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벳(vet)쳐:하늘을 지키는 수의사라는 모험] 태국 수의사 Ratiwan Sitdhibutr

태국 카셋삿대학교 동물병원 맹금류 유닛의 닥터 라띠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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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은 국경을 모릅니다. 우리나라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돌본 한 마리의 새는, 먼 나라의 숲과 바다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태계를 치료하는 ‘보전의학’으로서의 야생동물의학은 그 어느 수의학 분야보다 국제적인 교류와 협력이 절실합니다. 한편, 여러 나라의 생태계의 모습이 다르듯, 야생동물수의학 현장 상황과 수의사의 모습도 다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태국이라는 또 다른 생태계의 현장에서 야생동물의학이 어떤 모습으로 뿌리내리고 있는지, 태국의 야생동물 수의사는 어떤 고민과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지 전하고자 합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의 한 기자가 태국 카셋삿대학의 교환학생으로서 실습하며, 동물병원 맹금류 유닛의 하루를 함께하고, 태국의 야생동물 수의사 닥터 라띠를 만났습니다.

왼쪽부터 닥터 라띠, Short-toed Snake Eagle, 조예원 기자, 테크니션 선생님

2025년 2월 27일, 태국 카셋삿 대학교 동물병원의 맹금류 유닛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직접 실습에 참여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본 유닛은 Kasetsart University Kamphaeng Saen 캠퍼스 수의과대학에 소속되어 있으며, 동물병원과는 분리된 독립 건물에서 운영된다.

맹금류 유닛 주 건물 내부에는 진료실과 소형 입원실들이 위치한다. 야외에는 9개의 대형 계류장과 4개의 입원실이 있어, 맹금류의 치료 단계나 크기에 따라 장소를 달리하여 보호하게 된다. 맹금류에 있어 비행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날개깃과 꼬리깃을 보호하기 위한 soft net 처리가 되어 있었고, 횃대와 먹이공급대의 높이도 다양했다.

주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소형 맹금류들이 눈에 띄었다. 평균적으로 35~50마리 정도의 맹금류가 입원 상태이며, 장애가 있어 영구계류되는 개체가 많았다.

우측 날개를 절단한 Asian Barred Owlet
우안을 적출한 Collared Scops-Owl

매일 청소와 투약 등 기본적 관리가 수행된다. 월·수·금요일에 먹이를 급여하며, 식욕 및 배변 상태를 평가한다.

여러 처치를 참관할 수 있었다. 말라리아에 감염된 히말라야 독수리(Himalayan Griffon Vulture)에게 독시사이클린을 투여하며 처치가 시작되었다.

계류 중인 Himalayan Griffon Vulture

이후 영구계류 Collared Scops Owl(국내 큰소쩍새의 근연종)의 신체검사 후, 다리에 통증 관리를 위해 멜록시캄을 적용했다.

Collared Scops Owl의 신체검사 – 비행깃 확인

다음으로 감전으로 입원한 가면올빼미(Eastern Barn Owl)가 들어왔다. 날개에 이어 한쪽 다리까지 괴사가 진행되는 것이 확인되어 안타깝게도 안락사가 결정되었다.

가면올빼미의 상태를 확인하는 닥터 라띠

이어 날개에 총상을 입어 국립공원에서 이송되어 온 Short-toed Snake Eagle의 회복 상태를 평가했다. 가골이 매우 크게 형성되며 날개의 균형이 맞지 않고, 이 때문에 발바닥에 하중이 불균일하게 걸려 범블풋이 생겼다. 다행히 범블풋의 Grade가 회복되고 있다고 판단됐다. 닥터 라띠가 “태국에서는 식용을 위해서 야생조류를 불법 사냥하는 경우도 있다”고 일러 주었다.

닥터 라띠의 설명에 따라 Short-toed Snake Eagle의 상태를 평가하는 수의대생들

다음으로는 불법적으로 개인에게 길러졌다가 구조된 검은어깨매(Black-Winged Kite)의 상태를 확인하고 비타민을 주사했다. 영양 상태가 매우 불량했고, 사람에게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방생이 어려운 것으로 평가됐다. 닥터 라띠는 야생동물의 불법 사육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에 의해 비행깃이 잘린 검은어깨매

월간 검진계획에 따라 화, 목요일에는 장기 계류 중인 개체들의 건강검진을 진행한다.

