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찬의 Good Vet Happy Vet⑤] 의료사고:Mistake and 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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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yechan 300

얼마 전, 한 유명 연예인이 자신의 반려견이 동물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죽었다는 내용을 SNS에 올려 그것이 기사화된 일이 있었다. 댓글 반응도 뜨거웠다. 기사만으로 그 사건의 진위와 잘잘못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쨌건 동물병원에서의 의료사고가 이미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사안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동물이 단순히 재산의 개념으로만 존재한다면, 수의진료에서의 의료사고가 이처럼 크게 대두될 이유가 없다. 그 동물의 물질적 가치만큼 보상을 해주면 소유자 역시 받아들이고 말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이 개인에게 재산 그 이상의 가치와 생명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면서, 수의진료에서의 의료사고도 단순한 보상을 넘어서 시비를 가리기 위한 송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여전히 법적으로 동물은 재산이기 때문에 수의진료에서의 의료사고는 재물손괴에 해당하지만, 그럼에도 수의사들은 수의진료에서의 의료사고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의진료에서의 의료사고는 실수(mistake)와 오류(error)로 구분할 수 있다.

실수는 부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개인의 부주의, 혹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방사선 사진의 마킹을 잘못해 좌우를 착각한다든지, 주사제를 헷갈려 잘못 투여한다든지, 수의사의 악필로 약 조제가 잘못된다든지 하는 일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반면 오류는 진료행위 자체에 내제된 것으로, 일종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오진(misdiagnosis)인데, 진단기술이 아무리 발전하였음에도 여전히 진단 장비는 진단명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뿐이고, 그 데이터를 해석하고 전체적인 상황을 통찰하여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진료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생체는 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르다. 수의학은 불확실성 속에서 실천하는 학문이고, 때문에 누구든 100% 완벽함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진료의 영역이다.  

임상 현장에서의 이러한 실수와 오류는 자기 자신, 환자, 보호자, 동료 수의사와의 관계에서 윤리적 딜레마를 만들어낸다. 다음의 케이스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Case 1. 자신의 판독 오류

– 경마 중 발생한 왼쪽 앞다리의 파행으로 한 경주마가 당신의 병원에 내원하였다.

– 환자는 속보에서 약간의 파행을 보였고 진단목적의 신경차단술(nerve-block)을 실시하였지만, 파행이 개선되지 않았다. 여러 부위를 촬영한 방사선 사진에서도 파행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 당신은 보호자에게 말을 일주일간 쉬게 한 다음,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재검사를 해보자고 말하고는 돌려보냈다.

– 3주 후, 환자는 경마 중에 왼쪽 앞다리의 cannon bone이 부러져 쓰러졌다. 말은 결국 안락사되었고, 기수는 중증의 부상으로 입원하였다.

– 당신은 촬영했던 방사선 사진을 다시 검토했고, 왼쪽 cannon bone에 미세한 hairline fracture가 있음을 뒤늦게 발견하였다.

이 케이스는 매우 원초적인 윤리적 딜레마를 던진다. – 자신의 오진을 숨길 것인가? 아니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책임질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이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는 쪽에 도덕적 스트레스를 느낀다. 굳이 진료 상황이 아니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는 의무론적 윤리원칙과 덕 윤리(virtue ethics)적 가치관이 여러분의 도덕판단 과정에 이미 보편적으로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상황을 딜레마로 느끼고 선택을 고민하는 이유는, 말하지 않을 경우에 전혀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불이익을 공연히 진실을 말함으로써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가 확장되면, “보호자가 진실을 모르는 편이 주치의 입장에서도 편하고, 보호자도 좋은 것 아닌가?”라는 공리주의를 빙자한 변명으로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사실, 정말 그럴 수도 있다. 적당히 둘러댄 이유로 정말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도 있고, 안도감을 느끼며 ‘역시 가끔은 거짓말도 필요하군!’이라며 자신의 선택을 자찬할 수도 있다.

