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아공 크루거 국립공원을 가다/이성빈 수의사 [2부]

2018. 06. 11. ~ 06.22. Student Elective Externship Program 실습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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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신청과 준비 내용을 담은 1부(보러가기)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주>

바분 원숭이(Baboon) 떼. 엄마에게 매달려 있는 아기 원숭이가 정말 귀엽다.
바분 원숭이(Baboon) 떼. 엄마에게 매달려 있는 아기 원숭이가 정말 귀엽다.

<실습내용 1 – 안전과 위협이 공존하는 사바나>

실습 첫 날 오전은 간단한 병원 및 수의사, 직원 소개와 함께 시작됐다. 동물병원 출근 시간은 보통 오전 7시이며, 업무에 따라 더 빨리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첫 날부터 사자를 부검하는 업무가 있어서 나와 Jennifer가 함께 참석했다. 비록 죽은 사자였지만 사자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만져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해당 암사자는 관광객 캠프 쪽으로 들어갔다가 국립공원 레인저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안타까웠지만 레인저는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직원 두 분이 피부를 모두 제거한 뒤, 본격적인 부검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떤 샘플을 채취해야 하는지 적혀 있는 장기 리스트와 샘플을 담을 튜브를 준비했다. 림프절은 Freeze용, 포르말린용 두 개씩 담아야 했고, 나머지 장기들은 통째로 하나의 큰 포르말린 통에 담아야 했다.

부검 전문가 한 분과 함께 프리토리아 대학교 학생 두 명이 참석했다. 이름은 Harley와 Ivan이었다.

부검을 하면서 듣기로는 ‘남아공에는 수의대로 프리토리아 대학교가 유일하고 수의사를 꿈꾸는 학생이 많아 경쟁률이 엄청나게 치열하다’고 한다. 그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온 학생들이라 그런지 일하는 모습만 봐도 열정이 넘쳐 보이고, 부검도 알아서 척척 잘 진행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배워야 할 점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반면에 나는 갑자기 영어로 된 림프절들을 맞이해야 하니 눈 앞이 깜깜해졌다. 그래도 덩치가 엄청 큰 암사자라 림프절이 크게 잘 보여 큰 무리는 없었던 것 같다.

사자는 사냥에 특화된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었고, 어린 개체였는데도 크기가 정말 커서 놀랐다.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사자 부검을 첫 날부터 하게 돼서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벌써부터 설레었다.

국립공원 영역을 벗어난 표범
국립공원 영역을 벗어난 표범

실습 7일차 아침, Dr. Linmarie가 표범 구조 현장에 나가야 한다고 해서 급히 따라 나섰다.

표범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가장 위험한 동물 BIG 5(코끼리, 사자, 표범, 버팔로, 코뿔소) 중 가장 보기 힘든 동물이다. 일반적인 관광객의 경우 1년에 한 번 마주칠까 말까 할 정도로 야생에서 표범을 찾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한다.

표범은 크루거 국립공원 영역을 넘어가 게이트 근처에 있는 호텔을 서성이고 있었다. 경찰차와 공원 순찰차가 계속 따라다니며 예의주시하고 있어서 표범은 이미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황이었고, 자칫 호텔에 있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도로 바로 옆을 걷고 있는 표범을 차로 따라가면서 Dr. Linmarie가 마취총을 쏘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지만 걸음걸이가 다소 빨라 쏠 수 없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어느 순간 스스로 길을 찾아서 마취 없이 공원 쪽으로 잘 유도할 수 있었다. 멀어지는 표범을 보면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국립공원 영역을 벗어난 숫사자 2마리
국립공원 영역을 벗어난 숫사자 2마리

표범과 비슷한 케이스로 숫사자 두 마리가 공원 밖 사탕수수 농장에서 어슬렁거린다는 제보가 들어온 적도 있다.

