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동물병원 간 가격 경쟁 유도’ 언급한 농식품부 시각에 우려를 표한다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언급한 ‘동물병원 간 가격 경쟁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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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국 동물병원 진료비가 지역별로 공개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매년 진행하는 전국 동물병원 진료비 현황조사 결과다. 일명 ‘동물진료비 공시제’다.

동물진료비 공시제는 2023년 처음 시작되어 올해로 3년차를 맞이했다. 조사 대상 항목은 지난해까지 11개였지만, 올해는 20개로 늘었다. 각 동물병원이 사전게시해야 하는 진료비 항목이 올해부터 20개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동물진료비 현황조사는 동물병원이 게시한 진료비를 조사한 뒤, 광역지자체(시·도), 기초지자체(시·군·구) 별로 중간비용, 평균비용, 최저비용, 최고비용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누구나 온라인 사이트에서 비교해 볼 수 있다.

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에 ‘부정확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 제도를 급하게 도입하고, 실적 채우기식으로 진료비 게시·조사 항목을 11개에서 20개로 늘려놓으니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전혈구 검사비’의 전국 평균값은 전년보다 10.6% 감소했는데,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과연 조사가 제대로 됐는지 의문이다.

‘광범위 구충비’의 최저가는 400원, 최고가는 4만 2천원으로 무려 105배 차이가 난다. 이런 수준의 조사 결과가 과연 소비자의 알권리 증진에 도움이 될까?

최근에는 심장사상충과 내·외부 구충이 한 번에 되는 동물용의약품을 많이 사용하는데, 조사하는 쪽에서는 ‘광범위 구충제’를 ‘회충·구충·편충·조충 등 장내 기생충 구충제’로 해석했지만, 대한수의사회 가이드라인은 ‘심장사상충과 내·외부 기생충을 함께 구충하는 종합약품’으로 분류했다.

사전에 충분한 논의 없이 조사 항목 수를 억지로 늘리다 보니 벌어진 결과다.

그럼에도 농식품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자화자찬했다.

“지역 간 평균 진료비의 편차는 항목별로 최소 1.1배에서 최대 1.7배로 나타났는데, 작년(1.2배~2.0배)에 비해 지역 간 평균 진료비 편차가 완화됐다”며 “진료비 공개 의무화에 따라 동물병원에서 가격 경쟁력을 고려하여 진료비를 낮추거나 평균에 맞추는 등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동물진료비 공시제가 시행되면서, 동물병원에서 진료비를 낮추거나 평균에 맞추려고 했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개원가의 반응은 다르다. “게시한 진료비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보호자는 거의 없다”며 제도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뇌피셜’로 결과를 해석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에도 “지역 간 진료비 편차가 작년에 비해 다소 완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작년부터 시행된 진료비 공개 제도가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더 우려되는 점은 정부 관계자의 시각이다.

주원철 농식품부 동물복지환경정책관은 “동물병원 진료비 공개로 인해 동물병원 간 가격 경쟁이 유도되고 있어, 반려동물 양육자들의 합리적인 의료 서비스 선택과 지역별 진료비 편차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물의료를 관장하는 부서의 국장급 책임자가 ‘동물병원 간 가격 경쟁 유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동물진료비 사전게시제, 동물진료비 공시제 도입이 논의될 때부터 지금까지 정부 관계자 입에서 공식적으로 ‘동물병원 간 가격 경쟁 유도’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그동안 ‘동물 의료의 투명성을 높인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한다’, ‘반려인이 합리적으로 병원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등의 표현을 써왔다. 하지만, 결국 원했던 것은 ‘동물의료의 질 저하’는 안중에도 없는 동물병원 간 가격 경쟁 유도였던 것일까?

국민건강보험제도와 다양한 재정적 지원이 있는 사람의료와 달리 펫보험 가입률조차 낮은 동물의료 시장의 차이점, 말 못 하는 동물의 진단을 위해 더 많은 검사가 필요하고, 사람과 달리 마취·진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어려움,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도매상이 아닌 소매상(약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불합리한 규제 등 동물의료비가 왜 이렇게 구성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가격을 조사해서 공개함으로써 가격 경쟁을 유도한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속마음이라면, 대통령이 쏘아 올린 반려동물 주무부처 논란을 계기로 농식품부를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

[사설] ‘동물병원 간 가격 경쟁 유도’ 언급한 농식품부 시각에 우려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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