윤리에서는 일종의 ‘권선징악’적 세상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체감할 수 없거나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선(善)에 대한 보상은, 일부 사람들의 거짓말에 의한 당장의 이익보다 가치 없게 느껴지게끔 왜곡된다.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면, 이것이 밝혀지는 어느 순간에는 직업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짓을 말함으로써 발생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도덕적 불명예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케이스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실수를 밝히고,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케이스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이 상황은 ‘오류(error)’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수의영상진단에서 방사선 판독의 오류율은 20~30%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인의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오류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재미있게도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동일한 60장의 방사선 사진을 판독하게 한 실험에서, 20%는 상호 간 의견이 불일치했으며, 동일인에게 같은 영상을 다음날 다시 판독하게 했을 때 5~10%의 판독 결과가 바뀌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이것이 비단 영상의학만의 약점이 아닌 이유는, 심잡음의 청진과 같이 병변을 감지하고 기술하는 능력을 연구한 사례에서도 유사한 오류율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매우 드물고 미세하여 수의사 대부분이 놓칠 수 있는 병변이라면 이것을 놓치는 것이 그 수의사의 무능과 연관 지어져서는 안 된다. 심지어 그것이 흔한 양상이라 할지라도, 단 한 번의 실수로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게 엄격하다. 다만 이해 가능한 인간의 오류 범위를 벗어나 반복적이거나 윤리적 과오가 있을 때는, 직군의 신뢰도 유지와 추가적인 환자와 보호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그 사람의 능력과 행위에 관해 검증하고 규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Case 2. 동료 수의사의 실수

– 구토를 주증상으로 내원한 개

– 복강 내 종괴를 발견하고 개복수술 도중, 복강 내에서 남겨진 거즈에 의한 gossypiboma를 발견하였다.

– 거즈를 제거한 후 개는 건강을 회복하였고, 구토도 멈추었다.

– 이 개의 유일한 수술 병력은, 근처 다른 병원에서의 중성화 수술뿐이다.

방사선 판독 오류 케이스와 달리, 복강 내 거즈를 남기는 것을 오류라고 보기는 힘들다. 수술에 사용된 거즈를 완벽하게 다 수거하는 것이 비록 매우 헷갈리는 일 일지라도, 일반적으로 수술에 따른 불가항력의 오류에 복강 내 거즈를 남기는 경우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이 상황은 명백한 동료 수의사의 실수(mistake)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수를 발견한 동료 수의사들의 반응은 어떨까?

먼저 지역 병원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보호자에게 적당히 둘러대고 싶은 수의사도 있을 것이다. 반면, 보호자에게 이전 주치의의 실수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SNS에 올려 자신의 우월한 실력을 뽐내고 싶은 사람도 일부 있을 것이다.

보호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일은 앞서 살펴본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이 케이스에서의 핵심이다.

애초에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하여 동료 수의사와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문가답지 못한 태도이다. 서로 잘못을 덮어주는 것을 상호 간에 존중하는 방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무능력을 상관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서로 감싸주는 것으로 비춰질 경우, 사회는 필연적으로 전문직의 자율성을 문제 삼고 박탈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동료 간의 존중은, 이전의 주치의에게 연락해서 이 사실을 직접 알리고 자신이 보호자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환자를 치료할 것인지 상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동료 수의사 역시 자신의 실수를 알아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실수임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자신과 환자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동료가 무조건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의견이 다른 것과 실수는 구분해야 한다.

또한, 동료 수의사와의 원만한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이 케이스의 실질적 피해자가 보호자와 환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케이스에서 수의사의 실수 때문에 환자는 불필요한 수술을 하게 되었으며, 보호자는 불필요한 수술비용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 케이스에 대한 의견을 수의대의 학부생들에게 물었을 때, ‘실수한 수의사도 보호자에게 사과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라고 한 학생이 대답했었다. 그 학생은 머지않아 여러분의 동료 수의사가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케이스에서는 현재의 주치의가 이전의 주치의와 보호자에게 실수한 사실을 전해야 하는 다소 불편한 상황에 직면해야 할 책임이 주어진다. 이때 ‘이 상황을 어떻게 원만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며,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문제로 귀결된다.

‘환자 안전을 위한 국제 연맹(World Alliance for Patient Safety)’의 의장인 Liam Donaldson은 이렇게 말하였다.

“To err is human; to cover up is unforgivable.”

수의사도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어떻게 직면하는가 하는 것이다.

 

* 참고자료

Bernard E. Rollin. An Introduction to Veterinary Medical Ethics: Theory and Cases, 2nd Edition, Wiley-Blackwell, 2006.

Mullan, Siobhan, and Anne Fawcett. Veterinary ethics: Navigating tough cases. 5M Publishing, 2017.

한희진. “오진 (誤診): 의료윤리와 의료법에 선행하는 인식론 문제.” 과학철학 13.2 (2010): 7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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