레인저 한 명과 Dr. Angela를 따라 밤 늦게 차로 2시간을 넘게 달려서야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은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우리는 실습생들이기 때문에 자칫 위험할 수 있어 마취총을 쏘는 현장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레인저, Dr. Angela, 군인 몇 명이 트럭을 타고 숫사자를 찾으러 떠나고 우리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공원 차량 안에서 숨죽이며 소식을 기다렸다.

20분쯤 지나자 트럭이 다시 돌아왔고, 우리를 태우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두 마리의 숫사자가 풀숲 사이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마취총을 쏠 수 있었던 것이다.

숫사자였지만 덩치가 일반적인 사자들에 비해 작은 것을 보니 어린 개체들이었다. 우리는 사자들을 트럭으로 옮기기 전에 앞다리와 뒷다리를 묶고, 마취에서 빨리 깨는 것을 방지하고자 눈가리개를 입힌 뒤, 혈액, 털 연구 샘플을 채취하고 위치 추적용 마이크로칩을 주사했다.

사자들을 조심스럽게 트럭으로 옮기고 이제 국립공원 한가운데에 다시 방생할 일만 남았다. 덩치는 작아도 정말 무거워서 군인 여러 명과 함께 들어야만 했다. 다시 한참을 달려 국립공원 한 가운데에 사자들을 방생해주었다. 비틀거리며 수풀 사이로 사라지는 사자들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Big 5 중 하나인 사자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Big 5 중 하나인 사자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도로 위를 느릿느릿 건너고 있던 표범 거북(Leopard turtle).  로드킬을 방지하기 위해 크루거 국립공원의 모든 도로에서 차량 속도는 50㎞/h로 제한된다.
도로 위를 느릿느릿 건너고 있던 표범 거북(Leopard turtle).
로드킬을 방지하기 위해 크루거 국립공원의 모든 도로에서 차량 속도는 50㎞/h로 제한된다.

관광객 캠프에 난입했다가 레인저의 총에 맞아 죽은 사자, 국립공원 영역을 벗어나 사람이 사는 지역 근처를 서성이던 표범과 사자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바로 사바나는 안전과 위협이 공존하는 땅이라는 것이다.

크루거 국립공원은 아프리카 최대의 사바나 관광지이다보니 매일 수많은 관광객 무리가 게이트를 지나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는 땅 한 가운데로 들어온다. 그렇게 사람들과 야생동물들의 접촉이 많은 탓에 각종 사건사고도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방지하고자 안전 수칙이 있고, 안전을 위한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이러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는 사고도 많고, 표범과 사자가 국립공원을 벗어난 것처럼 우연히 발생하는 사고도 많다.

안전이 최우선인만큼 안전 수칙은 철저하게 지키고, 사바나에서는 항상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위협에 대해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81107 wild25


<
실습내용 2 – Mass Capture 프로젝트로 특별한 경험을 하다>

크루거 국립공원은 매우 넓은 지역이고 남쪽으로 갈수록 기온의 영향으로 동물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VWS Operation 팀은 공원 전역의 개체수 조절 및 야생동물 분포 연구를 위해 매 겨울마다 Mass Capture(야생동물 대량 포획)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포획하는 동물은 남아공 북쪽에 위치한 짐바브웨로 운송할 예정이라고 했다. 운이 좋게도 실습 기간과 겹쳐서 Mass Capture 프로젝트에도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해당 프로젝트는 먼저 야생동물을 포획할 시설인 Boma를 건설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야생동물이 자주 지나다니는 넓은 빈 땅을 부지로 선정하고, 수많은 직원들이 투입되어 며칠에 걸쳐 거대한 Boma를 건설한다. 우리도 건설에 필요한 자재들을 함께 옮기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Boma를 건설해 놓고 같은 장소에서 매년 Mass Capture을 진행하면 동물들의 학습 효과로 인해 해당 지역에 잘 접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새로 짓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부수고, 다음 해엔 다른 지역에서 실시한다.

매번 짓고, 부수고 하다 보니 직원들은 다들 익숙해 보였다. 실제로 거대한 Boma가 며칠 만에 금방 완성됐다.

