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부 공개 의무화, 반대 입장 유지..헌법소원·국회 대응 점검
헌법소원 지면 공개 의무화 입법 불가피..플랜B 필요성에 ‘고민’
동물병원 진료부 공개를 의무화하는 수의사법 개정 움직임은 2017년부터 본격화됐다. 이후 두 번의 총선을 지나는 동안 진료부 공개 의무화 수의사법 개정안은 국회의 단골 손님이 됐다. 대선 공약에까지 등장한다. 수의사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이미 진료부 공개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이에 대한 헌법소원까지 제기됐다. 헌법재판소가 이들의 손을 들어준다면 법 개정을 막기 어렵다.
5월 30일(토) 오송 H호텔에서 열린 대한수의사회 제2차 임원 워크숍에서 대수 임원진은 진료부 공개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과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약사예외조항, 농장동물 자가진료 등의 문제가 선결되지 않은 현재로선 진료부 전면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공개가 강제될 경우에 대비한 차선책을 마련해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동물진료부 공개 자체의 필요성은 있지만..
처방제 부실·자가진료 여전 부작용 크다
보호자·변호사의 헌법소원까지..결과 ‘촉각’
대한수의사회는 그간 동물진료부 공개 의무화에 반대하면서도 그 원론적인 필요성은 부정하지 않았다. 보호자 알 권리 충족, 정보 비대칭성 완화 등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방·처치 정보까지 포함된 진료기록이 공개되면 큰 폐해가 우려된다. 국정감사에서 실데나필 성분 동물용의약품의 무분별한 판매 문제가 지목된 것처럼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마저 실질적으로는 수의사 처방 없이 유통된다. 수의사 처방제가 유명무실한데다 자가진료까지 허용된 농장동물은 아예 의료체계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환자 진료의 연속성을 위한 본연의 기능보다 분쟁·책임 추궁에 대한 증거 능력에 치우치며 진료부 작성이 변질될 가능성도 지적된다.
결국 진료부가 공개되어도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있도록 약사예외조항 개정을 포함한 수의사 처방제 정착, 농장동물 자가진료 철폐 등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수의사회의 입장이다. 설령 공개를 의무화하더라도 그 대상과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
문제는 이어진 법 개정안 발의에 더해 최근 헌법소원까지 제기됐다는 점이다. 동물 보호자와 변호사 단체가 각각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연철 회장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진료부 공개 의무화 법안이 근시일 내에 급속히 진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헌법소원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수의사회는 최근 법률 검토를 거쳐 헌법소원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형 법무법인과 향후 대응을 검토할 계획도 내비쳤다.
입법 강행 시에는 공개 범위·방법 제한해야
표준영수증·공개 시 처벌조항 병설 제안도 나오지만..
‘수의사 처방제도 방치했는데’ 불신 불가피
이날 워크숍에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차선책을 마련해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관련 개정안의 저지에 실패하거나 헌법소원에서 보호자·변호사단체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입법이 기정사실화될 겨우, 공개 의무화의 부작용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공개 범위와 방법 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수의사법 시행규칙은 진료부에 기재할 사항을 ▲동물의 품종·성별·특징 및 연령 ▲진료 연월일 ▲동물소유자등의 성명과 주소 ▲병명과 주요 증상 ▲치료방법(처방과 처치) ▲사용한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의 품명과 수량 ▲동물등록번호로 규정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법적 의무사항 외에도 보호자의 주호소부터 각종 검사 결과, 교육·안내 사항 등 동물병원이 수행한 행위 전반이 모두 기록되고 있다. 그만큼 모두 공개됐을 때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약사예외조항·자가진료 문제의 선결 없이 진료부 공개 의무화 입법이 강행될 경우 실질적인 공개 범위를 최소화해야 하는 이유다.
대수 사무처는 이와 관련한 국회·정부 논의 경과도 함께 공유했다. 공개 의무화 찬성 측에서도 펫보험 청구나 소비자 피해구제 용도로 진료부 의무 공개 대상을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펫보험 청구와 관련해서는 진료부 대신 ‘표준영수증’ 발급의 형태를 구상하거나, 소비자 피해 구제 용도로 당사자에게 제공한 진료부를 인터넷 등으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병설하는 방안도 함께다.
하지만 이들 제안에 대한 수의사회 내부 평가도 좋지는 않다. 의무적으로 제공된 진료부를 공개하면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다 한들 실제로 작동하기 어렵다. 수의사처방제조차 13년간 방치했다는 점을 보면 자명한 문제다. 개인이 자가진료에 악용할 가능성도 차단할 수 없다.

집행부-회원 인식 격차
헌법소원 대응 수위에서도 의견차
‘공개 의무화 반대 공식 입장은 그대로’ 강조
이날 워크숍에서는 진료부 공개 의무화 대응에 대한 임원진의 고민도 엿보였다.
지난 10년간 개정을 저지하면서 동력은 떨어져 가고, 헌법소원이 진료부 공개 의무화 쪽으로 인용될 가능성도 적지 않은데, 차선책 준비를 거론하기엔 일선 회원들의 인식에 편차가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손성일 경기도수의사회장은 “회원들은 진료부 공개가 의무화되면 자가진료 부작용과 소송이 많아지고 동물병원이 망할 수 있는 문제로 생각한다”며 일선 회원과 수의사회 집행부의 인식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임승범 충남수의사회장은 “(공개 의무화 논의에 앞서) 진료부를 제대로 작성하는 방법부터 알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헌법소원을 두고서도 헌법재판소 단계에서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과 한정된 역량을 대국회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갈렸다.
우연철 회장은 “현 시점에서의 공개 의무화는 불가하다는 공식 입장은 그대로다. 향후에도 국회에서 진료부 공개 의무화 법안은 지속적으로 저지해야 한다”면서 “결국 입법은 국회의 공이지만, 헌법소원 대응도 실익을 고려해 대형 법무법인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우 회장은 “(진료부 공개 의무화 반대가) 수의계의 몽니처럼 보이지 않도록 관련 문제에 대한 홍보도 철저히 해나가겠다”면서 회원과의 인식 격차에 대해서는 “지역별 연수교육이나 컨퍼런스에서 타운홀 미팅 방식의 설명 기회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