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진료비 전수 공개와 동물진료부 공개, 순서가 틀렸습니다 : KBVP

한국수의임상포럼 KBVP 담화문


16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공개를 설계했던 우리가 말합니다 – 순서가 틀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진료비 전수 공개 시행규칙과 진료부 공개 법안에 대한 한국수의임상포럼의 담화

보호자 여러분, 국민 여러분, 그리고 내일 국회 앞에 서는 동료 수의사 여러분께.

한국수의임상포럼(KBVP)은 근거중심 수의학(Evidence-Based Veterinary Medicine)의 확립을 사명으로 하는 임상 학술 조직입니다. 우리는 구호보다 근거를, 주장보다 검증을 앞세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 원칙을 지키는 조직으로서, 지금 진행 중인 두 사안 — 개별 동물병원 진료비 전수 공개 시행규칙과 진료부 공개 의무화 법안 — 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는 한국수의임상포럼에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습니다. 우리는 그 연구에서 동물병원의 진료비 게시 의무와 지역별 통계 공개를 권고했고, 그 권고는 2023년 현행 진료비 공시제로 구현되었습니다. 오늘 정부가 확대하려는 바로 그 제도의 기초를 설계한 것이 수의계입니다. 수의사가 정보 공개를 두려워한다는 프레임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 연구용역은 어떤 진료비 공개 정책도 작동하려면 표준 진료코드체계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고, “시장경제에 기반하는 동물병원 진료 영역에서 정부의 획일적 규제는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 표준코드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자신이 발주하고 자신이 받아 든 연구의 결론을 건너뛴 채, 그 연구가 검토조차 하지 않은 방식 —표준 정의 없는 개별 원자료 전수 공개—로 직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정부가 8년 전 자신의 결론을 뒤집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정부는 아직 답한 적이 없습니다.

근거는 그사이 더 쌓였습니다. 미국 인체 의료의 대규모 실증 연구는 가격 비교 도구의 이용률이 10%에 그쳐 지출이 줄지 않았음을, 공개 규제가 명목 가격만 낮추고 환자의 실제 지불액은 그대로였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내 인체 의료의 비급여 공개 이후에는 비교 가능한 항목의 다수에서 평균 가격이 오히려 오르는 상향 평준화가 보도되었습니다. 영국조차 ‘정의된 진료행위’의 표준 목록과 품질 정보의 병행 제공을 전제로 제도를 설계했습니다. 표준화 없는 전수 공개는 국제적 추세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전례 없는 실험이며, 같은 ‘중성화 수술’ 항목 아래 수술비만 적은 병원과 마취 전 검사·모니터링·입원까지 포함한 병원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보호자는 정보가 아니라 오독을 받게 됩니다.

한국동물보건사협회와 한국동물보건학회가 어제와 오늘 밝힌 우려에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처방 대상 동물용의약품의 상당수를 약사법 제85조제7항의 예외에 따라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현행 구조에서, 진단명과 처방 내역이 그대로 보호자 손에 들어가면 다음 진료는 동물병원이 아니라 약국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는 개별 동물의 약화 사고를 넘어 항생제내성이라는 국가공중보건 문제로 돌아옵니다. 자가진료가 전면 허용된 농장동물에서는 그 위험이 국민의 밥상으로 이어집니다. 보호자의 알 권리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알 권리가 동물의 안전으로 이어지려면 처방 정보의 분리, 약사법 예외 조항의 정비, 농장동물에 대한 별도 설계가 함께 가야 합니다. 정보만 먼저 공개되고 안전장치는 뒤에 오는 순서로는 누구도 보호되지 않습니다.

요구만 하는 것은 우리의 방식이 아닙니다. 보호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정부 포털의 지역 평균 가격표가 아니라, 내 동물이 오늘 이 병원에서 받을 진료의 내용과 비용을 미리 아는 것입니다. 이 요구는 정당하며, 정부의 전수 공개는 이 요구를 채우지 못합니다.

한국수의임상포럼은 ‘진찰 후 서면 견적과 보호자 동의’의 표준 양식과 실천 가이드라인을 즉시 개발하여 공개하고, 이를 원하는 모든 동물병원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포하겠습니다. 진찰 후 치료 계획을 세울 때 예상 비용의 범위를 서면으로 제시하고, 가능한 경우 권장 계획과 대안 계획을 함께 제안하며, 예상 범위를 넘을 상황이 생기면 진행 전에 다시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실천 — 이는 2017년 연구용역이 선행정책으로 권고한 진료비 사전고지제를 수의계 스스로 구현하는 길입니다. 대한수의사회를 비롯한 수의계 전체가 이를 자율 준칙으로 채택해 주실 것을 공식 제안하며, KBVP는 뜻을 같이하는 임상수의사들과 함께 그 첫 실천 사례들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표준 진료코드체계 구축 작업이 시작되는 즉시, 2017년 연구를 수행한 학술 조직으로서 그 작업에 모든 임상적 전문성을 투입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정부가 8년간 하지 않은 일을, 우리는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수의임상포럼은 투쟁 조직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일 진료실을 나서 국회 앞에 서는 수의사들의 목소리가 이익의 목소리가 아니라 근거 위에 선 목소리임을, 우리는 학술 조직으로서 증언합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규제의 면제가 아니라 규제를 만들 때 지켜야 할 절차와 순서입니다. 그리고 보호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내일도 응급 진료와 중증 환자의 치료는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픈 동물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오늘 진료실 밖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 농림축산식품부는 2017년 연구용역의 결론이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에 어떻게 반영 또는 배제되었는지 그 경위를 공개하고, 규제영향분석서를 작성하여 공개하라.

둘. 진료비 공개는 표준 진료행위의 정의가 확립된 항목부터 순차적으로, 병원 유형과 수행 조건 등 맥락 정보와 함께, 조사 데이터의 검증·정정 절차를 갖추어 시행하라.

셋. 국회는 진료부 공개 법안에 처방 정보의 분리, 농장동물의 제외 또는 유예, 목적 한정과 제3자 공개 금지의 실효 장치를 조문으로 보완하고, 약사법 제85조제7항 예외 조항의 정비를 함께 처리하라.

넷. 정부·국회·수의계·동물보건사·보호자·공중보건 전문가가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구성하라. 우리는 그 자리에 근거를 가지고 앉을 것이다.

동물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일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좋은 의도가 좋은 정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10년간 각국의 실험이 보여주었고, 8년 전 정부 스스로의 연구가 이미 말했습니다. 검증되어야 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 제도는 보호자와 동물을 실제로

보호하는가, 아니면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우리는 그 질문에 근거로 답하는 논의가 지금이라도 시작되기를, 그리고 그 첫걸음을 수의계가 먼저 내딛는 것으로 증명하기를 바랍니다.

2026년 9월 1일 한국수의임상포럼(KBVP) 회장 김현욱

동물진료비 전수 공개와 동물진료부 공개, 순서가 틀렸습니다 : KBVP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