Boma가 완성되면 본격적인 포획이 시작된다. 첫 시작은 임팔라(impala) 200마리 포획이었다. 동물 몰이 전문 조종사가 타고 있는 헬리콥터가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내며 넓은 지역에 분포해 있는 임팔라를 한 그룹으로 모은 뒤, Boma에 접근한다.

임팔라는 겁이 매우 많아서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면 그 쪽으로 절대 오지 않는다. 때문에 장막을 닫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임팔라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도록 아주 조용히 숨어있어야 하고 눈을 마주치면 안된다.

Boma 내부에 임팔라 그룹이 모두 들어온 것을 확인하면 헬리콥터가 사이렌을 3번 울리고 이 때 숨어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달려 첫번째 장막을 닫는다. 이와 동일한 과정으로 여러 개의 장막을 모두 닫아 임팔라를 마지막 거점에 몰아넣고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로 모두 유도해 몰아넣으면 포획 과정은 일단락된다.

포획된 임팔라들. 고무 호스로 뿔을 감싼 것이 참신했다.
포획된 임팔라들. 고무 호스로 뿔을 감싼 것이 참신했다.

설명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마지막 거점에서 임팔라들은 당황해서 여기저기를 빠르고 높게 뛰어다니기 때문에 위험했다. 한 번 몰아올 때마다 50마리 내외였기 때문에 200마리를 채우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마지막 장막을 닫는 역할이었고, 숨어서 수십마리의 임팔라 떼가 우르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니 긴장되었다. 3번의 사이렌이 울리고 빠르게 장막을 닫았다! 시끄러운 헬리콥터 소리,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임팔라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임팔라 외에도 큰 뿔이 달린 누(wildebeest)도 포획했는데, 성격이 훨씬 거칠어서 위험한 작업이었다. 다행히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느라 생긴 찰과상 외에는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얼룩말, 기린 포획까지는 하지 못했는데, 얼룩말은 가끔 사람을 물기도 하고 기린은 목을 휘두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들었다.

마지막 작업으로 포획한 임팔라와 누로부터 털, 혈액 샘플을 채취하고, 진드기 구제 약품을 뿌려준 뒤 컨테이너는 짐바브웨를 향해 출발했다.

Mass Capture 프로젝트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국에서는 경험해보기 힘든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Boma를 건설하는 단계부터 헬리콥터를 이용한 몰이 방식, Boma에서 동물들을 어떻게 포획하는지 등 모든 것이 낯선 방식이라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바쁘게 뛰어다녀서 다들 지쳤을 법도 한데, 직원들의 얼굴은 보람으로 가득 차 보였다. 채취한 샘플들은 개체수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포획된 동물들은 짐바브웨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이어 나갈 것이다.

Big 5 중 하나인 아프리카물소 버팔로(Bufallo). 등에는 항상 공생 관계의 새들이 앉아 있다.
Big 5 중 하나인 아프리카물소 버팔로(Bufallo).
등에는 항상 공생 관계의 새들이 앉아 있다.


동물의 무덤(Grave Yard of animal)에는 많은 육식동물이 사체를 먹으러 찾아온다.  코끼리들이 죽은 동료의 뼈를 가지고 추모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곳에서 코뿔소 부검을 실시했다.
동물의 무덤(Grave Yard of animal)에는 많은 육식동물이 사체를 먹으러 찾아온다.
코끼리들이 죽은 동료의 뼈를 가지고 추모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곳에서 코뿔소 부검을 실시했다.


<
실습내용 3 – 여전한 밀렵꾼들과 밀렵의 현장>

아프리카에서 밀렵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야생동물은 누구나 알다시피 코뿔소다. 코뿔소의 뿔은 ‘서각(犀角)’이라 불리는 귀한 한의학 재료이기도 하다.

