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수의사 모두의 건강을 위한 길, 동물전용의약품으로 약을 약 답게①-김대근
의약품 분쇄조제 시 약효 감소...국내 임상수의사들도 우려한다
최근 의료 기술과 수의학의 발전으로 반려동물의 기대수명이 증가하면서 보호자들은 반려동물과 더 오래 함께 삶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보호자들의 기대는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치료비에도 나타난다.
KB 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서 발간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가구 당 평균 치료비 지출은 78만 7천 원으로 2년 전인 2021년 46만 8천 원에 비해 약 70%가량 증가한 결과를 보였다. 지출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보고서에서 보호자들의 최근 관심사에 절반 이상은 반려동물의 건강관리라 답한 바 있다. 관심을 가지는 만큼 돈을 쓰고, 또 그만큼의 충분한 관리를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에 시장 역시 반응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운영하는 동물용의약품 아지(AZ)트에 따르면, 연도별 동물용 의약품, 의약외품, 의료기기 등 동물용 의료물품들은 2015년 이래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코로나 시기인 2020년에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기존의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는 이런 시장 흐름에 임상 현장의 수의사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고, 건강관리와 치료에 중요한 약을 사용하는 부분에는 어떤 점을 우려하는지 알고 싶었으나 잘 정리된 형태의 국내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71명의 반려동물 임상업무에 종사하거나 종사했던 수의사를 대상으로 익명 설문을 진행했다. 그 결과 임상 일선의 수의사들 역시 약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것을 확인했다.
마지막 수의사 신상신고인 지난 2022년 기준, 전체 수의사 중 임상 현장에서 활동 중인 수의사는 7,990명이며, 이 중 80%가량이 반려동물 임상에 근무 중임이 알려져 있다. 따라서, 본 설문에 응답한 71명의 수의사는 반려동물 임상현장에서 근무하는 수의사의 1% 정도의 수로 파악되었으며, 대표성에 대하여 논하기는 어려우나 대략적인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표본으로 판단했다. 대학병원에서 1인병원까지 다양한 형태의 수의사들이 설문에 응답했다.
일선 수의 현장에서 구충제나 백신류를 제외한 치료용 의약품은 어떤 것을 주로 사용하고 있을까?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확인했다. 전체 응답자의 약 83% 정도는 인체용의약품을 분쇄하여 사용한다고 답했다. 동물전용의약품을 사용한다고 응답한 경우에도 약품을 그대로 처방한다고 대답한 경우는 전체 응답의 약 3%에 불과했다. 의약품의 부표나 라벨 상 소분은 어느 정도 허용되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쇄는 명백한 허가 외 사용(Extra label)이다.
인체용 의약품의 사례를 살펴보자. 인체용 의약품에서는 정제의 분할이 가능한 기준을 FDA의 지침 (Guidance for Industry ‘Tablet Scoring: Nomenclature, Labeling, and data for evaluation’) 형태로 정해 놓았다. 이 지침에서 제안하는 내용은 여러 가지이나, 대표적인 골자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장용정, 서방정과 같이 분할되면 기능이 사라지는 정제들은 분할선을 둘 수 없다.
2. 분할된 정제는 온도 섭씨 25도, 습도 60% 상태에서 흡습제가 없는 조건으로 90일간 안정해야 한다.
3. 정제는 기기나 손으로 분할할 때 각각의 조각들이 같은 함량을 유지해야 한다.
4. 분할 시 손실되는 중량이 3% 이하가 되어야 한다.
즉, 처방된 이후에도 약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특히 중량이나 함량 등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시험되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임상 현장에서 이런 모든 내용을 고려하면서 조제가 과연 가능할까?
분쇄 조제에 대하여 임상현장의 수의사들 역시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분쇄 조제에 대하여 특별히 불편함이 없다는 응답은 전체의 약 3%에 불과했고, 처방된 약의 균질성, 안정성, 약효 등에 대하여 응답자 수의 절반이 넘는 수의사가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서는 연구된 결과가 있다.
