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동물병원 진료비 20종 전수 공개한다..’초유의 규제’
政 “진료비 공개하여 가격 표준화하겠다”, 개별 병원 진료비 일일이 공개..전 세계 유례 없는 규제
동물병원 진료비 공시제가 대폭 강화된다. 전국 4천여 개 동물병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20개 항목 진료비를 일일이 공개한다.
공시제 조사는 강제다. 응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정부가 강제조사를 벌여 주변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셈이다.
이 같은 형태의 동물병원 진료비 전수 공개 규제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혈액화학검사비의 패널 개수나 심장사상충예방-광범위 구충비 사이의 혼선 등 진료 표준화 없이 강행된 공시제 조사의 한계가 여전한데, 주변 동물병원과의 가격 비교로까지 이어지면 일선 병원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개 공개항목의 진료비를 지역별 최저, 최고, 중간, 평균비용으로 공개한다.

동물병원 진료비도 이와 같이 전수 공개될 예정이다.
8월 5일부터 3주간 온라인 조사
올해부터 개별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전수 공개
사람 비급여 진료비 공개제도와 유사
올해 동물병원 게시 대상 진료행위 20개 항목에 대한 진료비 조사는 8월 5일(수)부터 26일(수)까지 진행될 온라인 조사로 시작된다. 미응답 동물병원에는 방문조사가 이어진다.
대한수의사회는 7월 29일(수) 이번 조사를 예고하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개별 동물병원의 항목별 진료비용을 공개하도록 방침을 정하고 있어, 이에 따라 올해 조사 결과가 사이트에 공개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기존에는 각 동물병원이 게시한 20개 항목의 진료비를 전수조사하되, 지역별로 통계 처리한 대표값(최저·최고·평균·중간비용)을 공개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에 더해 동물병원별로 조사항목의 진료비를 전수 공개할 예정이다.
가령 ‘혈액화학 검사비(10종)’는 A동물병원은 6만원, B동물병원은 8만원, C동물병원은 15만원 식으로 명시하는 식이 된다. 혈액화학 검사를 실시하는 전국 동물병원의 비용을 이 같은 방식으로 모두 공개한다.
이 같은 공개방식은 사람의 비급여 진료비 공개제도와 같다. 의료법에 따라 병·의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 693개 항목의 비용을 조사하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병원별로 공개하고 있다. 지역내, 주변 병의원과 직접적인 가격 비교가 가능한 방식이다.

미국·일본도 동물병원 진료비는 통계값만 공개하는데..
전세계 유례없는 규제
4월 이후 갑자기 급물살..이재명 국정과제와 연계
송미령 장관 “진료비를 공개해서 가격을 표준화하는 작업”
이번 진료비 조사는 전국 4,130개 동물병원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반려동물을 진료하는 동물병원은 모두 포함된다. 조사 대상 동물병원은 의무적으로 응해야 한다.
이처럼 개별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의 규제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미국동물병원협회가 회원 병원의 진료비를 표본조사해 발간하는 ‘Veterinary Fee Reference’는 지역별, 항목별 평균 진료비나 백분위 데이터 등 통계값을 공개한다. 일본수의사회도 정기적으로 회원 병원의 진료비를 조사하지만, 지역별 대표값을 제시할 뿐 개별 동물병원의 단가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공시제는 미국·일본과 달리 참여 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공개되는 정보는 진료항목별 지역별 대표값으로 유사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개별 병원의 단가를 전수 공개하면서 줄세우기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동물병원 진료비 공시제는 매년 강화되어 왔다. 2023년 수의사 2인 이상 동물병원을 대상으로 10개 항목을 조사해 공개한 것을 시작으로, 2024년에는 조사 대상을 전국 모든 동물병원으로, 2025년에는 조사 항목을 20개로 늘렸다.
올해 초만 해도 작년과 같은 형태의 조사가 진행될 전망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조사·공개 사업을 맡고 있는 대한수의사회가 3월 조사·분석 및 관련 홈페이지 유지·보수 용역 입찰을 공고하면서 작년과 같은 업무 내용을 전제했다.
하지만 4월 이후 갑자기 ‘농식품부가 개별 동물병원 단가의 전수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관련하여 ‘동물병원의 진료비용 등의 공개에 관한 기준’ 농식품부 고시 개정도 추진되고 있다.