멸종위기종인 코뿔소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의해 보호받고 있고, 그로 인해 코뿔소 뿔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코뿔소 뿔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남아공에서도 수많은 밀렵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나도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그 밀렵의 현장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각 캠프마다 관광객들이 직접 동물을 발견한 위치를 표시하는 지도가 있다. 어디에서 어떤 동물이 지나갔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코뿔소는 밀렵꾼들이 노릴 수 있어 표시할 수 없다.
각 캠프마다 관광객들이 직접 동물을 발견한 위치를 표시하는 지도가 있다.
어디에서 어떤 동물이 지나갔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코뿔소는 밀렵꾼들이 노릴 수 있어 표시할 수 없다.

하루는 ‘밀렵꾼의 총에 맞아 다친 코뿔소가 돌아다닌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레인저들이 밤새 수색 작업을 펼친 끝에 다친 코뿔소를 찾았지만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결국 안락사됐다.

우리는 그 코뿔소 사체 부검에 함께 참가했다. 코뿔소는 상당히 무거워서 지게차를 이용해 바닥에 옮겨졌다. 부검은 Dr. Linmarie의 지휘 하에 진행되었고, 많은 VWS 직원들과 레인저들, 기자들, 그리고 경찰관 몇 분이 함께 참석했다.

우리는 먼저 시진을 통해 총알이 어디로 관통했고, 총알이 어디에 박혀있는지 추정하였고, 금속 탐지기를 이용해 총알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였다.

그리고 흉부 및 복부의 피부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는데, 피부가 워낙 두꺼워서 거대한 칼과 톱 등을 이용해야만 했다.

복강 내부는 혈액으로 가득 차 있었고, 총알은 복강을 관통해 뒷다리 인근에 박혀 있었다. 경찰관이 총알을 조심스럽게 챙겨갔다. 총알 감식으로 밀렵꾼을 특정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장기를 떼어내서 상태를 살펴보았고, 연구를 위해 모든 림프절과 장기 샘플을 채취했다.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장기들도 모두 거대했다.

코뿔소도 가축인 소와 마찬가지로 4개의 위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1위에서 다수의 말파리 유충이 발견되었다. 기생충학 시간에 이론적으로만 배우던 것을 실제로 보고 있으니 정말 신기했다. 유충은 정말 거대해서 손가락 굵기만한 것들도 있었고, 대부분 아직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며칠 뒤 다행히도 경찰의 총알 감식을 통해 밀렵꾼이 체포됐다. 충격적인 것은 이 밀렵꾼이 사자, 표범 등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건설한 Boma에서 밤을 보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올해 새로 설치한 Boma의 위치를 미리 알아내서 그걸 밀렵에 악용했던 것이다.

코뿔소에게 항생제 주사 놓기
코뿔소에게 항생제 주사 놓기

이렇게 밀렵꾼들이 큰 돈을 만지기 위해 여전히 밀렵을 자행하는 가운데, 크루거 국립공원 VWS는 코뿔소의 멸종을 막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VWS의 사육 시설에는 다수의 코뿔소들이 보호받고 있다.

코뿔소는 화가 나면 정말 사납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겁이 많고 온순하다. 호기심도 많아서 우리가 다가가면 코뿔소도 같이 다가온다. 울타리 너머로 우리를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우리는 이 사육 시설에 있는 코뿔소 중 폐렴을 앓고 있는 개체들의 기도 세척 작업에 참가했다.

코뿔소가 마취총을 맞아 비틀거리면 많은 직원들이 한번에 당겨서 코뿔소를 옆으로 눕힌다. 코뿔소가 깨지 않도록 눈에 수건을 덮어주고 기도삽관을 실시한 뒤 기관내시경을 넣어 모니터를 통해 기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폐렴을 앓고 있어서 기관이 점액으로 가득 차 있었다.

Dr. Michelle이 기관내시경으로 식염수를 뿌리면서 보이는 점액질을 모두 빨아들였다. 나와 Jennifer, Katharina는 심박수 체크, 호흡수 체크, 식염수 준비를 번갈아 가면서 도왔고, 동시에 기관내시경 모니터를 함께 관찰했다.

