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필 칼럼] 수의사에게도 독서가 필요하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만 얻는 행위가 아니다


1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수의사에게 ‘읽기’는 사치일까요? 보호자 상담과 차트 정리, 수술까지 있는 날이면 퇴근 후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 있고 에너지는 바닥입니다. 껌뻑거리며 충전해달라는 휴대폰의 배터리와 같은 신세죠. 그래서 많은 수의사들은 독서를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쯤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럴수록 독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우리 삶에 ‘호흡’을 돌려놓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식입니다.

  

수의사의 하루는 빠르게 흘러갑니다. 환자의 상태는 순간순간 바뀌고, 보호자의 감정은 예민하게 흔들립니다. 업무 자체가 고밀도이고, 한 생명을 책임지는 긴장감이 항상 깔려 있습니다. 위중한 환자를 다루거나 응급 케이스까지 생기면 정신적 여유는 사라지기 쉽습니다.

이렇듯 일에 쫓기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가 기계처럼 움직이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독서는 이 상황을 조용히 되돌립니다. 책을 펼치는 5분, 10분 동안만큼은 정보나 감정이 우리를 휘두르는 대신, 우리가 우리 생각의 주인이 됩니다. 독서에 몰입할수록 나로 존재하는 충만감은 커집니다.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주위 동료들에게 독서를 권하면 자주 듣는 말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독서는 바쁜 사람에게 더 필요합니다.”

바쁠수록 사고는 쉽게 굳고 감정은 쉽게 소진됩니다. 신체 근육의 긴장을 풀기 위해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듯이, 독서는 생각의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과 비슷합니다.

잠깐의 멈춤이지만 그 멈춤 덕분에 다시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독서는 우리가 수의사라는 역할을 잠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순 정보가 아닙니다. 요즘 같은 인공 지능 시대에 웬만한 정보는 검색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죠.

하지만 ‘관점’은 책을 통과해야만 생겨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면서 늘 문제를 마주하게 되는데, 이때 필요한 게 다양한 관점과 시선입니다. 문제를 하나의 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과 다양한 면을 보고 판단하는 것의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단면적으로 보면 해결책이 1-2개만 떠오르지만, 다면적으로 보면 수 개, 수십 개의 해결책이 떠오르죠. 내가 지닌 관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문제 해결력은 좋아집니다.

또한 문학 책 한 권이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인문학 책 한 구절이 갈등 상황에서의 대처 방식을 바꾸고, 심리서 한 문장이 보호자 이별(펫로스) 안내 상담의 태도를 바꾸기도 합니다.

저는 임상에서 늘 느낍니다. 좋은 수의사가 되는 길은 의학 지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사람을 이해하는 힘, 상황을 바라보는 시야, 감정의 무게를 다루는 기술 역시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해력입니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의 표면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글쓴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와 배경, 계기, 시대적 상황, 나아가 글쓴이의 숨겨진 의도까지 파악하는 걸 말합니다. 즉,’맥락’을 이해하는 것이죠.

문해력은 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원만한 일상생활과 업무,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문해력이 필수입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액면가 그대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맥락을 이해하는 게 바로 문해력입니다. 매일 수많은 보호자를 상대해야 하는 수의사에게 문해력은 정말 필수 역량인 것이죠.

수의사가 보호자의 말과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예컨대 보호자는 A를 말하고 있는데 수의사는 B라고 이해하고 대응한다. 생각만 해도 갑갑하고 아찔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그렇다면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네, 독서와 요약하기(글쓰기)입니다.

   

저는 독서를 업무 외적 취미가 아니라 직업적 생존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짧게라도 꾸준히 독서하면 다음과 같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감정 기복이 줄어든다

•보호자 상담 시 언어가 부드러워진다

•보호자와 강한 라포르(rapport)를 수월하게 형성한다

•문제 상황에서 사고가 더 유연해지고 해결력이 높아진다

•번아웃 회복 속도가 빨라진다

독서 습관이 있는 직장인일수록 상사와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더 균형 있게 성장합니다. 직장 생활을 만족스럽게 하면서 더 오래 버틸 수 있죠. 수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서는 단지 지식을 쌓기 위한 활동이 아닙니다. 지식을 넘어서 삶의 균형을 되찾고 사고의 폭을 넓히고 우리 자신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수의사에겐 보호자와의 관계를 더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행위가 아닙니다. 매일 조금이라도, 한 줄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어야 합니다.

다음 2부에서는 바쁜 수의사도 무리 없이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독서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박근필 칼럼] 수의사에게도 독서가 필요하다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