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움에는 끝이 없다” 60세에 수의외과학 박사 된 이상관 원장
대구 조은동물의료원 이상관 원장을 만나다

새벽 4시 30분. 많은 이들이 잠든 시간에 한 수의사는 책을 펼칩니다. 30년 넘게 동물병원을 운영했고, 수많은 수술을 집도했으며, 지역수의사회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수의내과학 박사 학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60세의 나이로 수의외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상관 원장은 “환자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공부를 멈출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의 삶은 수의사에게 배움의 지속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줍니다.
데일리벳에서 대구 조은동물의료원 이상관 대표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Q. 수의사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집에 들어온 길고양이를 방안에서 키웠는데, 누나들의 고양이 털 알러지 때문에 방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우리 식구 5명이 한방에서 이불을 덮고 겨울을 지내던 시기였습니다. 연탄가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몇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매일 같이 나오는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죠.
그 녀석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 연탄불 주위에서 몸을 감고 추운 겨울을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힘도 없이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사람도 병원에 가려면 30분을 걸어서 시외버스를 타고 또 10분을 더 가야 했습니다. 가축병원도 찾을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사람도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에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간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었죠. 그저, 연탄가스중독이라고 의심하면서 김칫국물을 먹여가며 간호했지만,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았던 어린 동생과 고양이를 끌어안고 실컷 울고, 강가에 묻어줬습니다.
시골 마을이라 집집마다 집 지키는 강아지가 있었고, 마당에 토종닭을 풀어 놓고 키우기도 했습니다. 토끼도 많이 키웠고, 외양간에는 농사를 돕기 위한 송아지도 길렀죠.
이처럼 어릴 때부터 항상 동물과 가까이 지내면서 동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랐는데, 고양이의 연탄가스중독사건을 겪으면서 어린 소년의 마음에 ‘치료해 주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마음이 수의사를 결심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수의대생 시절부터 반려동물 임상수의사가 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수의대 졸업 후 동물병원을 개원할 때까지 어떻게 살아오셨나요?
1990년 군대를 제대하고 3학년에 복학하면서 임상수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고, 졸업한 뒤 내과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실험실 일을 하면서 경북대학교 부속동물병원 진료에 참여하기 시작했죠. 논문을 찾아가면서 읽고, 전공 공부를 깊게 하면서 임상가의 꿈을 더욱 키우게 된 대학원 시절이었습니다.
지도교수님께서 일본 동경대학교 유학을 추천하여, 2년 동안 일본어 학원에 다니면서 일본어 공부를 하기도 하였으나 집안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일본 유학을 접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 후, 대구 동인동물병원, 부산 덕천동물병원에서 진료 수의사로 일을 하고 개원 준비를 했습니다. 신축건물에 개원 장소를 계약했는데, 인허가 문제로 개원이 지연됐습니다. 그즈음, 테니스에 입문하여 새벽 테니스를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건강 유지와 스트레스 해소 비결이 된 것 같습니다. 최종적으로 1994년 10월 15일에 동물병원을 개원했습니다.
Q. 1994년 개원해서 벌써 30년 이상 동물병원을 운영 중입니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이것만은 지키자’고 결심했던 원칙은 무엇인가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벌써 3번이나 변했겠군요.
처음 개원했을 때는 환자가 아니라 환축이라고 불렀습니다. 거의 대부분 목줄에 끌려 병원에 왔으며, 주인의 품에 안겨 온 작은 반려동물은 10%도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의학이 엄청나게 발전했고,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축주·주인에서 보호자 또는 예삐 아빠·엄마가 됐고, 반려동물이 가족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반려동물의 수명도 많이 늘었습니다. 개원 당시에는 10살이 넘는 환자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평균수명이 20살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조금 과장을 해보자면, 개원 당시에는 혈관주사 잘 놓으면 실력이 뛰어난 수의사로 평가받았고, 고양이를 잘 핸들링하고 하악질에 놀라지 않으면, 집사들이 ‘고양이 잘 보는 병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말 못 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행하는 진료는 어렵고 진단도 복잡하지만, 내가 하는 처지가 환자들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새기며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 항상 변화하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여러 세미나·학회를 찾아다니면서 익히고 받아들이는 시간들의 연속이었죠.