마무리로 항생제를 주사했는데 피부가 워낙 두꺼워서 주사기를 꽉 쥐고 세게 내리쳐야만 했다.

마취를 한 김에 제각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코뿔소 뿔은 서로 싸우다가 다치게 할 수도 있고, 밀렵꾼들이 코뿔소를 죽이는 목적이 되기 때문에 미리미리 제거해주는 것이 좋다. 그래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점이 정말 안타까웠다.

멸종 위기인 코뿔소를 이렇게 가까이서 직접 만져보며 치료해줄 수 있는 것이 꿈만 같았다. 피부는 거칠었지만 정말 따뜻해서 자고 있는 동안 오랜 시간 쓰다듬어 주었다. 모든 코뿔소가 밀렵 당하지 않고 야생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코뿔소의 뿔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밀렵이 성행하고 있다. 코뿔소의 멸종을 막기 위해 전세계가 더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리펀츠 강(Olifants River)을 지나가는 코끼리 떼와 그걸 지켜보고 있는 하마
올리펀츠 강(Olifants River)을 지나가는 코끼리 떼와 그걸 지켜보고 있는 하마

<실습 후기>

이번 실습의 키워드는 “야생”이었다. 그리고 이 키워드를 위해 아프리카를 찾은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수많은 야생동물을 만났다.

큰 업무가 없을 때는 직원 분들이 게임드라이빙(Game Driving, 차를 타고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것) 할 시간을 많이 주셨다. 덕분에 실습 시간 외에도 정말 많은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머물렀던 2주 동안 일상이 야생동물로 가득 차서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야생동물과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밤에는 수의사 캠프 창 밖으로 하이에나, 원숭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항상 야생동물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꿈만 같고 그리운 2주다.

한국과 전혀 다른 느낌의 대자연을 만날 수 있다
한국과 전혀 다른 느낌의 대자연을 만날 수 있다


바베큐(Braai) 파티를 하며 만난 은하수
바베큐(Braai) 파티를 하며 만난 은하수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 별들을 매일 밤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 별들을 매일 밤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 수의사는 어떤 생활을 할지 정말 궁금했는데, 크루거 국립공원 VWS의 직원 분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VWS는 수의사 외에도 수의테크니션, 포획 팀, 레인저 등 수많은 직원들이 협력하여 함께 야생동물 보호에 힘쓰고 있는 곳이다. 수의사가 주된 역할을 담당하지만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업무들이 대부분이다.

모든 직원들이 각자의 역할에 힘쓰고 있는 모습은 정말 멋있어 보였다.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수의사의 모습만 상상했던 것 같다.

야생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야생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VWS 직원 분들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야생동물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의사 캠프 옆 방에 머물고 있던 환경보호운동가(Conservationist) Lucy는 작은 트랩 카메라로 야생동물 사진을 찍는 개체수 분포 연구를 하고 있다.

열 감지 시스템을 이용해 자동으로 촬영하는 방식이었는데, Lucy가 보여준 야생동물 사진은 정말 멋있는 작품이 많았다.

캠프의 또다른 옆 방 이웃 Rudy는 매주 주말마다 크루거 국립공원을 찾는 요하네스버그의 소방관이다.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어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비행이 필요한 업무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모두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인의 업무에 충실히 임하고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오래 된 사파리이다. 때문에 시스템과 시설이 상당히 잘 구축되어 있어 야생동물 실습을 경험하기에 굉장히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특히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 실습을 받고 싶은 수의학도들에게 적극 권장하고 싶다. 수의사로서 정말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181107 wild26

– 실습 기간 : 2018.06.11 ~ 06.22 (2주)

– 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SW-KyEIHyY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

– 크루거 국립공원 홈페이지 : https://www.sanparks.org/conservation/veterinary/

– Veterinary Wildlife Services Admin Officer : Wisani Sedibe (wisani.sedibe@sanparks.org)

[기고] 남아공 크루거 국립공원을 가다/이성빈 수의사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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