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걸려도 벌금형이다˝ 동물학대 범죄 양형기준 만들어야

솜방망이 처벌에 법적 억제력 없어..양형 설정에는 아직 한계, 국민여론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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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이 재판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3%에 불과하다. 재판에 넘겨져도 80% 이상이 벌금형에 그친다.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로는 동물학대 범죄를 억제할 수 없다며 ‘양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판부에 따라 달라지는 처벌 편차를 줄이고, 형사기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양형기준 설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조정훈 시대전환 국회의원과 동물권행동 카라가 8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동물범죄 양형기준 수립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내 동물학대 범죄 양태와 처벌 추이, 해외 양형기준 사례를 종합적으로 조명했다. 동물범죄 양형기준 수립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을 양형위원회 김영란 위원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조정훈 의원, 김영란 양형위원장, 전진경 카라 대표

동물범죄, 기소도 어려운데..솜방망이 처벌에 재판부마다 편차

어차피 걸려도 벌금형이다’ 법적 억제력 부족

이날 발제에 나선 전진경 카라 대표는 “동물범죄의 특성상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 수사해서 기소에 이르기가 굉장히 어렵다”면서 “어렵게 기소해도 솜방망이, 온정주의식 처벌로 이어지고 판결에 편차가 있다 보니 법적 억제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이 동물학대를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형이 선고되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거나 재판에 넘겨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송기헌 의원이 지난 8월 법무부와 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3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 4,249건 중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는 122명(3%)에 불과했다.

절반 가까이가 불기소됐고(46.4%), 약식명령으로 벌금형 처분을 받은 사례도 상당했다(32.5%).

재판에 넘겨져도 대다수는 벌금형이다. 2013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동물보호법 위반 관련 판결문 200개를 분석한 결과 기소된 201명 중 165명(82%)이 벌금형을 받았다. 평균 벌금액도 140만원대에 그쳤다.

어차피 걸려도 벌금형이라는 이야기가 나올만한 셈이다.

동물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재판부마다 다르다는 점도 지목됐다.

이날 박 교수가 지목한 판례에 따르면, 2020년 이유없이 모의 소통으로 타인의 개에 BB탄 수십개를 발사해 염증이 생기게 하는 상해를 입힌 범인에게는 징역 8년에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 및 40시간의 폭력치료가 선고됐다.

반면 연인관계였던 피해자가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주거침입해, 피해자의 강아지가 손가락을 물었다는 이유로 2층에서 1층으로 던져 외상으로 기립불능에 이르게 했고, 1년뒤 손가락을 물었다며 목을 잡고 벽을 향해 던져 탈구와 골절을 일으킨 범인에게는 벌금 600만원형에 그쳤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판사에 따라 처벌수위가 다르다. 양형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형기준이 만들어지면 수사·기소단계에서도 검경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라고도 기대했다.

(자료 : 동물권행동 카라)

英 동물범죄 양형기준, 죄질·피해수준 따라 9단계 구분

무기 사용했거나 SNS 유포, 어린이 있는 곳에서의 범죄는 가중처벌

박미랑 교수는 영국의 동물범죄 양형기준을 참고사례로 제시했다. 영국은 동물범죄의 죄질과 유형을 각각 3단계로 구분하고, 감경·가중요인을 추가로 고려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장기간 반복적으로 심각한 학대를 반복하면 죄질 ‘상’, 의도는 좋았지만 무능한 돌봄은 죄질 ‘하’로 판단하는 식이다. 동물이 죽거나 안락사가 필요할 정도의 상해라면 1형 피해로, 신체적 위해나 스트레스가 거의 없으면 3형 위해로 평가한다.

죄질이 안 좋고, 심각한 1형 피해인 범죄의 경우 1년 6개월 징역을 기준으로 26주~3년 사이의 구금형에 처한다.

피해 동물 수가 많거나 무기 사용, SNS 유포, 어린이가 있는 곳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가중처벌될 수 있다.

피학대동물의 소유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면 감경요인이 되거나, 일정기간 혹은 영구적으로 동물을 기르지 못하게 하는 등 재발방지를 위한 보조적 처분을 병과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박 교수는 “단순 처벌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학대범죄자에 대해서는 치료명령을 병과하고 소유권 박탈, (동물양육) 자격 박탈 등 보조적인 처분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형기준 만들려면 양형 사례 많아야 하는데..10년간 200건 그쳐

양형기준 수립 = 엄벌주의’ 아니다 지적도

민법 개정에 기대

양형기준은 국내에 2009년부터 도입됐다. 유사한 범죄라면 비슷한 처벌을 받도록 유도하여 불합리한 양형편차를 해소하고, 범죄 책임과 형벌의 비례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양형기준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만든다. 양형기준을 만들 범죄를 선정하면, 해당 범죄에 대한 기존 판례를 취합해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범죄유형, 양형인자를 분류해 권고 형량범위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초안 작성부터 심의, 공청회 등을 거치는데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유정우 부산고법 울산지원 부장판사는 “양형기준을 설정할 범죄로 지정되느냐가 관건”이라면서도 “과거 양형 실례를 수집해 분석해야 하는만큼, 실제 양형 사례가 많아야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물학대범죄의 양형 실례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원 내부 자료를 찾아봐도, 최근 10년간 동물보호법 위반 관련 판례가 200여건에 그친다는 것이다.

동물학대범죄에는 아직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되는데, 국내 양형기준은 애초에 벌금형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유정우 판사 본인이 동물학대 사건 재판을 담당하면서 검사가 구형한 벌금형보다 강력한 실형 판결을 내려 화제가 됐던 인물이지만(본지 2020년 6월 4일자 ‘진돗개 반복구타 동물학대에 벌금형 구형보다 높은 징역형 선고..왜?’ 참고), 아직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동물학대범죄에 실형 처벌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양형기준을 요구하는 측의 문제의식인데, 양형기준을 만들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도 실형이 잘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있는 셈이다.

유 판사는 “동물학대범죄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사람에 대한 범죄에 비해서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타 범죄 대비 (양형기준을 먼저 만들어야 할) 우선순위를 인정받으려면 결국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형기준이 만들어지면 동물범죄에 대한 처벌이 세질 것이란 기대에도 우려를 내비쳤다. 유 판사는 “양형이 지나친 엄벌주의로 귀결되거나 법관의 재량권을 과도하게 제한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동물범죄 양형기준 마련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다.

윤석열 정부는 ‘사람과 동물이 모두 함께 행복한 건전한 반려문화 조성’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설정하고, 동물학대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이 부과될 수 있도록 엄정한 양형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내년 새로이 출범할 9기 양형위원회가 동물범죄를 대상으로 삼을 지도 불투명하다.

당장 동물범죄에 대한 실형 판례가 늘어나길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를 규정할 민법 개정안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과 분리한다면, 아동학대범죄에 준하여 ‘체포·감금·유기·학대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란 양형위원장은 “적지 않은 국민들이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엄정한 대처와 양형기준 설정을 요구하는 의견을 보내주셨다”면서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체계적 연구를 진행해 동물학대범죄의 양형 합리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조정훈 의원은 “동물학대 범죄에 대해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 나온다는데 공감대가 있다”면서 “내년에 출범할 9기 양형위원회가 동물범죄 의제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차피 걸려도 벌금형이다˝ 동물학대 범죄 양형기준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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