건강검진 차트

목요일에 방문하였기 때문에 건강검진을 볼 수 있었다. 검진은 체중, BCS, 혈액검사 등 기본적인 사항에서부터 시작해, 양발의 범블풋 그레이드 평가와 비행깃 평가 등 조류 특화적인 검진항목이 이어진다. 건강검진에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수의과대학 로테이션 실습생들도 함께한다. 수의대생들은 의료진의 설명을 들으며, 신체검사, 약 용량 계산 등 작업을 함께했다.

닥터 라띠의 지시에 따라 건강검진, 주사, 드레싱을 실시하는 학생기자

안녕하세요, Ratiwan Sitdhibutr입니다. 닥터 라띠(Dr. Rati)라고 불러주세요.

카셋삿대학교 동물병원의 맹금류 재활 유닛의 4년차 수의사입니다.

모든 건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다큐멘터리를 정말 좋아했어요. 특히 야생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요.

그러다 미아가 된 듯한 유조를 발견해 데려와 돌봤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결국 살려서 자연으로 돌려보내지 못했습니다. 그게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고 수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저는 정말 새를 좋아하고, 탐조도 즐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이미 새들의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맹금류는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한 종의 맹금류가 생태계에서 사라진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수많은 맹금류 종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히말라야독수리(Himalayan Griffon Vulture) 같은 대표적인 종도 예외가 아닙니다.

게다가 태국에서는 서식지 파괴와 같은 요인 외에도 맹금류가 공격받고 잡아먹히는 일도 있습니다. 올빼미 같은 야행성 맹금류가 집 위로 날아오는 것을 불길한 징조라고 믿기 때문이죠.

생태계에서 중요한 맹금류들이 여러 이유로 감소하는 상황이죠. 그래서 저는 맹금류 유닛을 따로 운영하는 것이, 수의학으로서 생태계 균형 유지에 기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금 더 임상수의학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맹금류는 다른 야생조류에 비해 재활 과정에서 비행이나 사냥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설이 많이 필요합니다. 먹이의 종류도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시설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먹이 준비나 관리 측면에서 용이합니다.

또한 맹금류는 조류인플루엔자나 뉴캐슬병과 같은 전염병에 매우 취약합니다. 비둘기류나 오리류는 다양한 병원체를 보유할 수 있으므로, 가까운 곳에 수용하면 교차감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공간 분리는 교차감염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부상당한 맹금류를 구조해 치료해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그러나 역시 야생동물 수의사인 만큼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며, 미래의 더 많은 동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저희는 안락사되지 않고 영구계류 중인 개체를 많이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동물들을 이용해 배설물이나 혈액샘플을 수집하는 등, 치료에 이용할 지식을 축적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기생충학 연구 프로젝트도 여러 번 진행되었습니다. 현재는 조류 말라리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혈액검사와 PCR을 주로 이용합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하고 있는 연구 주제는 태국 맹금류에서 멜록시캄 적용에 대한 것입니다. 멜록시캄 투여 이후 혈액검사 및 혈청화학검사 결과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독수리가 속한 구세계독수리류는 카프로펜이나 디클로페낙과 같은 NSAIDs에 매우 민감하여, 급성신부전 등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반면 멜록시캄은 맹금류에서 매우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태국 고유 맹금류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그 공백을 메우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닥터 라띠가 1저자로서 대한수의학회지에 기고한 멜록시캄 논문: Effects on hematology and blood biochemistry profile of intramuscular meloxicam injection in Brahminy kite and Barn owl)

외상이 가장 흔합니다. 교통사고나 유리창 충돌처럼요. 물론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힘들 때가 많죠. 날개나 다리가 골절된 채 발견된 새는 외상 범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미아입니다. 부모를 잃은 새끼 새들이죠.

