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려동물 신종전염병, 고양이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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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원 뉴엘동물의료센터 대표원장

수의사들은 해외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겪어야 하는 절차가 있다. 입국수속을 마치면 담당자가 미리 마중(?)을 나와서 ‘수의사는 축산관계자이기 때문에 따로 짐 소독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축산농가를 방문할 일이 없는 개/고양이를 치료하는 반려동물 수의사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는 모두 ‘축산’ 관계자로 분류가 되어있다.

이런 소독 절차가 생긴 것은 2010년 구제역 사태 때문이다. 구제역 발생국인 베트남을 방문한 농장주가 최초 감염경로로 추정됨에 따라 이후 축산관계자들은 의무적으로 출입국시 신고를 하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당시 구제역으로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 되었고 피해액은 수조원에 달했다. 한겨울 고된 방역작업에 시달리던 수의사들과 방역담당자들 중 과로와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다. 살처분에 동원된 관계자들은 수년이 지난 이후에도 PTSD에 시달렸다.

그동안 인간도 전염병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를 겪었다.

당시 수의사이자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강아지나 고양이도 코로나19에 걸리냐’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반려동물과 인간 사이에 큰 위협이 될만한 신종 인수공통전염병이 등장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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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 지난 7월 25일에는 국내 한 보호소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으로 고양이가 집단 폐사했다. 아직까지 인간을 포함한 다른 포유류 간의 전파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신종 바이러스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도 변종 인플루엔자 유행으로 많은 개들이 사망했던 적이 있다. 사람-개 사이의 전염 사례는 없었으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코로나 바이러스 모두 변이가 매우 빠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애초에 위의 전염병들 모두 다른 동물의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전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없었다고 앞으로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식용견 농장, 번식견 농장, 열악한 보호시설과 같은 전염병에 취약한 문제들이 상존하고 있다.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는 반려동물과 인간 사이에 공통적으로 질병을 유발하는 신종 전염병이 발생한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구제역과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가축전염병이 돌 때마다 수많은 가축들이 살처분 된다. 고기로 쓰려고 키워서 파는 가축들도 살처분을 한다고 하면 그 농가에선 피눈물이 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생명은 모두 소중한 것이지만 경제적 목적으로 키우는 동물은 소유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금전으로나마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에서 신종 전염병이 발생한다면, 그 전염병이 전염성과 치사율이 매우 높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해당 반려동물들을 격리해서 치료할까. 그렇다면 격리할 시설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어떤 의료진이 치료를 담당해야 할까.

아니면 해당 반려동물들을 살처분해야 할까. 살처분한다면 반려동물 소유주에겐 어떤 방식으로 보상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수의사가 이들을 살처분 할까.

그 살처분 범위는 질병에 확진된 동물만을 대상으로 해야 할까. 아니면 가능성만 있더라도 예방적으로 모두 살처분 해야 할까.

해당 전염병 방역을 위한 주무부처는 보건복지부가 되어야 할까, 농림축산부가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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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들이 출입국시 겪는 불편함은 작은 헤프닝일 수도 있지만, 동물 보건을 관장하는 정부 조직의 경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전염병과 가축전염병 관리 사이에서 반려동물은 여전히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다.

반려동물 신종 전염병이 의심될 때 어디로 신고해야하는지, 원인 미상으로 폐사한 반려동물을 언제 어떻게 부검해야 하는지,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수의사들에게는 아무런 지침도 없는 상태다.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간이키트조차 없는 실정이다.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는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가장 파괴적인 고리가 가장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방역 정책을 포함한 재난 대책은 인기가 없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막기 위해 예산을 들이고 인력을 준비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으로 비난받기 쉽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다이’라는 한 마을은 쓰나미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는데, 과거 쓰나미를 몸소 겪었던 촌장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쓰나미를 대비한다고 쓸데없이 예산을 낭비한다’는 비난에도 미리 방조제를 지어둔 덕분이었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코로나19를 겪은 우리들은 위의 질문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방역당국은 일선에서 근무하는 수의사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해답을 준비해야 마땅하다.

전염병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의학, 수의학, 환경과학, 방역당국을 포함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동해야 한다는 ‘원헬스(One Heath)’가 그저 구호가 아닌 정책으로 구현되어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들이 마련되길 바란다.

[기고] 반려동물 신종전염병, 고양이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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