이 같은 기조는 동물병원 진료비 부담 완화를 추진하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와 연관된 것으로 풀이된다.
7월 16일(목) 하반기 농식품부 업무보고를 주재한 이재명 대통령이 “반려동물 진료비가 너무 비싸다. 진료비를 줄이는 방법이 뭐냐”고 묻자 송미령 장관은 “자주 이용하는 진료 항목에 대해서는 진료비를 공개해서 가격을 표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결국 개별 동물병원 진료비 전수 공개 방침이 동물병원 진료비 책정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규제라는 점을 자인한 것이다.
개별 병원 단가 공개, 줄세우기 가격비교 우려
사람 비급여 진료비 공개제도에선 ‘편차·가격 상승 억제’ 연구도
그 압력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변 동물병원의 주요 진료비 단가를 보호자들도, 병원들도 서로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줄세우기로 이어질 수 있다.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뢰로 순천향대 민인순 교수팀이 수행한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효과분석 및 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당시 사람에서 단계적으로 도입 중이던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제도가 비급여 진료비 상승을 억제하고 편차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2016년 당시 진료비가 공개됐던 54개 항목 중 31개 항목에서 전년 대비 변이계수가 감소했다. 공개 대상 전체 비급여 항목의 금액은 같은 기간 평균 2.18% 하락했다. 감소한 항목(46개)이 증가한 항목(8개)에 비해 훨씬 많았다.
‘건강보험 비급여 정보공개 정책이 의료기관 진료비용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공개된 21개 항목(상급병실료차액, 초음파, MRI 등)의 비급여 진료비를 분석한 결과, 도입 시점에서는 가격 하락 효과가 있었지만 연도가 경과할수록 다시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동물병원 진료비도 올해 말 전수 공개되면, 실질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조사 대상 진료항목이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점도 전수 공개, 주변 병원과의 가격 비교로 이어지면 더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혈액화학검사는 동물병원별로 기기와 패널 구성이 다양하다. 하지만 통계값을 산출하기 위한 공시제 조사는 10개 항목검사를 상정하여 진행되다 보니 실제와 괴리가 생긴다.
심장사상충예방, 광범위 구충 예방비용 문제도 여전하다. 넥스가드 스펙트라, 크레델리오 플러스, 심패리카 트리오 등 심장사상충과 내·외부기생충을 전반적으로 예방하는 이른바 ‘올인원 구충제’를 두고서 여전히 공시제 조사는 ‘심장사상충예방비’로, 대한수의사회 진료비 게시 가이드라인은 ‘광범위 구충비’로 구분하고 있다. 실제와 다른 가격 비교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상정된 상황과 다른 환자에 대한 검사는 비용이 달라질 수 있는만큼, 그에 따른 오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여주느냐도 중요한데..공개 방식 ‘불분명’
그래서 부담이 좀 줄어들까요? 사람 비급여 진료비는 확대일로
어떻게 공개할 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연말에 (동물병원별로) 공개하겠다’는 대략의 방침만 있을 뿐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시제 조사는 환자의 체중(크기)과 증상, 관련 상황을 특정하여 진행된다. 때문에 각 동물병원이 해당 조사에 응답한 비용은 실제 사이트 이용자(보호자)가 부담하게 될 비용과 다를 수 있다. 현장의 오해를 방지하려면 ‘진료비용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무척 중요한데, 그런 방법은 지금 정해져 있지도, 미리 고민하지도 않고 있다.
이는 이번 공개 방침이 정부 측에서 갑작스럽게 밀어붙인 사안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애초에 공개 사이트 구축·운영을 위해 입찰했던 사업의 내용도 예산도 지난해 조사에 맞춰져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개별 동물병원 진료비 전수 공개를 서두르고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송미령 장관의 질의응답처럼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을 줄여줄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다.
설령 특정 진료항목의 단가에 영향이 있더라도 그 진료항목을 시행하는 횟수는 통제하기 어렵고, 다른 진료항목으로의 풍선효과를 막을 방법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의에서도 이미 증명되어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하는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13.5조원이었던 비급여 진료비는 2024년 21.8조원까지 꾸준히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