그물과 같은 인공물에 의한 부상도 잦습니다. 그물에 갇히기도 하죠. 태국은 농업 국가여서 작은 새들이 씨앗을 먹지 못하도록 그물을 설치합니다. 맹금류가 그런 그물에 걸리는 일도 있죠.

때로는 사람들에게 공격받은 새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자연적으로 생기기 힘든 비정상적인 골절을 발견하며 그런 안타까운 일을 마주하곤 합니다.

태국에서 중독 문제는 많지 않습니다. 저는 단 한 건만 목격했습니다.

야생동물 수의사들은 보호자를 고려할 필요 없이 동물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야생동물의 건강을 회복시키고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개체뿐만 아니라 종, 생태계 전체의 보전에도 기여하는 일이라는 보람이 있죠.

무엇보다 다양한 종을 보며 일할 수 있다는 게 크죠. 정말 재밌어요. 수많은 종에 대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머리도 많이 써야 하고, 전혀 지루할 틈이 없죠.

단점은 수입이 높지 않다는 것 하나뿐이죠(웃음).

태국은 야생동물 보호 관련 법이 그리 강력하지 않습니다. 불법으로 키워지는 동물도 여전히 많습니다.

수입 측면에서 어려움도 있죠. 대부분의 야생동물 구조치료기관은 대학 산하에 있어, 재정적으로 풍족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대학 산하에 있죠. 인건비는 대학에서 지원받지만, 그 외의 운영비는 기부금에서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가요? 약, 먹이, 소모성 의료기 등을 모두 기부금으로 마련하려니 약간의 어려움은 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태국 사람들이 매우 친절하고 자선단체에 기부를 즐기는 경향이 있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물에 대한 관심도도 좀 있어요.

불교문화가 깊이 자리 잡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베푸는 것이 다음 생에 사용할 공덕을 쌓는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제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례가 있습니다. 미아로 구조된 Collared scops owl였어요. 아주 어린 새끼였죠. 부리에 아직 난치(egg tooth)가 남아 있었고, 태어난 지 2~3일밖에 안 돼 보였습니다. 저는 정말 대부분의 시간을 이 친구를 돌보는 데 쏟아야 했어요. 가장 길게 잔 잠이 3시간 정도였습니다. 결국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어요. 훌륭한 큰소쩍새로 자랐죠.

운이 좋았던 부분도 있습니다. 매목이나 수리목에 비해 올빼미목 맹금류는 각인 문제가 훨씬 덜한 편이거든요. 매목이나 수리목이었다면 각인을 방지하기 위해 먹이 줄 때도 인형을 사용하는 등 사람에 익숙해지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훨씬 많이 필요했을 거예요. 올빼미목이어서 더 집중해 키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카셋삿 대학교 맹금 유닛에 구조되었던 Collared scops owl
닥터 라띠의 노력 덕분에 어엿한 성조가 되었다(오른쪽).

저는 가르치는 일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강의실보다는 현장에서, 좋은 임상 수의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학생들이 실습할 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배울 점이 많은 좋은 임상 수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수술도 정말 잘하는 수의사가 되고 싶어요(웃음).

저는 정말 새를 사랑하고, 그래서 제 미래가 밝은 감정으로만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물론 제가 정말 사랑하는 새들을 마주하며 일할 수 있어 기쁩니다. 그러나 현실이 밝지만은 않죠. 여전히 불법으로 키워지는 새들이 많고, 저는 정말 깊은 혐오감을 느낍니다. 가끔은 사람에 의해 다친 새를 보게 되고, 큰 슬픔에 빠지기도 하죠. 정말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 좌절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새는 언제나 착하죠(웃음).

수의대생도 다양하죠. 명확한 목표를 가진 학생들도 있고, 아직 방향을 찾는 중인 학생들도 있어요.

이미 자신만의 목표가 뚜렷한 학생들, 예를 들면 특수동물 수의사로 성장할 당신 같은 학생들은 그저 지금처럼 계속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하세요.

아직 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학생들은 좌절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일상 속에서 나아가세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흥미를 느낄 수도 있고, 때로는 수의사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걸 깨닫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 친구 중 한 명은 수의학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요리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일을 즐기고 있어요.

조예원 기자 yewon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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