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문] 간호사, 동물병원에서 생명의 연결고리를 다시 배우다

대학병원 간호사(RN)가 동물병원에서 느낀 동물의료와 사람의료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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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간호사인 서정원 씨가 2개월간 뉴엘동물의료센터에서 실습을 했습니다. 사람 간호사에게 동물병원 실습은 어떻게 느껴졌을까요?

뉴엘동물의료센터(원장 이덕원)로부터 소감문을 공유받아 게재합니다.

처음 수의사 꿈을 가졌던 것은 대학생 때였습니다. 당시 대학병원 실습 중 마주한 아픈 사람들보다 동물들이 더 귀엽게 느껴졌고, 쉽게 동정심이 생긴다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구체적인 동기가 없었기에 그 꿈은 자연스럽게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한 지 4년 차에 혈액종양내과 병동에서 근무하던 중, 다시 한번 수의사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품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담당했던 한 다발성골수종 환자분이 척추 골절까지 동반되어 150일 이상 장기 입원 중이셨는데, 긴 투병 생활에 지쳐 치료에 회의감을 느끼고 모든 투약을 거부하며 의료진은 물론 보호자와의 대화마저 단절한 상태였습니다. 늘 찡그린 표정으로 창밖만 바라보던 환자분이 유일하게 미소를 띠었던 순간은 바로 자신의 강아지 사진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그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유일한 계기였습니다.

이 경험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평소 환자의 퇴원 후 건강 관리를 위한 지역사회 시스템을 세우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에 필요한 인적·물리적·사회적 자원에 대해 고민해 왔지만, 동물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척추골절이 있던 그 환자분이 병상에만 누워있지 않고 반려견을 가끔씩이라도 면회할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령 결과가 같았더라도 훨씬 존엄하고 행복한 임종(Well-Dying)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웰빙과 웰다잉은 단순히 인구사회학적 구조뿐만 아니라, 생태계와의 조화, 특히 반려동물과의 유대 관계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의학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가치에 공헌하고 싶다는 확신이 섰고, 뉴엘동물의료센터에서 인턴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간호사(RN)로서 마주한 동물병원에서의 첫 경험은 흥미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부분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와 달랐지만, 동시에 놀랍도록 비슷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진료의 범위’와 ‘환자의 협조’였습니다. 사람 의료가 내과, 외과 등 세부 파트로 명확히 구분되는 반면, 수의사는 내과, 외과, 치과, 피부과, 영상의학 등 모든 진료과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인간 환자에게는 검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선행되지만, 동물은 많은 경우 물리적, 화학적, 심리적 보정을 통해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진정 약물(sedative)은 사람과 비슷하게 사용되지만, 동물에게는 보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며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람과 달리 전신마취가 필요한 스케일링 과정에서 수의사 선생님이 모든 계통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수술 위험도(OP risk)를 스스로 판단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반적인 마취 과정은 인간과 비슷했으나, 삽관(Intubation) 자세를 인간과 정반대로 취한다는 점은 의외의 발견이었습니다.

실습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케이스는 긴장한 강아지를 안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특별히 침습적인 처치가 없었음에도 강아지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을 떨며 개구호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간 환자는 자신이 왜 병원에 왔는지 알지만, 동물은 영문도 모른 채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이를 통해 공포 자체가 환자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동물 친화적인 진료 환경 조성과 세심한 통증/스트레스 관리의 필요성을 절실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환자에 대한 신체검사를 수행할 때도 평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진료 환경에 익숙했기 때문에 ‘동물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점을 느끼며 수의학 분야가 가진 고유의 어려움과 특별함을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체적 차이뿐만 아니라 질병의 양상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인간의 질병으로만 여겼던 쿠싱과 같은 호르몬 장애가 동물에게도 흔히 발생한다는 사실은, 제가 동물의 건강에 대해 얼마나 좁은 시야를 갖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했습니다.

또한, 동물병원에서 생각보다 많은 암 환자를 마주하며 질병의 진행 속도가 인간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불과 5개월 만에 종양이 급격히 커지거나, 며칠 단위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 경우를 보며 보호자분들이 느낄 충격과 당혹감을 목격했습니다. 동물은 증상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반려동물이 종양마커 검사 같은 정밀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기에 일상에서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습 초기에는 신체 검진을 수행하거나 보정하는 과정이 매우 도전적이었습니다. 특히 삼안검 확인과 같이 민감한 부위를 다룰 때나, 움직임이 심한 동물을 대할 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동물이 비명을 지르거나 몸을 비틀 때면 혹시 통증을 준 것은 아닌지 겁이 나 무의식적으로 보정이 느슨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물의 옆이나 뒤에서 천천히 다가가 신뢰를 형성한 뒤 보정을 시도해야 한다”는 원장님의 조언을 새기며 꾸준히 연습했습니다. 보정 횟수가 늘어갈수록 동물과의 소통과 접촉에 자신감이 붙었고, 활력 징후 측정이나 기본 진료 보조 업무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저에게 동물과의 교감에 자신감을 얻은 것은 이번 실습의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두 달간의 인턴십은 내과, 외과, 치과, 항암 치료 등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하며 기존의 임상 지식을 동물의료에 통합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해부학적 구조와 수치는 다르지만, 질병학적 메커니즘과 행동심리학적인 부분은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무엇보다 동물의 건강과 복지, 그리고 인간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원 헬스(One Health)’의 개념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동물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인간과의 유대도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비록 아직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지만, 실습을 통해 얻은 자신감과 간호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노력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인간과 동물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수의사가 되겠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실습을 지도해 주신 원장님과 수의사, 테크니션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뉴엘동물의료센터 이덕원 원장의 글

약 2개월간 본원에서 인턴십 과정을 수료한 서정원 간호사의 실습 소감문을 소개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서정원 선생님은 현직 대학병원 간호사로서의 고된 업무를 병행하면서도,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실습에 임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병원을 찾아 환자 보정, 검사 보조, EMR 기록 등 기본 업무부터 중증 환자의 처치 참관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우리 의료진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이번 실습 기간은 단순한 수의학 지식의 전달을 넘어, ‘생명을 다루는 의료’라는 본질 안에서 인간과 동물의 의료 환경이 갖는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정원 선생님은 대학병원에서 사람 환자를 대상으로 한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동물 환자를 마주할 때도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보다 동물 환자들이 더욱더 공포심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보호자와 환자 사이의 유대감을 존중하며 접근하는 모습에서 ‘원헬스(One Health)’를 실현할 미래 수의사로서의 자질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익숙한 사람 의료 환경을 넘어, 낯선 수의학의 세계에서도 빠르게 적응하며 자신만의 시각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재확인해 나가는 과정이 담긴 이 소감문이, 수의사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정원 선생님이 앞으로 수의학 분야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 사람과 동물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소감문] 간호사, 동물병원에서 생명의 연결고리를 다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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