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식 가축방역에 반작용‥지자체에 살처분 유예 선택권 주자?

가전법 개정안 국회토론회 개최..가축방역심의회, 살처분 보상기준 개정 필요 지적


0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동물복지국회포럼과 송옥주∙위성곤 의원이 15일 가축전염병예방법(이하 가전법) 개정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중앙정부의 일방통행식 방역정책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듭됐다. 지난 겨울 반경 3km 예방적 살처분(이하 예살)이 강행되면서 축산업 피해가 늘어났고, 살처분 관련 법령 개정안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개정안은 지방가축방역심의회가 자체적으로 예살 예외를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대해 동물복지 축산농장이라고 해서 우선적으로 보호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가금농가에서는 방역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살처분 보상기준 현실화, 지역별 방역시설 확충 지원 등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사진 : 동물권 행동 카라 유튜브 중계화면 캡쳐)

`일방통행식 방역정책 문제` 입 모아..가축방역심의회 운영 개정해야

지난 겨울 발생한 H5N8형 고병원성 AI는 발생농장 반경 3km 예살 원칙을 일괄 적용하면서 피해규모가 커졌다. 산란계만 1,600만수 넘게 살처분되면서 계란수급에 문제가 생겼다.

종계도 상당수 살처분되고 중추가격이 폭등하면서 재입식이 늦어졌고, 상당기간 계란값이 고공행진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농식품부의 일방통행식 방역정책에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지난 겨울 H5N8형 고병원성 AI가 산발적 발생이 이어지면서 현장에서는 예살 범위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거듭됐지만 중앙 방역당국이 묵살했다는 것이다.

발제를 맡은 이근행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은 “과도한 살처분이 양계산업 회생에 악영향을 끼쳤다”며 “(방역당국의) 상황진단과 의사결정에 독단성이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비감염 살처분(예살)은 신중한 역학적 위험 평가와 현장 거버넌스를 바탕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PNR 대표 서국화 변호사는 “방역에 신속한 처리가 물론 중요하지만, 신속성이 마치 프리패스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한양계협회 이홍재 회장은 “현행법으로도 현재 지적되는 문제를 반영할 수 있지만, 가축방역심의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면서 “살처분 범위를 줄여달라는 건의가 들어왔지만 심의회에서 서면결의로 부결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예산을 쥐고 있는 중앙정부의 의지를 지자체가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도 함께 지적했다.

지난 겨울 H5N8형 AI 사태 당시 2019년 이후 개최된 가금분과 가축방역심의회는 모두 서면심의로 대체됐다. 영상회의도 열리지 않고, 위원 각자에게 농식품부가 준비한 서면을 보내 개별적으로 찬반을 묻는 방식이다 보니 현장 의견이 제대로 공유되지 못했다.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던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하승수 변호사는 가축방역심의회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가축방역심의회 관련 세부사항은 모두 가전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중 위원장이나 위원 구성에 관한 사항이라도 법에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승수 변호사는 “가축방역심의회 위원장은 민간 전문가가 맡거나, 적어도 민·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에 예살 유예 선택권 주자? 政 ‘수용 어렵다’

박홍근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전법 개정안은 예방적 살처분(이하 예살)을 ‘비감염 살처분’으로 따로 규정해, 가축전염병 발생농장의 ‘감염 살처분’과 구분했다. 비감염 살처분의 유예 요건과 살처분 명령 철회 조항도 신설했다.

예살 대상 농장의 정밀검사 결과 지속적으로 음성 판정을 받거나, 지방가축방역심의회가 유예 필요성을 인정하면 예살을 유예할 수 있도록 했다(본지 2021년 12월 7일자 ‘예방적 살처분 거부 사태가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으로 이어져’ 참고).

김인순 경기도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지금도 살처분명령은 시군구청장이 내리지만 실제로는 (선택권이)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실질적인 농가별 살처분 명령권이 중앙부처에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현행 조류인플루엔자 방역실시요령도 지방가축방역심의회가 살처분의 예외 필요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예외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하더라도 농식품부장관에게 건의할 수 있을 뿐 결정권은 없다. 실질적인 예외 판정은 농식품부가 결정한다.

