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취임 이후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하면서, 경기도립동물병원 관련 연구 용역도 중단됐다.
경기도는 지난 7월 2일 ‘경기도립동물병원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 용역’ 발주계획을 공개했다. 내년 5월까지 2억원을 들여 경기도립동물병원 설치·운영 타당성을 연구하는데, 경기 남부, 북부에 각각 1개소 이상(최소 2개)의 입지를 제안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추 지사가 “도지사가 직접 결재하지 않은 부서별 연구 용역을 모두 잠정 중단하라”고 지시하면서 용역이 잠정 중단됐다.
하지만, 경기도의회에서 ‘경기도립동물병원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을 그대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당성에 관한 확인도 없이 조례부터 만드는 것은 앞뒤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수의사회(회장 손성일)가 경기도 공공동물의료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경기도수의사회는 “경기도의 심각한 재정위기 속에서 대규모 도립동물병원을 신축하는 대신 기존의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며 “민간 동물병원과의 협력을 통한 바우처 제도 도입이 도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더 실질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미 수백억 원의 세금을 투입해 설립한 ‘반려마루 여주’, ‘반려마루 화성’ 등 기존 시설의 활용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아래는 경기도수의사회 입장문 전문이다.

경기도 공공동물의료, 새 병원을 짓는 것이 최선일까요? – 경기도수의사회장 손성일
새로운 도립동물병원 건립보다 기존 의료 자원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반려동물은 이제 많은 가정에서 단순한 동물을 넘어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아플 때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보호자들을 사회가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반려동물 의료의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취약계층의 반려동물이 필요한 치료를 받도록 돕고, 유기동물의 치료와 감염병 대응, 재난 상황에서의 동물 의료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지방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영역입니다.
실제로 도립동물병원 추진 측에서도 취약계층 지원, 유기동물 진료, 감염병 대응과 재난 시 긴급진료 등 공공성이 필요한 영역에서 역할을 수행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공공동물의료를 확대하는 것과 새로운 대규모 공공동물병원을 직접 건립하는 것은 과연 같은 의미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의료의 목적이 도민과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중요한 것은 ‘공공병원이라는 건물을 하나 더 갖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나 많은 도민과 반려동물에게 실질적인 의료혜택을 제공할 수 있느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경기도의 재정 상황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현재 경기도의 재정 여건은 매우 녹록지 않습니다.
경기도는 2026년 8월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서 불요불급한 사업을 대상으로 5,465억 원 규모의 강도 높은 세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경기도 스스로 현재의 재정 상황을 ‘비상 상황’으로 규정하고 취약계층 생계·돌봄, 도민 안전, 필수 복지·의료 등을 우선적으로 지키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경기도의회에서도 어려운 재정 여건으로 인해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중단하는 사례들이 잇따라 논의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가 공모사업에 선정돼 국비까지 확보했지만, 도비가 부족해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사업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립동물병원 사업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당초 경기도는 2억 원을 투입해 ‘도립동물병원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경기 남부와 북부에 각각 1곳 이상의 후보지를 검토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재정위기가 심각해지면서 7월 용역 발주가 잠정 보류됐고, 9월 경기도의회에 제출된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에서는 도립동물병원 타당성 연구용역비 2억 원이 전액 감액됐습니다.
경기도의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에서도 이 사업을 ‘사업 일몰 이후’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새로운 도립동물병원을 건립하기에 앞서 필요성과 경제성, 사업 규모 등을 검토하기 위해 마련했던 사전 연구사업 자체가 중단된 것입니다.
<*제393회 경기도의회(임시회) 2026년 9월 8일(화) 농정해양위원회 회의록 발췌 : 해당 용역은 경기도립동물병원 조성의 필요성과 추진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한 사전 절차이므로 사업 일몰 이후 당초 용역을 통해 확인하고자 했던 사항에 대하여 향후 어떠한 방식으로 추진할지에 대한 집행부의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편집자 주)>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서둘러 새로운 시설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사업이 필요한지, 기존 시설과 민간 의료체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무엇인지, 같은 재원을 투입했을 때 어떤 방식이 더 많은 도민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지를 다시 따져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은 지을 때만 돈이 드는 시설이 아닙니다
공공동물병원을 이야기할 때 흔히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병원은 건물만 지으면 끝나는 시설이 아닙니다.
부지와 건축비뿐 아니라 방사선·초음파·CT와 같은 의료장비, 수술실과 입원실 구축, 각종 검사장비가 필요합니다. 이후에는 수의사와 동물보건사, 행정인력 등을 지속적으로 고용해야 하고 의료장비 유지관리, 시설 보수와 운영비도 매년 필요합니다.
더구나 당초 경기도의 계획은 남부와 북부에 각각 한 곳 이상의 후보지를 검토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실제 건립을 논의하려면 단순한 초기 건축비가 아니라 향후 수년간 투입될 운영비까지 포함한 총비용과 그 비용으로 몇 명의 도민이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현재는 타당성 조사 자체가 일몰된 상황이므로 도립동물병원의 정확한 총사업비가 산정됐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검증이 선행돼야 합니다.