국내에서는 한국동물병원협회(KAHA), 한국임상수의학회, 한국수의외과학회, 한국수의치과협회에 참석했고, 해외로는 WVC(Western Veterinary Conference), FASAVA(아시아·태평양 소동물수의사대회), AO North America 등에 참가했습니다.
경북대학교 수의예과·수의학과에서 10여 년 강의했고, 한국수의치과포럼에서도 여러 번 강의했습니다. 한국임상수의학회 부회장, 한국수의외과학회 부회장, 한국수의치과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Q. 현재 동물병원의 인력 구성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원장님께서는 주로 어떤 진료를 담당하시나요?
저를 포함해 원장 3명과 수의테크니션 10명이 근무 중입니다. 저는 외과와 치과를 주로 담당합니다. 종양, 디스크질환, PDA, PSS를 비롯한 연부조직 수술, 골절, 탈구, 관절 질환의 정형외과 수술, 근관치료, 치주수술 등 치과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Q. 대구광역시수의사회 회장으로도 활약했었습니다. 회장 시절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다면?
1990년도 말부터 대구시수의사회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이사, 학술이사, 상무를 거쳐 회장직을 맡아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 9월 2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9차 FASAVA 총회에서 제13차 아시아·태평양 소동물수의사대회(FASAVA 콩그레스)의 대구 유치를 확정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인도 케랄라(Kerala)와 유치 경합을 했는데, 만장일치로 대구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대만 뉴타이페이시와 자매결연도 맺었으며, 회원 복지사업으로 상을 당하였을 때 대구수의사회 이름이 인쇄된 상조 물품을 보내어 위로와 소속감을 증대시켰습니다. 콘도 회원권을 구입하여 회원들의 여가를 돕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여느 때와 같이 대구시수의사회에서 이어진 행사들을 잘 이행한 것 같습니다.

Q. 수의내과학 학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60세의 나이로 수의외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수의외과학 대학원에 진학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임상의 기본이 되는 것은 내과학이라고 생각하여 졸업 후 내과 대학원에 들어갔으며 석사 졸업 후 개원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소와 돼지를 중심으로 공부했는데, 임상을 하면서 반려동물에 대해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어 수의내과학 박사 과정을 시작해, 2005년 2월에 모교인 경북대학교에서 수의내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런데, 임상을 하다보니 점점 다른 동물병원에서 저에게 외과 수술을 의뢰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의뢰한 원장님들이 ‘외과가 더 맞는 것 같은데, 외과대학원에 진학해 보는 게 어때?’라고 말하기까지 하셨죠. 저도 외과수술이 재밌었고, 특히 정형외과수술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던 터라 외과대학원을 많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내과 학위가 있지만 외과수술만 하던 원장님이 계셨는데요, 서로 의기투합해서 외과대학원에 진학하자고 했고,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외과대학원 진학을 실천했습니다. 그 당시가 개인적으로 대구시수의사회장 임기가 끝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긴 시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충남대학교 수의과대학 외과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Q. 박사 논문 내용을 소개해 주신다면?
수의내과학 박사논문의 경우, 저희 교실에서 중독과 관련된 실험을 많이 하고 있던 터라 사염화탄소로 유발된 간 손상에 대한 인진쑥 추출물의 치료 효과에 대해 실험하고 졸업했습니다.
수의외과학 박사논문은 새로운 방법의 항문낭 수술법(INside-out anal sacculectomy technique)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때까지 임상을 하면서 항문낭 제거술을 많이 했는데요, 기존 수술법보다 시간도 빠르고 출혈이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시행해 좋은 결과를 얻었고, 기존 수술방법과 비교하여 해외 학회지에 게재했습니다.
