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선의 인문수의학③] 쉬어 가는 인문수의학 페이지

유럽 도시에서 지루한 박물관 즐기기_고고학박물관(Archeological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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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럽도시, 이를테면 파리나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큰 도시들도 그렇지만, 작은 도시들에도 규모는 작은 고고학 박물관 같은 게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역사박물관의 고고학관이나 자연사박물관의 인류학관 또는 고고학관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기도 하다.

다루는 시대가 중세 이전이라서 선사시대부터 이집트 미이라나 그리스 시대까지의 유물이 주를 이룬다.

그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니라 여행 블로그에는 잘 안나올 수 도 있지만, 들어가는 입구에 머리가 떨어진 석상이라든가 아니면 그 떨어진 머리라거나 그런게 또 하나 둘 쯤 장식되어 있으면 제대로 찾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고고학 박물관이라면 터키의 안탈랴 고고학박물관(Antalya Müzesi)과 피렌체의 고고학 박물관(MuseoArcheologicoNazionale), 크레타 고고학박물관(Heraklion Archaeological Museum), 리옹의 고고학박물관(The Musee Gallo-Romain de Fourviere) 같은 곳들이다.

들어가면 관람객이 별로 없어서 가끔 무서울 정도이지만 번잡스런 관광지를 떠나서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 빠져보고 싶을 때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다.

특히, 인간의 모든 이야기가 동물과 함께 시작하고 발전해 왔다는 점을 되새기고 싶을 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방송에 소개되어서 인지 최근 한국인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있는 해외 여행지가 크로아티아라고 한다. 유행의 흐름에 맞춰 관광객의 물결 속에 이곳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에 와 앉아 있으니 만족스러운 미소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움찔거려 노트북을 꺼내들었다.

무척 멋진 이 작은 도시의 구시가지는 두어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디자인 샵과 아이스크림 가게를 들르고, 카바(kaba)라고 부르는 이 지역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났는데도 시간이 남는다면 한적한 작은 박물관 ‘Arheoloskimuzej u Zagrebu’에 들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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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자그레브 고고학 박물관 전경

고고학 박물관이 별도로 설립되어 있는 곳이라면 그 지역에서 사람이라는 종이 처음 살게된 흔적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크로아티아 선사유적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들 중 하나로 네안데르탈인, 혹은 그 이전 인류의 조상들이 거주했던 흔적도 발견된다고 한다.

3층부터 시작하는 구석기와 신석기관에서 우리나라 국사책에서도 한번쯤은 본 듯한 돌도끼나 토기 유물을 스쳐 지나면서, ‘아, 세계 어디나 선사시대의 모습은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슬슬 하품이 나올 때쯤 되면 슬쩍 아는 척을 하고 싶은 전시물들이 등장한다. 바로 ‘동물상’들이다.

박물관에서 눈에 띄는 작은 유물은 동물모양의 작은 토기와 장신구들이다. 이 지역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동물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왜 이들이 의미가 있었을까?

크로아티아 동부의 빈코브치 근처 소포트(Sopot) 문화 유적지는 전형적인 신석기 유적지로 신석기 혁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가축화된 소, 돼지, 염소, 개 등의 유존체가 발견된다. 그래서인지 소 모양의 작은 토기가 눈길을 끌었다. 몸에 점박이 무늬가 찍혀 있는 이 소는, 땅을 파고 지붕을 씌운 움막에 살았을 신석기 인들이 키웠던 초기 가축의 모양을 본딴 것일 가능성이 크다.

청동기나 철기로 넘어와도 동물모양의 토기는 여전히 제작되었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물 중 하나는 단언컨대 소 모양의 장식이 달린 물병(askos)과 항아리(urn)이다.

그 중에서도 가방 속 카메라를 꺼내 들게 했던 이 토기는 Dalj문화그룹에서 출토된 물병으로 이들의 발달된 제례문화와 미적 감각을 반영한 유물이다(그림2). 새 모양은 알아보기 쉬우나, 꼬리가 긴 다른 동물은 뭘까 한참을 쳐다보게 되었다. 몸의 날렵함이나 꼬리의 길이로 볼 때 개로 추측할 수도 있고, 어쩌면 꼬리가 긴 염소(산양)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두 동물의 상징성은 전혀 다를 수 있으니 이들의 제례나 종교적인 맥락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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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Dalj group 유물인 동물모양 장식 토기

켈트족이 도달하기 전까지 지금의 크로아티아 지역에는 위의 Dalj를 비롯해 5계통의 문화가 존재했다고 한다. Martijanec-Kaptol group이라고 불리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포드라비나, 메디무르제 지역을 아우르는 선사 문화권은 기원전 8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6세기경에 번성했다.

기원전 7-6세기 경에 제작된 그림 3과 같은 유물들은 유럽에서 가장 큰 매장지 유적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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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Martijanec-Kaptol group 동물 장식 토기

금속 제련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신분에 맞는 장신구를 가지고 싶어했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으면 그 무덤에 이런 장신구들을 함께 묻었다. 물론, 이 기술은 대개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된 것 같지만 말이다.  말이나 새가 주요 소재가 되지만 때로는 뱀, 염소, 소 같은 동물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이들의 말 조각상들도 인간의 영혼을 신에게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졌을까? 아니면 재산이나 소장품의 상징으로 여겨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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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동물 모양의 청동 장식물

자그레브 고고학 박물관에는 뜬금없이 이집트와 그리스 유물관이 있다. 예전 크로아티아 국립박물관에서 사들인 이집트 유적들을 지금은 이곳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전시물에는 사람과 동물 미이라를 비롯해서 석상, 파피루스, 크고 작은 신상들, 신성한 동물의 조각상들이 포함된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전시물은 바로 도살을 위해 보정해 놓은 소의 목각이다. 피라미드 벽화에는 제례에서 소를 희생시키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수의사학에서는 제사장이 희생된 소의 피를 받아 냄새를 맡고 ‘이 피는 깨끗한 피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원시적인 형태의 도축 검사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집트 제사장들 중에는 수의학지식을 지닌 이들이 있었다.

동물의 질병을 다루고 있는 엘 라훈 파피루스는 현존하는 모든 의학 파피루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들에 속한다.

네 다리를 모아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목을 뒤로 젖혀 놓은 특징적인 소의 모습을 조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다른 곳에서 못 보았던 것이라 관심이 갔다(그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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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도살을 위해 보정해 놓은 소의 조각상

그 밖에도 악어 미이라와 고양이 머리 모양의 바스테트 여신상, 엄청나게 긴 사자의 서 파피루스 등도 볼만한 전시물이다.

정신 없이 이런 저런 유물들을 들여다 보다 보면 시간은 참 잘간다. 어둡고 조용한 박물관을 나오면 건물 뒤 편의 카페에 사람들이 한적한 오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건물 앞 공원에서는 작은 음악회와 시장이 서 있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종종 지나간다.

도대체 몇 천 년의 시간을 한꺼번에 건너뛴 건지 약간 멍한 머리를 시원한 바람에 식히며,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이제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슬슬 거리를 걸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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