장을 탈출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비록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공포와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무사귀환을 바라는 각계각층의 애정어린 관심과 응원이 이어졌고 그 덕분으로 ‘늑구’는 특별한 사고 없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늑구’의 생환 과정은 전국 동물원 수의사들의 자발적 협진과 첨단기술이 이루어 낸 성과로 평가된다. 탈출 이튿날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 진료종보전분과 소속의 청주동물원, 광주 우치동물원, 서울대공원, 에버랜드, 전주동물원, 국립생태원 수의사들이 오월드에 집결하여 교대로 상주하며 마취총 격발 거리를 세밀히 조정하는 등 구조작전을 진두지휘하였다. 탈출 9일 만인 4월 17일, 도심에서 2km 떨어진 고속도로 나들목(IC) 인근 야산에서 드디어 ‘늑구’의 위치가 특정되었고 현장에 대기 중이던 수의사가 20m 거리에서 마취총을 격발하여 엉덩이 부위에 명중시킨 데 이어 퇴로를 차단하고 있던 구출 대기조가 생포에 성공하였다. 포획 직후에도 청주동물원의 야생동물 응급진료차량에서 지속적으로 산소를 공급하며 호흡을 모니터링하고 마취를 안정화하는 등 안전 귀가를 위한 수의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계속되었다(사진 1).

원내 이송 후 방사선 및 정밀 내시경 검사를 실시한 결과, ‘늑구’의 위 내부가 탈출 기간 섭취한 풀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길이 2.6cm의 낚싯바늘이 발견되었고 인근 동물병원과의 협진으로 비침습적 내시경 수술을 통해 위 내 이물질을 성공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열흘간에 걸친 ‘늑구’의 일탈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늑구’는 특별 사육장에서 의료진과 사육사의 극진한 돌봄 속에서 점차 건강을 회복하며 일상에 복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반복되는 동물원 사고!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동물원으로 알려진 창경원이 개장한 지 불과 2년 만인 1911년 사육 중인 원숭이가 우리를 빠져나와 전각 지붕 위를 돌아다니며 소동을 일으켜 사살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동물원 설립 초기부터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후 대중의 관심을 크게 모았던 1976년 창경원 침팬지 탈출 사건을 필두로 2005년 어린이대공원 코끼리, 2013년 서울대공원 호랑이, 2023년 어린이대공원 얼룩말 세로, 2024년 성남시 생태체험장 타조 타돌이에 이르기까지 야생동물의 탈주본능은 계속되고 있다(사진 2).

과거의 사례를 토대로 동물원 탈출 사고를 분석해 보면 가장 빈번하고 대표적인 원인은 인간의 관리 부주의로, 격리문 미잠금이나 청소 시 동선 통제 실패가 이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천재지변에 의한 격리구조물 훼손이나 동물의 도약 능력을 과소평가한 오픈형 천장과 같은 규격미달의 사육시설도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마지막으로 상실감과 고립감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초래하는 행동학적 폭발이다. 얼룩말 세로나 타조 타돌이의 사례처럼 사회적 무리 생활을 필수적으로 영위해야 하는 개체가 조실부모하거나 짝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정서적 붕괴는 먹이 거부, 정형행동을 넘어 시설물을 직접 파괴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한다. 궁극적으로 보면 그간의 사건사례는 동물을 능동적 저항 주체로 인식하지 않고 단순한 전시물로 취급하는 후진적 사육 시스템과 야생동물의 본성을 무시한 인간의 오만무지함이 빚어낸 명백한 인재임을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인식전환이 필요할 때
‘늑구’ 탈출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전국 공영동물원 협의체’를 공식 출범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시설·인력·운영 전반에 대한 보완 조치와 함께 관리체계 고도화에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당초 2028년 12월까지 유예되었던 동물원 허가제 이행 시한을 2027년 12월까지로 대폭 단축하는 등 강력한 법 집행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전국 121개 동물원 중 90% 이상이 조기에 허가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규제 강도를 상향 조정하는 동시에 제도적 기술적 지원도 병행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실내 사설 동물원이나 동물 카페들은 여전히 휴게음식점, 일반음식점, 통신판매업 등으로 우회 등록하여 국가 감시망을 회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관련 법규정도 기본적인 필수사항만을 다루고 있고 그 내용도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최근에는 동물원이 과거의 단순 전시 기능에서 벗어나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야생동물의 전문적 구조·보호 기능과 생물다양성 보전 교육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공성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관람객의 일방적 유희가 아닌 동물의 야생성 보존과 리와일딩에 초점을 맞추어 철창, 콘크리트 가벽, 조잡한 목재 울타리를 철거하고, 자연 서식지의 생태 환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생태 몰입형 관람 구조로 전환하자는 게 핵심이다. 아울러 동물에게 다양한 자극과 행동 선택권을 제공하여 자연스러운 행동(종 고유행동)을 유도함으로써 제한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무기력을 해소하는 동시에 생물다양성 보존 교육 가치도 구현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종 맞춤형 행동풍부화 프로그램 운영도 필수적으로 권장된다.
# 동물원 재난사고 대응! 수의사의 역할이 핵심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번 ‘늑구’의 무사생환과 일상회복에는 전문성에 기초한 수의사의 눈물겨운 노력과 희생이 빛을 발했다. 동물원 탈출사고에서 수의사 활동 영역은 사고 발생 이후 야생동물의 마취포획이나 의료조치와 같은 단순한 수습 지원에 머무르지 않으며, 사육환경 전반에 걸쳐 생물학적·물리적 안전성을 예방의학적으로 점검하고 통제하는 등 매우 포괄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사육사들의 육안 점검 데이터를 기초로 동물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분변 검사, 혈액 검사, 영상학적 검사, 정기적인 전염병 스크리닝을 통해 질병으로 인한 돌발적 공격성 발현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구조 강도에 영향을 미치는 철책의 부식 상태, 동물의 신체 상해를 유발할 수 있는 날카롭고 뾰족한 가장자리나 모서리 유무를 상시 점검하고, 음용수 용기의 살균 처리를 지도·감독하는 등 사육시설의 환경위생 관리도 수의사의 몫이다.
요컨대 주요 선진국에서는 수의사가 동물원 안전관리 매뉴얼 작성과 준수 여부를 책임지고 있으며 사고예방 시스템 설계 및 동물복지 개선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지자체와 소방을 중심으로 대응체계가 운영되는 등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아쉽다. 특히 수의사 역할이 제도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책임 범위가 모호할 뿐 아니라 능동적인 역할 수행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시급히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수의사의 전문성과 역량을 원동력으로 동물원 재난관리체계의 발전적인 재편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