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문 발표한 수의사들…‘ASF 방역체계, 폐사체 검사 중심으로 바꿔야’
일선 돼지수의사 ‘ASF 방역 체계 전환 호소문’ 발표..위탁농장-도축장 취약 고리 지목

최근 전국적으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대해 방역체계를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SF에 감염된 멧돼지가 농장 주변을 오염시켜 바이러스가 유입된다는 기존 공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효과가 미미한 능동예찰 대신 위험요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탁농장과 도축장으로 이어지는 위험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폐사체 검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선 농장에서 돼지를 진료하고 있는 여창일·한승재·신재혁·정정현 원장은 28일(수) ‘ASF 방역 체계 전환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국내서 드문 유전형 ASF 발생 이어져
아직 감염원 모른다..위탁농장-도축장 위험고리 주목
다른 질병과 섞여 있으면 ASF 의심 어렵다..폐사체 중심 검사 지원 필요
지난해 11월 당진에 이어 최근 확인된 강릉·안성 발생농장의 ASF 바이러스는 유전형 1형(IGR-I)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국내 멧돼지를 포함해 주로 검출됐던 ASF 바이러스의 유전형(IGR-II)과 다르다.
이를 두고 해외에서 유래한 바이러스가 농장에 들어오게 만들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일탈이 문제로 지목됐지만, 이들 원장은 “역학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원발 감염원을 아직 규명하지 못한 채 미상의 감염원이 지속적으로 농장에 유입되고 있는 상황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위탁농장과 도축장으로 이어지는 위험경로에 대한 방역정책 재검토를 촉구했다.
위탁농장은 이미 어느 정도 자란 돼지를 받아 도축장으로 보낼 때까지 기른다. 어미 돼지(모돈)와 어린 돼지(자돈)를 다루는 자돈생산농장이나 대형 일관농장에 비해 방역관리가 취약한 편이다. ASF가 아니더라도 다른 여러 질병으로 인한 폐사가 비교적 흔하게 발생한다.
이들 원장은 “흉막폐렴이나 글레서병이 만연한 농장 환경에서는 ASF 가능성이 배제되거나 간과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설령 ASF가 발생해 있더라도 알아채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당진 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방역당국이 민간병성감정기관에 의뢰된 돼지 시료를 대상으로도 ASF 항원검사를 도입했지만, 위탁농장은 이를 통해서 포착되기도 쉽지 않다. 애초에 병성감정을 의뢰할만큼 질병관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 원장은 “ASF를 의심해 검사하기 보다는, 문제 개체를 조기에 도축장으로 출하하려는 선택이 구조적으로 유인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혈액이 비산되는 도축장에서 추가 전파 위험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들 원장은 “효과가 미미한 능동예찰을 중단하고, 폐사축 중심의 예찰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돼지농장에서 폐사가 발생하면 담당 수의사가 폐사체를 확인하고, ASF 감염 여부를 정밀검사할 수 있는 시료를 방역당국으로 연계하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의심신고에 의존하는 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지목된다. ASF 발생이 이어지며 경각심이 높아진 시기에는 다른 원인으로 인한 폐사를 ASF 의심으로 신고했다가 음성으로 판명되고, 경각심이 낮아지면 비슷한 폐사에는 의심신고를 접수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된다. 애초에 위탁농장처럼 다른 질병이 만연한 경우에는 증상이나 통상적인 부검 과정에서 ASF를 의심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들 원장은 폐사체 검사를 쉽고 간편하게 지원하고, 폐사체 검사 과정에서 ASF가 확인된 경우 살처분보상금 감액 등의 페널티를 과감히 면제하여 농장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신 도축장에서의 ASF 검사도 강화하고, 도축장에서 ASF가 발견될 경우에는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해 확산 위험을 예방하는 방식이다.
이들 원장은 “ASF는 특정 집단의 책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며 “실제 전파 고리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방역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호소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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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F 방역 체계 전환에 대한 호소
최근 강릉·안성·당진에서 발생한 ASF는 모두 IGR-1형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그동안 국내에서 주로 문제던 IGR-2형과는 다른 발생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국인 근로자의 일탈로만 설명하는 것은 역학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오히려 원발 감염원을 아직 규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상의 감염원이 지속적으로 농장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가설이 더욱 현실적입니다.
현재 방역 대책은 발생 농장에서 외부로의 전파 차단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규명해야 할 핵심은 ASF가 해당 농장으로 어디서, 어떻게 유입되었는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와 발생 농장을 연결하는 고리, 특히 위탁장과 도축장 경로에 대한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위탁사육장에서는 폐사율이 증가하더라도, 흉막폐렴이나 글레서병이 만연한 농장 환경에서는 ASF 가능성이 배제되거나 간과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ASF를 의심해 검사하기보다는,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 문제 개체를 조기에 도축장으로 출하하려는 선택이 구조적으로 유인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돼지들이 도축장으로 유입될 경우, 혈액이 비산되는 도축 환경 특성상 무작위적 전파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축장에서의 적극적인 ASF 검사는 여전히 방역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습니다. 농장 중심의 방역만으로는 이러한 전파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역 체계 전환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첫째, 효과가 미미한 능동예찰을 중단하고, 폐사축 중심의 예찰 체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둘째, 도축장 내 ASF 검사를 강화하여 도축장을 전파 차단 지점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셋째, 폐사체 검사는 쉽고 간편하게 지원하되, 도축장에서 ASF가 발견될 경우에는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해야 합니다.
넷째, 반대로 농장·위탁장에서 폐사체 검사로 ASF가 진단될 경우에는 과감히 페널티를 면제하여, 검사를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
ASF는 특정 집단의 책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실제 전파 고리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방역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입니다.
돼지수의사회 회원
여창일·한승재·신재혁·정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