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의학에서 원헬스까지..한국 야생·특수동물 수의학의 깊이와 확장

제3회 야생·특수동물 증례 세미나 개최, 현장 임상 사례와 연구 성과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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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야생·특수동물 증례 세미나가 8월 20일(목) 춘천 강원대 수의대에서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제2기 야생동물 질병 전문 인력 양성 특성화 대학원(강원, 전북·제주·전남, 충북)이 주최하고 강원대학교 수의과대학 및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주관했다.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된 이날 행사에 특성화 대학원 연구진을 비롯해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국립생태원, 전국 주요 동물원의 수의사와 관계자들이 운집했다.

강원대 안상진 교수를 좌장으로, 참석자들은 야생동물과 특수동물 진료의 최신 지견을 공유했다. 개별 환자를 정밀하게 진단하는 ‘개체의학’부터 동물의 삶의 질을 고려하는 ‘동물복지’, 그리고 생태계와 인간 사회의 건강을 연결하는 ‘원헬스 및 보전의학’에 이르기까지 한국 야생·특수동물 수의학의 다층적인 동향을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전북야생동물센터 정태영 수의사

야생동물·특수동물 임상은 정형화된 진단 기준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고도의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전북대 정태영 수의사는 둔상 충돌로 내원한 까치의 안구 손상 증례를 바탕으로 야생조류 안과 질환의 임상적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 조류는 안구가 골격과 맞닿아 있어 충돌 시 전안방 출혈, 포도막염, 외상성 백내장 등 비가역적 시각 손상이 흔히 발생한다. 특히 모양체 부위의 안방수 배출 이상이나 안압 상승은 시신경 허혈성 괴사로 이어질 수 있어 정확한 초기 진단이 필수적이다.

정 수의사는 “외과적 수정체 제거술의 경우 수술 개체의 절반 가까이에서 합병증이 발생하므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수술 전 초음파로 후안부 이상 여부를 진단하고 합병증이 없는 초기 단계라면 보존적 치료를 우선 고려할 것을 권장했다. 아울러 초기 진단 시점에 신중한 평가를 거쳐 수술 후 방생 가능성이나 안락사를 결정하는 명확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강원대 김영빈 수의사는 우측 손목 소실로 장기 계류 중이던 독수리에서 발병한 ‘다발성 전이성 편평세포암종(SCC)’ 증례를 공유했다.

전신 쇠약 상태로 내원해 우측 날개 만성 괴사 부위의 주관절 절단술을 받은 독수리는 회복 중 우측 후지에서 신규 파행 증상을 보였다. 영상 진단으로 경척족골 골융해와 간·둔부 내 종괴를 확인하고 보존 처치를 시행했으나 폐사했다. 부검 및 조직 검사를 통해 SCC로 최종 확진됐다. 원발 부위는 특정되지 않았으나, 초기 손목 병변에서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김 수의사는 “장기 계류 개체의 신규 증상은 기존 장애와 분리해 독립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만성 병변에 대한 적극적인 조직 생검과 전신 영상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남대 임해린 교수는 토끼의 난소자궁절제술(OHE) 후 발생한 급성 신장손상(AKI)의 내과적 관리 사례를 발표했다.

수술 후 무뇨증과 함께 신장 수치가 급증했으나, 특수동물 임상의 특성상 혈액은행이 없고, 소형 개체라 복막 투석 또한 어려웠다. 이에 이뇨제(furosemide)를 여러 번 투여하여 배뇨를 유도하면서 내과적 관리를 진행해 회복에 이르렀다.

임 교수는 “토끼는 통증을 숨기는 피식동물이라 조기 발견과 섭식 관리가 어렵고, 퇴원 후 마약성 진통제 사용 제한 등 합병증 리스크가 크다”며 급성 손상의 만성 이행을 막기 위한 장기 모니터링 체계를 강조했다.

전남대 임해린 교수

임상적 치료와 함께 동물의 통증을 최소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복지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서울동물원 이하늬 수의사는 사육 치타에서 다발하는 신부전의 주요 원인으로 전신 아밀로이드증을 지목했다. 사육 개체군의 낮은 유전적 다양성과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변형 SAA 단백질이 장기에 축적되며 신장 부전을 유발한다는 분석이다.

이 수의사는 침습적인 조직 생검 대신 혈액 SAA 모니터링을 통한 조기 진단법을 제시했다. 아울러 단백뇨 관리를 위한 약물(ACEi/ARB) 투여, 저단백·저인 식이, 고양잇과 특성을 고려한 NSAID 자제, 사육 환경 개선 등 신장 친화적 관리 프로토콜을 소개했다.

청주동물원 홍성현 수의사는 복강경을 활용해 사자의 수술 통증을 최소화한 증례를 발표했다. 동물원에서 중성화 수술은 한정된 수용 공간과 전시 동물의 복지를 고려하여 시행된다. 절개창이 커 술 후 관리가 어려운 기존 난소자궁절제술(OHE) 대신, 투 포털(Two-portal) 복강경 난소 제거술(OE)이 진행되었다.

