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문수의사 제도 공백 속 ‘자체 전문의’ 양산, 괜찮은가

제도 없는 전문의 시대, 수의계는 어디로 가고 있나...민간 자격이 부를 혼선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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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문수의사 제도’ 도입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미 수년 전이다. 연구용역까지 진행되며 제도 도입의 필요성은 충분히 논의됐지만, 정작 구체적인 도입 원칙과 시행 계획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

이 사이 수의계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각 학회와 단체들이 자체적으로 ‘전문의’ 혹은 이에 준하는 인증 제도를 만들고 전문가를 배출하기 시작한 것이다(인정의, 인증의, 전문임상의 등). 지금은 오히려 자체 전문의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학회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학문 발전과 임상 전문성 강화를 위한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보인다. 실제로 전문 분야에 대한 교육과 인증 체계를 만들려는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배경과 방향이다.

일부 학회·단체들이 전문의(혹은 이와 유사한 전문가) 제도를 추진하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언젠가 정부가 법적으로 수의전문의(전문수의사) 제도를 만들 때, 이미 운영 중인 학회 전문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쉽게 말해 ‘먼저 만들어 두면 나중에 인정받지 않겠느냐’는 계산이다.

문제는 기존 민간 전문의 자격을 어디까지 인정할 지에 대해서는 현재 결정된 바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결국 지금의 상황은 다소 기묘하다.

정부는 제도 도입을 선언했지만 실질적인 정책 추진은 멈춰 있고, 민간에서는 서로 다른 기준의 ‘전문의’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법적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데, 전문의는 늘어나는 모순적인 구조다.

이런 흐름은 해외에서도 이미 혼선을 낳은 바 있다. 미국수의치과전문의 제도 도입 시 학회 펠로우와 전문의 자격이 병립하면서 보호자와 수의사 모두에게 혼란을 초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각 학회가 서로 다른 기준으로 전문의를 배출하면, 향후 법적 전문수의사 제도가 도입될 때 대규모 ‘교통정리’가 불가피하다. 어떤 자격은 인정되고, 어떤 자격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학회 간 갈등과 알력다툼, 기존 자격 보유자들의 반발, 제도 신뢰도 저하 등 여러 문제가 동시에 터질 것이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전문의’라는 명칭의 가치다. 전문의는 공신력 있는 기준과 엄격한 인증 과정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각 단체가 제각각 전문의를 만들어내는 구조에서는 명칭의 권위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수의전문의 제도는 동물의료 체계의 구조를 바꾸는 중요한 문제다. 동물병원 분류, 수련 시스템, 교육 인프라, 재정 지원까지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문의 숫자 늘리기’가 아니다. 명확한 제도 설계와 합의다. 정부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전문수의사 제도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학회들도 ‘선점 경쟁’에 몰두하기보다,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을 만드는 데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전문의 제도는 수의사의 명함에 새로운 타이틀을 붙이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동물의료의 수준을 높이고, 보호자가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체계를 만들기 위한 장치다. 지금처럼 방향 없는 경쟁이 계속된다면, 전문수의사 제도는 시작하기도 전에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사설] 전문수의사 제도 공백 속 ‘자체 전문의’ 양산,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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