경기도에는 이미 수많은 민간 동물병원이 있습니다
또 하나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동물의료의 경우 사람의 의료취약지역처럼 병원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공공이 처음부터 의료시설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경기도 전역에는 이미 많은 민간 동물병원이 운영되고 있으며, 그중에는 영상진단, 응급진료, 외과수술, 내과·피부과·안과·치과 등 전문적인 진료 역량을 갖춘 병원들도 있습니다.
경기도수의사회가 기존 입장문에서 지속적으로 제안해 온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새로운 공공동물병원을 건립하기보다 이미 지역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민간 동물병원을 공공의료 전달체계에 참여시키자는 것입니다. 기존 의료자원을 이용하면 새로운 병원을 짓는 데 필요한 시간과 시설투자를 줄이면서 도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가 일정한 자격과 시설 기준을 충족하는 동물병원을 ‘공공협력 동물병원’으로 지정하고,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 보호자에게 의료비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보호자는 자신의 거주지역에서 가까운 동물병원을 이용하고, 경기도가 일정 범위의 진료비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같은 예산이라면 수원에 사는 보호자는 수원의 병원을, 고양에 사는 보호자는 고양의 병원을, 포천에 사는 보호자는 포천의 병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도립동물병원 한두 곳을 이용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방식보다 도민의 생활권 안으로 공공의료를 가져오는 방식입니다.
공공동물의료의 목적이 ‘공공기관이 직접 진료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데 있다면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는 모델입니다.
경기도수의사회는 기존에도 저소득층 동물의료비 바우처, 저소득층 펫보험료 지원, 민간 동물병원을 활용한 공공협력병원제, 취약지역 예방의료, 유기·보호동물 의료지원 등의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해 왔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반려마루’의 의료기능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자산이 있습니다.
바로 여주와 화성의 ‘반려마루’입니다.
경기도 공식 자료에 따르면 반려마루는 여주와 화성에 운영되고 있으며, 유기·유실동물에 대한 건강검진, 예방접종, 중성화 등 의료 관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반려마루 여주에는 이미 동물병원이 설치돼 운영되고 있습니다. 경기도가 공개한 2026년 자료에도 반려마루 여주의 시설로 보호동, 입양동, 동물병원, 문화센터 등이 명시돼 있으며 동물병원 운영이 기존 사업에 포함돼 있습니다.
2026년 경기도 조례 개정안에서도 여주와 화성 반려마루의 시설에 동물병원이 명시됐습니다.
이들 시설 역시 경기도가 운영하는 공공시설이고 도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됩니다.
따라서 공공동물의료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 새로운 건물을 또 짓기 전에 이미 경기도가 가지고 있는 시설과 의료기능을 먼저 충분히 활용할 수 없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반려마루 내 동물병원의 인력과 장비를 보강하고, 유기동물 진료와 감염병 대응, 재난동물 의료, 취약계층 지원 등 민간 동물병원이 수행하기 어려운 공공기능을 강화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존 공공자산의 활용도를 높이고 추가적인 시설투자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공공은 민간과 경쟁하기보다 민간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야 합니다
공공동물의료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공공과 민간의 역할은 같을 필요가 없습니다.
일반적인 예방접종이나 검사, 수술 등 이미 지역 동물병원에서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 진료를 공공기관이 세금을 투입해 동일하게 수행한다면 민간 의료기관과의 역할 중복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유기동물 의료, 재난동물 구조와 치료, 동물 감염병 대응, 경제적 취약계층 의료지원, 의료취약지역 예방의료처럼 시장의 힘만으로 충분히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은 공공이 적극적으로 담당할 가치가 있습니다.
공공은 민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을 보완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경기도수의사회가 지속적으로 제안해 온 기본 원칙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공공병원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도민이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공공동물의료 정책의 최종 목적은 분명해야 합니다.
건물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보호자를 줄이고, 유기동물에게 필요한 치료를 제공하고, 감염병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공공이 책임 있게 대응하며, 도민들이 필요한 동물의료서비스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여야 합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도립동물병원을 직접 건립하는 방법도 하나의 정책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민간 동물병원과의 협력, 의료비 바우처, 취약계층 지원, 기존 반려마루 동물병원의 기능 강화와 같은 대안들과 비용·접근성·수혜 인원·지속가능성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경기도가 수천억 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을 해야 할 정도로 재정이 어려운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한정된 재원이라면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시설을 잘 활용하고, 이미 지역 곳곳에서 진료하고 있는 민간 동물병원과 협력해 도민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방법을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시설이 아니라 도민의 소중한 세금과 반려동물의 건강입니다.
공공성과 재정의 효율성은 서로 반대되는 가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정된 세금을 가장 효과적인 곳에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공공동물의료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