INside-out anal sacculectomy technique는 항문낭 입구와 관을 포셉으로 확장시킨 후 포셉을 항문낭으로 넣어 항문낭 기저부를 집어 들어 올려 전기수술기로 제거하는 방법으로 기존방법보다 간단하고 쉽게 항문낭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기존 항문낭제거 수술법은 open technique와 closed technique이 있는데 이와 비교하여 제가 개발한 Inside-out technique은 개와 고양이에서 수술법이 간단하고 시술 시간이 매우 빠르며 수술 중 출혈량도 적고 외부괄약근손상 등의 합병증 발생을 줄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Q. 대구에서 대전까지 일주일에 1~2번씩 왕복하면서 충남대동물병원 수술을 참관했다고 들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계속 배움을 위해 정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충남대학교 외과대학원 입학을 할 때가 코로나19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1~2차에는 영상 강의로 수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3년 차에 지도 교수님의 허락하에 외과 수술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화요일과 목요일에 외과수술이 진행되어 수술을 참관했고, 1년간 일반외과 및 정형외과수술을 참관하면서 대학병원의 수술 준비 과정, 수술 과정, 수술법 등을 익혔습니다. 수술을 집도하시는 정성목 교수님과 이해범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그 당시 대학원생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로컬에서 수술했던 방법이나 과정을 비교할 수 있었고, 새로운 수술기법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흥분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배움이란 끝이 없다고 생각하며, 병원을 하는 동안에는 계속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마음뿐입니다.
Q. 최근 새벽에 매일 책을 읽고 계시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공무원이 된 대학 동기들의 퇴직 소식을 들으면서 저도 언제까지 임상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포모증후군(FOMO syndrome)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소외되거나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이 생기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다가 고명환 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고, 그날 바로 ‘고전이 답했다’ 책을 구입해 독서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교과서 이외의 책은 별로 읽지 않았는데, 그 책을 하루 만에 정독했고, 그 뒤로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몸을 건강하게 하려고 운동을 해왔지만, 정신적 건강을 위해 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독서로 정신을 건강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평소에 5시에 일어나 운동을 했었는데요, 그날부터 30분 더 빠른 ‘4시 30분’에 알람 시간을 고정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한 뒤 30분을 독서에 할애했습니다. 또한, 책을 들고 출근해 진료시간 사이 독서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걱정과 잡념은 사라지고 정신이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즘에는 일반 책 대신 수의치과학 교과서 원서를 매일 새벽 읽고 있습니다.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가 될 때까지 원서를 읽을 작정입니다. 수의치과학 교과서를 다 읽으면, 다시 일반 독서로 돌아갈 예정인데요, 독서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진료도 더욱 신나게 볼 수 있습니다.

Q.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임상수의사로서 현재 우리나라 임상계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감히 제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저희 세대는 좋은 시절을 만나 비교적 개원을 쉽게 하고 병원 운영을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수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수의사라고 생각하면, 이 심한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병원을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적 흐름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원하는 병원마다 24시간 의료센터를 지향하고 있으니, 이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대형화, 과잉홍보, 과잉투자, 수익의 감소 등 출혈경쟁이 심한 것 같습니다. 대형병원은 의뢰환자 유치 경쟁을 하고, 일부 소형동물병원들은 펫숍 연계병원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어린 환자 감소 등으로 대부분 동물병원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이지만, ‘말 못 하는 환자를 고쳐준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을 열심히 살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수의사를 천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또한, 다음 세대 수의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진료하는 날까지 환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 새로운 수의학지식을 익히고,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임하고 싶습니다. 이때까지 살아온 마음이 변치 않고, 보람 있게 은퇴하는 게 목표입니다.
후배들에게는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경기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으며, 되돌아보면 그때가 호황”이라고 말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임상을 시작하지만, 경제적 부분만을 너무 쫓기보다 진료에 집중하는 수의사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