반면 개정안은 지방가축방역심의회가 자체적으로 살처분을 유예할 수 있도록 했다는데 차이가 있다. 유예 이후 전염 우려가 없어져 살처분 필요성이 사라지면, 살처분 명령을 철회하도록 규정했다.

김인순 의원은 “시군구청장에게 살처분 유예 권한을 주는 것이 중앙부처의 일률적인 살처분 명령의 부조리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의원의 지역구는 화성 산안마을이 위치한 곳이다.

통상 예살 명령은 주변 발생농장이 확진되면 즉시 시행하도록 내려진다. 개정안의 예살 유예요건 중 ‘정밀검사 결과 지속적으로 음성 판정이 나온 경우’에 해당하려면 살처분이 실행되지 않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그러자면 농장이 일단 명령을 거부해야 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서국화 변호사는 “개정안이 농장주에게 (예살을 거부하고) 버틸 수 있는 근거를 주는 규정은 아니다. 살처분 명령은 강제집행이니 농장주가 마음대로 버틸 수는 없다”면서도 법원에서 살처분명령 집행정지 처분을 내리는 등 실질적으로 살처분이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하지만 살처분명령 집행정지를 법원에 구하는 일 자체가 사실상 살처분 명령을 거부하는 셈이 된다. 이홍재 양계협회장은 “농가가 법원에 가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예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이날 토론회에 정부 측 패널로 참석한 농식품부 방역정책과 박경일 사무관은 “개정안은 (예살명령을 거부했던) 산안마을 등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는 취지로 보인다”며 “현재 정부 검토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방역은 과학..동물복지농장이 살처분 예외에 우선되어야 하나

개정안은 질병관리등급을 부여하는 판단기준에 ‘사육환경’을 추가했다.

경기도는 지난 8월 ‘경기도 동물복지축산농장 육성 및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해당 조례는 동물복지축산농장이 예살 대상에 포함될 경우 경기도가축방역심의회에 반드시 상정하여 살처분 제외여부를 심의하도록 했다.

이처럼 고병원성 AI 살처분에서 동물복지축산농장을 우선 보호하려는 움직임에 반발도 나온다.

이홍재 양계협회장은 “방역은 과학이어야 한다”면서 “동물복지농장에서도 AI가 발생한 사례가 많다. 동물복지농장만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겨울 H5N8형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산란계 농장 46곳 중 4곳이 동물복지축산농장이었다. 동물복지형 사육이라고 해서 고병원성 AI가 걸릴 위험이 적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가금농가가 전염병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몰리는 느낌이다”

책임전가보다 지원 호소

가금농가 측에서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예방적 살처분 피해를 미리 대비하기 어렵고, 보상기준도 정상화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살림 유정란 작목모임의 최창호 부대표는 “AI는 연례적으로 반복된다. 양계농가가 안정감 있게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상체계를 현실화하고 미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질병관리등급제는 소규모 양계농가가 참여하기 어려운 형태라고 지적했다. 소규모 농장에서 내부울타리나 전실을 확보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 시범도입된 질병관리등급제에 참여하여 방역수준을 인정받은 산란계 농장은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

산안마을 유재호 대표는 “AI는 재난이다. 농장이 열심히 소독하고 역할을 다해도, 재난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몰리는 느낌이다”라고 토로했다.

유 대표는 “농장이 AI 방역에 허점을 야기시키는 전염병의 주체로 지목되고 있다. 책임을 농가에게 전가하는 것 같다”며 “농가를 보호하는 행정과 법의 뒷받침을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최창호 부대표도 철새 도래와 AI 발생이 반복되는 서해안 벨트의 가금농가에 방역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영상은 동물권 카라 유튜브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일방통행식 가축방역에 반작용‥지자체에 살처분 유예 선택권 주자?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