부신기능항진증치료제인 트릴로스탄 처방약물에 대한 함량을 평가한 2021년 서울대학교 서경원 교수팀 논문이다(J Vet Intern Med. 2021 Jun 10;35(4):1729–1732). 이 논문에서 3명의 임상가들은 트릴로스탄과 타 약물을 같이 혼합하여 각각 14~16포의 처방 약포를 제작했고, 이를 의약품의 함량분석에 흔히 사용되는 HPLC 분석법을 통하여 각 포에 함유되어 있는 트릴로스탄 함량을 측정했다.
결과를 확인했을 때, 분석한 전체 44개의 약포 중 18개(약 41%)만이 목표했던 함량을 만족했다. 또한, 3명의 임상가 중 2명은 조제용 스페츌라를 이용하여 소분, 한 명은 반자동 소분기를 활용했으나, 각 약포 간 함량의 편차는 반자동 소분기가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3명의 임상 가는 트릴로스탄을 포함했으나 각기 다른 조합의 약물을 구성했기 때문에 약물 간의 반응성도 함량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넉넉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즉, 함량과 안정성 두 가지 측면에 대한 임상가들의 우려가 실제 데이터로 확인된 것이다. 이 문헌의 배경에서 한국은 타 국가에 대비 더 높은 용량의 트릴로스탄의 처방이 필요한 점에서 착안하여 연구를 시작했다 작성되어 있는바, 타 국가 대비 한국의 임상환경에서 분쇄처방이 더 빈번함을 유추할 수도 있었다.
확인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장에서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 역시 설문을 통하여 확인된다.
항생제, 스테로이드 등을 포함하는 호르몬제, 피모벤단 등은 엄격하게 사용되어야 하며, 질환이 없는 동물에게 오용될 시 필요하지 않은 약리작용으로 위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물을 분쇄하는 기구에서 특정 약물에 대한 구분 없이 사용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약 87%로 확인되었다. 즉, 각 동물별로 달리 처방되어야 하는 약물들이 조제기구 등을 통해 교차 오염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구 사용 시 세척 주기를 살펴볼 때도 조제 시마다 기구를 세척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16% 남짓에 불과했다. 심지어 전체 응답의 3%가량은 분쇄용 기구를 전혀 세척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있었다.
위와 같은 사용실태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항생제 내성에 대한 문제이다. 최근 발표되었던 농림축산검역본부 세균질병과 연구팀의 논문(J Vet Sci. 2024 Sep;25(5):e67)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에서 분리된 검체 중 중증 감염에 사용되는 카바페넴 항생제에 대하여 전체 검체 중 0.13%에서 카바페넴 저항성이 확인되었으며, 이외에도 반려동물에게 흔하게 사용되는 플루오로퀴놀론, 페니콜, 테트라사이클린 등 타 항생제에서도 내성 균주가 확인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조제에 사용되는 기구로 인한 교차오염이 무의미한 항생제 노출을 만들어 내고 이에 따라 항생제 내성균 발현을 더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걱정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물전용 의약품을 용량·용법대로, 그리고 의약품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동물 전용 의약품 사용에 대한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각국의 엄격한 규제와 정책을 통해 동물의 건강을 보호하고 있다. 미국 FDA는 인체용 의약품을 반려동물에게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항생제 내성 문제를 지적하며 동물 전용 항생제 사용을 권장하고 있고, 유럽연합(EU) 역시 유사한 가이드를 내놓고 있다.
사실, 국내 반려동물 임상현장의 조제 특성은 사람에서 소아과 환자의 약품조제 특성과 유사하다. 사람의 의료현장에서 위와 같은 문제점들은 국내에서도 이미 지난 1995년 서울대학교병원의 기고문으로 다루어진 바 있으며(J. KoreanSoc.Hosp.Pharm. 1995 Sep. 12(3):184–189), 표준적인 조제방법,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처방기간, 소아가 복용하기 편한 제형, 선호되는 감미료, 맛과 향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하여 논한 바 있다. 반려동물 임상현장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머리에서 최근의 반려동물 보호자들을 언급했다. 보호자들의 눈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수의사들도 거기 맞추어 더 높은 수준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이, 고민 끝에 처방된 약의 효능이, 처방되는 형태의 문제로 인하여 퇴색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