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처방제는 없다’ 돼지농장 항생제 82%가 처방 없이 팔렸다
돼지수의사회 연구용역 마무리..'불법이 상식이 된 수의사처방제 실태' 숫자로 드러났다
수의사처방제에 의해 모든 동물용 항생제는 수의사의 진료 후 처방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돼지농장에서 사용된 항생제들 중 수의사 처방을 거친 경우는 17.6%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간 수의사회는 수의사처방제의 주요 문제로 불법적인 처방전 생산, 사무장 동물병원을 지적했다. 농장은 여전히 수의사처방제가 없는 것처럼 동물용의약품도매상에 항생제를 포함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주문해 마음대로 쓰고, 처방전은 동물용의약품도매상과 결탁한 수의사가 형식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선 ‘수의사 진료에 따라 사용하여 오남용을 줄이자’는 수의사처방제의 도입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게 형식적인 처방전조차 없었다. 처방제 도입 후 13년간 제대로 된 단속 한 번 없다 보니 불법이 상식이 됐다. 수의사처방제는 그냥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제도다. 적어도 돼지농장에 쓰이는 항생제 82.4%에서는 그렇다.
관련 연구를 담당한 최종영 전 한국돼지수의사회장은 “불법·가짜 처방이 문제일 줄 알았지, 아예 처방이 없는 경우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150개 농장, 6개월 간 항생제 처방·실사용 비교 분석
수의사 처방 있는 항생제는 17.6% 불과
‘불법 처방전을 만드는 결탁, 사무장 동물병원 비용조차 아깝다’
불법이 상식 된 수의사처방제 13년의 민낯
한국돼지수의사회는 농림축산검역본부 의뢰로 2024년 1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2년간 ‘양돈 항생제 수의사 처방 실태조사 및 개선안 제시’ 연구를 진행했다(연구책임자 최종영 전 회장). 수의사처방제 도입 후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피는 첫 시도였다.
연구진은 지역별, 사육규모별 비중을 감안해 전국 돼지농장 150개소를 표본으로 선정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항생제 구입·사용과 수의사 처방, 동물건강 관리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아울러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e-vet)에 기록된 항생제 처방과 실제 농장의 사용 실태를 비교 분석했다.
농장의 실제 항생제 사용량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원이 개별 농장을 직접 방문해 조사했다. 해당 농장이 거래하는 동물병원·동물용의약품도매상의 협조를 받아 약품 목록을 수집해, 사육구간별 사용량을 파악했다.

그 결과 수의사 처방과 실제 사용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확인됐다.
2024년 1월부터 6월까지 조사 대상 돼지농장 150개소에서 사용된 항생제는 총 159,465kg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들 농장에서 같은 기간 수의사가 처방한 것으로 기록된 용량은 28,162kg(17.6%)에 그쳤다. 나머지 131,303kg의 항생제는 수의사 처방 없이 자가진료로 사용된 셈이다.
이 같은 양상은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150개 농장 중 진료한 동물병원에서 곧장 항생제를 수급하는 16개소를 제외한 134개소 중에서 수의사에게 처방전을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판매업소(동물용의약품도매상)에 전달하지 않는 농장은 102개소(76.1%)에 달했다.
최종영 전 회장은 “그래도 일선 돼지수의사들이 정기적·비정기적으로 찾고, 협조적인 농장을 조사한 결과인데도 이렇다”면서 실제 현장의 문제는 더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모가 큰 판매업소는 사무장 동물병원으로 고용하거나 결탁한 수의사들이 거래처 농장을 방문한 축산차량 GPS 기록을 만들거나, 요식화된 처방전을 생산해두기 위해 나름의 비용을 들이지만, 아예 처방전 자체가 없는 판매업소가 있다는 소문은 예전부터 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처방전의 내용을 토대로 실제 항생제 사용 양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처방전 없이 사용되는 항생제가 대부분인 점이 가장 큰 문제지만, 설령 처방전이 기록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그대로 활용하긴 어렵다.
동물용의약품 판매업소에서 판매한 기록은 전산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실제로 처방전에 따라 판매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연구처럼 농장을 일일이 조사하지 않는한 확인할 길이 없다.
성분명 처방이라는 점도 문제다. 가령 A라는 성분의 항생제를 처방하는 경우 제품까지 지정하려면 3개 이상을 추천해야 하고, 시스템적으로 A 성분 단독제제뿐만 아니라 A 성분이 포함된 합제와도 구분되지 않는다. ‘A 성분 항생제 처방’만으로는 어떤 약을 얼마나 썼는지 알 수 없다.

‘농장마다 주치의가 항생제 처방’ 덴마크 모델 제안했지만..
정부 단속 의지 부재한 채론 공염불 반복
“있는 법부터 잘 지키세요”
연구진은 돼지를 진료한 수의사가 항생제를 처방하고, 이에 따라 판매·사용되는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덴마크식 농장자문계약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돼지농장은 수의사와 의무적으로 ‘동물건강에 대한 자문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계약된 수의사가 정기적으로 농장을 진료하며 항생제 사용을 관리하자는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항생제 오남용을 막고, 체계적인 질병관리를 통해 항생제가 필요한 상황 자체를 줄여나가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모델도 정부의 단속·관리 의지가 없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판매업소와 결탁해 형식적인 처방전을 생산해도, 아예 처방전 없이 팔아도 단속하지 않는다.
덴마크식 자문계약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어렵지만, 도입한다 한들 요식화되지 않을리 없다. 이미 수의사처방제 도입 13년 동안 현장에서 증명된 공식이다.
최종영 전 회장은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용역 결과를 보고하면서 ‘있는 법부터 잘 지키세요’라고 할 순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구용역이 제시한 대안도 좋지만, 이미 있는 수의사처방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당국이 실질적인 단속에 나서 불법을 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최 전 회장은 “축산 현장에서 항생제를 오·남용한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본다”면서 “그럼에도 정부는 묵인만 한다. 있는 제도를 지키려는 노력조차 안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