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수의치과전문의 제도가 겪은 초기 자격 혼선, 국내 전문의에도 되풀이될까
ABVS 초기 혼선이 유사 단체·자격증 병립 초래..韓 전문의 도입안 안개 속 기득권 부담 축적
프랭크 베르스트라테(Frank J M Verstraete) UC DAVIS 웨일 수의과대학 명예교수가 3월 8일(일) 서울대 수의대에서 열린 한국수의치과협회 춘계 심포지엄을 찾았다.
과거 여러 차례 한국수의치과협회 학술행사에서 강연을 벌였던 베르스트라테 교수는 협회가 추진 중인 한국수의치과전문의 도입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설립전문의 선정위원으로서 지원자의 최종 심사를 맡은 그는 이날 설립전문의 자격증을 직접 수여했다. 본인도 명예 설립전문의로 위촉돼 향후 인정전문의(de facto) 선정과 레지던트 프로그램 수립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베르스트라테 교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미국수의치과전문의 제도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한국수의치과전문의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미국수의치과전문의 제도 도입 초기의 혼선은 현재 국내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미국수의치과협회, 50년 역사
1988년 전문의 본격화
말 치과전문의 분리, 동물원·구강악안면외과 심화
이날 베르스트라테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수의치과협회(AVDS)가 창립한 것은 50년전인 1976년이다. 미국동물병원협회 행사 전날 개와 고양이의 구강질환 관련 발표를 나누는 전초전으로 출발한 활동은 점차 확대돼 1987년부터 독립적인 치과 학술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대까지는 미국에서도 수의치과학에 대한 관심은 극히 미흡했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며 전문 자격 수립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기 시작했다.
1988년 미국수의치과전문의대학(AVDC) 설립전문의 8인을 선정한 것을 시작으로 전문의 제도가 도입됐다.
설립전문의의 절반이 초기 시험을 출제하고, 나머지 절반이 다른 지원자와 함께 시험을 치러 이들 설립전문의가 얻은 평균점수에서 1 표준편차를 뺀 점수를 합격 기준으로 설정했다는 구체적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세부 전문과목은 사람 치과와 같이 치주, 보철 등 진료과목이 아닌 종(種)별로 분화하고 있다. 2014년 미국수의사회가 말 수의치과(Equine dentistry)를 미국수의치과학회 산하 별도의 전문 분야로 승인했다. 동물원 및 야생동물 치과(Zoo and Wildlife Dentistry, ZWD)는 별도의 심화 인증 프로그램으로 2017년부터 도입됐다.
이에 더해 2021년부터는 구강악안면외과(OMFS)에 대한 펠로우십(Fellowship)이 공식 출범했다.
베르스트라테 교수는 한국에도 수의치과전문의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베르스트라테 교수는 “한국은 일반적인 수의 진료는 물론 수의 치과 분야에서도 이미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전문의 제도 도입은 한국의 수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치과학을 필수 요소로 포함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전문의 제도가 보호자와 수의사 모두에게 치과의 중요성과 의뢰 체계에 대한 인식을 높여 진료 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美 수의치과전문의, 도입 초기 자격 이원화로 수십년 갈등
韓 전문의 도입한다고 말만 한 채 구체화는 지지부진
민간 전문의 도입 속속..기득권 교통정리 부담 가중
이날 베르스트라테 교수는 미국수의치과전문의 제도 도입 초기의 갈등상도 함께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도입 초기 미국수의전문의위원회(American Board of Veterinary Specialties, ABVS)와 혼선을 빚었고, 결과적으로 2개의 유사 단체·자격증이 장기간 유지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진료과목별 전문의 제도는 우산조직인 미국수의전문의위원회(American Board of Veterinary Specialties, ABVS)로부터 강력한 관리를 받는다. 1980년대 중반 미국수의치과협회 지도부도 전문 자격제도 도입에 앞서 ABVS의 의사를 타진했다.
당시 ‘전문의대학(college) 설립은 시기상조’라는 ABVS의 권고를 받아들여 수의치과학회(Academy of Veterinary Dentistry)를 만들고 자체 인증시험을 통해 21명의 펠로우(Fellow)를 선발했는데, 바로 이듬해 ABVS가 전문의대학 설립을 권고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들 수의치과학회 펠로우 중 8명만 전문의대학의 설립전문의로 인정됐다. 이들은 수의치과학회 펠로우와 곧 배출될 미국수의치과전문의 사이의 자격 혼선을 막기 위해 ‘펠로우 21명 전원을 전문의로 받아들이고(승계, grandfathering) 수의치과학회는 해산하자’는 의견을 ABVS에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베르스트라테 교수는 “이들 펠로우 전원의 편입을 허용하지 않은 ABVS 결정은 AVDC 발전을 수년간 지연시켰다”고 비판했다.
수의치과학 초기 발전을 이끌었던 인사들이 다수 포진한 학회 펠로우와 AVDC가 배출하는 미국수의치과전문의 자격이 병립하다 보니 보호자와 수의사들 사이에서 혼선을 일으켰고, 수의치과 학술행사(veterinary dental forum) 운영에도 조직적 불편함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과는 국내 상황과 공교롭게 겹친다.
정부가 전문의(전문수의사)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천명한 것이 2024년이다. 도입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도 거쳤지만 구체적인 도입 원칙을 정하지 못한 채 2년여가 흘렀다. 그 사이 민간에서는 진료과목별 자체 전문의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의 혹은 유사 자격을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하지 않는 학회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정부가 법으로 만들 전문의가 어떻게 도입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도입안 연구는 AVBS와 유사한 총괄조직(KBVS) 설립 필요성과 함께 기존 민간 전문의 제도의 기득권 인정 여부를 주요 결정사항으로 제시한 바 있다(본지 2024년 12월 17일자 전문수의사 제도 도입안 3종 제시 ‘총괄조직 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 참고).
기득권이 인정될 지 여부를 알 수 없다면 일단 만들어두는 것이 이득인만큼, 지지부진한 정부의 움직임 자체가 ‘(ABVS가 인정하는 전문의대학이 아닌) 별도 학회 설립을 권고한 ABVS의 혼선’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또한 수의치과학회 펠로우 일부가 AVDC 설립전문의가 됐던 것처럼 국내에서 법적 전문의 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기존 민간 학회 전문의의 도입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겹치게 될 것이란 점도 자명하다.
정부 정책이 지지부진한 사이 추후 예정된 교통정리 부담만 가중되고 있는 꼴이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우연철 대한수의사회장은 “전문의 제도는 대한수의사회장 선거에 나서면서도 고민이 많았다. 학문적인 정도, 윤리적 사항, 명칭 사용 등에서 내부 합의가 필요한 측면도 많다”면서 “전문의를 우리나라 수의계와 수의사들의 전문성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제도로 만들겠다. 그 기반을 닦는데 많은 동참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