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벳(vet)쳐:역학 교수라는 모험]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박상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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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함. 또는 그 일.]

삶은 크고 작은 모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의사라는 길을 선택한 우리는 때론 멈추기도, 달리기도, 누군가와 함께 걷기도 하며, 바른 방향을 찾아갑니다.

데일리벳 12기 학생기자단은 하루동안 선배님(동료 수의대생)들의 모험에 동행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수의사들(개척해 나갈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 [어드벳(VET)쳐]에서 우리들의 특별했던 하루를 전합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셜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명백한 단서들로 가득하다.”

역학자는 그 보이지 않는 단서의 실마리를 쫓는 사람입니다. 질병이라는 미스터리 속에서 인과의 퍼즐을 맞추고, 결국 생명을 지켜내는 우리 시대의 셜록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역학을 전공하고, 미국 브라운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후학 양성을 위해 귀국해 현재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긴 박상신 교수의 하루를 함께했습니다.

수의사의 눈으로 사람의 질병을 바라보는, 박상신 교수의 특별한 시선이 담긴 하루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전 9시

서울시립대학교 법학관 518호에 위치한 박상신 교수님의 연구실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창문을 열며 연구실을 환기하시던 교수님께서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셨다.

교수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던 중, 교수님의 전화기가 울렸다. “교수님, 지금 방문해도 괜찮을까요?”라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미팅. <서울형 감염병 관리인력 및 역학조사관 교육 3개년 계획> 발표를 위한 미팅이 진행됐다.

코로나19를 비롯한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감염병 관리 인력 훈련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박상신 교수는 지난 5월부터 약 6개월 동안 보건 인력 및 역학조사관 역량 강화 교육을 진행하며, 현장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향후 적용될 서울시 감염병 관리 인력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교육 과정은 역학, 방역통합시스템 활용, 해외 사례 교육, AI 분석, 포스터 작성, 검체 채취 실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히 지식이 많은 전문가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대응할 수 있는 실무형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박상신 교수는 “유관 기관과의 협력 및 대중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염병 관리는 단순한 의학적 지식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첫번째 미팅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행정실 직원이 학교 행정 업무를 들고 왔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와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오전을 채웠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잠시 틈이 생기자, 박상신 교수님의 ‘역학’을 향한 삶을 들을 수 있었다.

*   *

역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교수님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역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역학을 전공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대학원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셨나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가요?

*   *

짧은 대화였지만, 역학을 향한 교수님의 설렘과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교수님께서는 왜 연구의 길을 넘어, 가르침의 길을 선택하셨을까.

*   *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다양한 진로 옵션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계속 학계에 남아 계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교수님께서 역학 교수의 길을 택하기 전과 후,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셨는지도 궁금합니다(공통 질문)

(박상신 교수는 서울시립대의 도시보건대학원에서 역학을, 공과대학 도시빅데이터융합학과에서 빅데이터역학을 가르치며 미국 브라운대학교 의과대학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오후 2시

성균관대학교 의학관에서 열린 <Spatial Epidemiology and Mathematical Modeling for Infectious Disease Control> 워크숍 발표를 위해 수원으로 향했다.

이번 워크숍은 학문과 실제 현장을 연결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박상신 교수는 세션 4 <데이터 기반 공중보건 정책 수립 및 과제> 발표를 맡았다.

박상신 교수는 발표에서 이렇게 말했다. “데이터는 공중보건의 나침반이 될 수 있지만, 방향은 결국 인간의 판단이 결정합니다.”

역학에서 데이터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데이터는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지만, ‘왜 일어나는가’는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데이터에 공백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 공백을 메우고, 데이터를 활용해 공중보건 정책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통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   *

역학과 정책은 어떤 관계인가요?

*   *

오후 6시

서울로 돌아온 박상신 교수님은 옆 연구실의 이기일 교수님(전 보건복지부 제1차관)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셨다.

   

오후 6시 45분

오후 6시 45분부터는 대학원 수업이 이어졌다. 첫 번째 수업은 <도시환경보건학개론>.

수강생들의 논문 발표가 끝나자, 교수님은 학생들과 함께 논문을 보며 활발한 토론을 이어갔다.

이후에는 분진을 주제로 한 수업이 진행됐다. 분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환경 변화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시간이었다.

오후 8시 20분

수업이 모두 끝난 줄 알았지만, 또 다른 강의가 이어졌다. 두 번째 수업은 <역학연구 및 논문작성세미나>.

‘평론과 편집 과정’을 주제로 교수님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인 조언과 노하우를 전했다.

이후에는 교수님의 1:1 논문 피드백이 시작됐다. 논문을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미시적으로 들여다보았다가 다시 거시적으로 조망하며 자신의 논리를 유지하고, 동시에 독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10시 45분

수업을 시작하시며 교수님은 이날은 육아를 위해 일찍 퇴근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교수님과 학생들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결국 수업은 밤 10시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끝났다.

평소 박상신 교수님은 학생들의 끝없는 질문과 열정 덕분에 자정을 앞두고서야 연구실 불을 끄신다고 한다. 교수님께 12시는 하루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다. 

*   *   *   *

체험을 마치며..

인생이 길에 비유되는 이유는, 그것이 끊임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걸어온 과정이 발자국처럼 남아 결국 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박상신 교수님의 하루를 동행하며, 나는 그분의 긴 여정 속 한 조각을 함께 걸을 수 있었다. 교수님의 길은 꾸준한 열정이 쌓아 만든 길이었고, 그 열정은 잠시 그 길을 걸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진로 고민을 할 때 사람들은 흔히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라는 질문에 머리를 싸매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교수님과의 하루를 함께하며 깨달았다. 내가 힘들어했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해진 진로 중에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을 택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은 “한계를 짓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통계를 좋아하던 수의학도가 역학을 전공하고 사람 분야 감염병 역학 연구를 하게 된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바운더리를 정해두지 않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좇으면 된다.

그렇게 자신에게 솔직해질 때, 언젠가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박상신 교수님처럼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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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민 기자 ryungminhwang@gmail.com

[어드벳(vet)쳐:역학 교수라는 모험]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박상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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