해당 사자는 사전 메디컬 트레이닝을 거쳐 허벅지 근육 주사가 가능한 상태였으며, 서울대공원과 달성공원 등 전국 동물원 수의사들이 모여 협업 세미나 형태로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을 받은 사자는 이튿날 통증 반응 없이 평상 활동에 복귀하여 최소 침습 수술의 탁월한 통증 관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포획 시 물리적 접촉을 줄여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기술적 접근도 복지의 중요 축으로 공유됐다. 국립생태원 진세림 차장은 원격 약물 투여 시스템(RDD)의 원리와 함께 종별·상황별 장비 및 다트 선택 기준을 설명했다.

지난 4월 탈출 늑대 ‘늑구’ 포획 당시의 현장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기도 했다. 진 차장은 전국 동물원 수의사들이 마취총 훈련을 함께 진행하고 당번을 교대하며 대비했던 협력 과정을 회고하며, 야생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신속히 구호하기 위한 수의사 간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지난해 4월 1일 청주동물원에서 진행된 사자 복강경 중성화 수술

나아가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을 통합적으로 조망하고, 야생동물 개체군의 전염성 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거시적 연구 성과들이 공유됐다.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경의범 수의사는 전국 22개 국립공원에서 3년간 실시한 SFTS(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바이러스의 시공간 위험성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국내에서 매년 평균 2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SFTSV는 특이 치료제나 백신이 없어 예방과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구진이 총 1만 3,666마리의 참진드기를 채집·분석했는데, 이 중 작은소피참진드기가 96%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계절별로는 5월에 전체 개체 수가 가장 많았고, 성충은 7월, 유충은 9월에 각각 출현율이 높았다.

총 997개 풀(Pool) 중 치악산(4%), 지리산(2.73%), 소백산 등 10개 공원의 21개 풀에서 SFTS 바이러스 양성이 확인됐다. 경 수의사는 “자연보호구역 내 바이러스의 지속적인 순환이 입증된 만큼, 연도별·지역별 가변성에 대응하고 탐방객 안전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장기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충북대 이유진 연구원은 구조된 족제비에서 확인된 Pasteurella oralis, Spirometra mansoni 동시 감염 증례를 다뤘다.

내원 당시 심한 호흡곤란과 패혈증 소견을 보인 족제비의 흉강천자 및 CT 검사 결과, 광범위한 우측 무기폐와 세균성 흉막폐렴이 관찰됐다. 부검을 통해 개·고양이 구강 기회감염균인 P. oralis에 의한 다발성 폐농양과 전신 패혈증을 확인했다. 흉벽·근육·심낭 등 전신 조직에서 인수공통 기생충인 S. mansoni의 유충을 다수 적출했다.

이 연구원은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예상치 못한 감염성 인자를 포착하고 기록을 축적함으로써, 생태계 내 질병 감시 파수꾼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전했다.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신은빈 수의사는 한반도에 재도입된 멸종위기 붉은여우의 중증 개선충 감염증 치료에 경구용 외부 구충제 ‘Fluralaner’ 단회 투여 프로토콜을 성공적으로 적용했다고 밝혔다.

개선충은 야생동물의 야생 적응 과정에서 관리해야 하는 핵심 질병으로 지목됐다. 소백산 권역 내에서 진료한 여우 15마리 중 10마리에서 개선충 감염이 확인됐다.

기존 약제(Ivermectin)는 증상 개선까지 피하 주사를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해 포획 및 마취에 따른 스트레스와 신경·간독성 리스크가 컸다. 이에 격리 입원 환경에서 3개월 지속형 경구제인 Fluralaner를 단회 투여하고 보온·항생제 처치를 병행한 결과 전신 상태가 안정적으로 회복됐다. 신 수의사는 “멸종위기종 복원 과정에서 전염률과 치사율이 높은 기생충성 질병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모니터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원대 유강연 수의사는 너구리 옴진드기 감염증의 예후를 현장에서 신속히 예측 가능한 ‘MANGE score’ 모델 개발 성과를 발표했다. 최근 3년간 구조 입소한 너구리 중 67%가 개선충 감염 개체일 정도로 발병률이 높지만, 종 특이적 혈액 참고구간(Reference Interval)이 없어 예후 예측이 어려웠다.

유 수의사는 임상적으로 안정화된 개체 22마리를 통해 너구리 최초의 혈액학·혈액화학 기준치를 설정한 뒤, 입소 개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폐사 위험을 모델링했다. 그 결과 예후와 밀접한 5가지 핵심 변수(혈소판, BUN, 칼슘, ALP, 나트륨)를 추출해 MANGE 점수를 고안했다.

유 수의사는 “입소 첫날 혈액 검사만으로 폐사 고위험군을 조기에 선별할 수 있게 됐다”며 “자원이 부족한 구조 현장에서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중증도 분류(Triage)와 효율적인 치료 자원 배분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세미나는 야생·특수동물 단일 개체의 정밀한 진단과 치료에서 출발해 동물복지, 전염병 감시, 그리고 멸종위기종 보전에 이르기까지 수의학의 역할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대학과 야생동물구조센터를 비롯해 국립생태원, 국립공원, 전국 주요 동물원 등 서로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 모여 현장 증례와 축적된 연구 데이터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국내 야생동물의학의 임상·연구 네트워크를 한 단계 끌어올린 자리로 의미를 더했다.

김민지 기자 jenny030705@naver.com

개체의학에서 원헬스까지..한국 야생·특수동물 수의학의 깊이와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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