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차만별 동물병원 진료비?표준수가 없앤 건 정부·진료비 통일하면 불법

담합 행위 막고자 정부가 1999년 동물병원 진료보수기준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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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사전고지제, 공시제 등 동물병원 진료비 관련 규제가 늘어날 조짐이다. 의원입법과 정부입법을 포함해 관련된 수의사법이 무려 9개나 발의되어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동물병원 진료비가 천차만별이라 문제”라며 ‘동물병원 표준수가제’를 통해 특정 진료항목의 진료비를 통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식품부 역시 지난 2016년 국민신문고를 통해 ‘동물병원 진료 표준수가체계 도입에 대한 공개토론’을 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있던 동물병원 표준수가제를 없앤 것은 정부이며, 이 때문에 동물병원이 특정 진료항목의 진료비를 통일하면 오히려 담합 행위로 처벌받는다.

지난 2009년 부산시수의사회가 반려동물 백신접종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이라며 3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던 일이 대표적이다. 수의사로서는 진료비를 맞추려고 해도 불법이라 맞출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동물병원 표준수가제(동물병원 진료보수기준)를 직접 폐지하며 자율경쟁을 유도해놓고, 이제 와서 진료비를 규제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일까?

유제범 입법조사관

6월 29일 ‘반려동물 반값진료비’ 토론회에서 진행된 유제범 입법조사관(국회입법조사처)의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1999년 동물병원 진료보수기준이 폐지된 이유를 살펴본다.

1974년 12월 수의사법 개정으로 도입된 <동물병원 진료보수기준>

1999년 2월 개정된 카르텔일괄정리법에 따라 폐지

‘동물병원 진료보수기준’은 1974년 12월 26일 수의사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됐다.

당시 수의사법과 시행규칙을 보면, 동물병원 진료비는 수의사회가 정한 뒤 농수산부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했다.

심지어, 지역적인 여건에 따라 진료보수에 차등을 둘 수 있고, 상한액과 하한액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일괄 규제를 하려는 지금보다 오히려 1974년이 더 합리적”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때 도입된 동물병원 진료보수기준은 1999년 2월 5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적용이 제외되는 부당한 공동행위 등의 정비에 관한 법률(일명 카르텔일괄정리법)’ 개정에 따라 폐지됐다.

수의사의 ‘진료보수기준’ 뿐만 아니라, 변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관세사 등 9개 전문자격의 보수와 수수료가 자유화됐다.

“동물병원 진료비가 동일해 가격경쟁이 저해되고 서비스의 질 낮아진다”며 진료보수기준 폐지

“진료보수기준 폐지하면 오히려 가격 인상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무시’

당시 국회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법률안 검토서에 따른 ‘진료보수기준’ 폐지 이유는 이렇다.

▲당시 개별법령에서 허용되고 있는 카르텔 중 상당수가 목적을 달성했거나 변질·운영되고 있어 가격경쟁을 저해하고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림.

▲경제개발기구(OECD)는 1998년 4월 ‘경성카르텔 금지 권고’를 채택하여, 각국의 경성카르텔을 규제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을 구체화하고 있어 이러한 국제적 환경에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되었음.

첫번째 이유는 ‘동물병원의 진료비가 동일하여 가격경쟁이 저해되고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므로, 진료보수기준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자율경쟁을 저해하는 쪽으로 규제를 하려는 지금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두번째 이유는 당시 국제적으로 경성카르텔을 금지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경성카르텔’이란 동종 상품을 생산하거나 같은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업자들이 가격 고정이나 생산량 제한 등을 통해 경쟁을 피하고 이윤을 확보하고자 하는 담합 행위를 말한다.

당시, 진료보수기준 폐지와 관련해 “가격의 상한선이 없어져 가격 인상을 초래하고 또 다른 독과점시장의 형성이 우려된다”는 이견도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럽에서도 ‘(표준수가제가) 자유경쟁을 제한한다’는 EU의 지적에 따라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동물병원 표준수가제가 폐지됐고, 현재 수가제가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압력을 받는 상황이다.

중국도 ‘시장의 자유경쟁을 보장한다’는 원칙 아래 동물진료 수가제가 도입되어 있지 않으며, 영국은 수가제를 아예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연구 보고서 내용).

수가제(GOT – Gebührenordnung für Tierärzte)를 운영하는 독일의 경우, 서비스의 난이도, 소요되는 시간, 출장 진료 여부, 동물의 가격, 지역별 상황, 물가, 생활 수준 등 ‘각 사례의 특정 상황’을 고려하여 수가의 3배까지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운용되고 있어, ‘일괄적인 금액을 적용하는 수가제’와 차이가 크다.

결국 ‘자율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담합 행위를 방지하는 국제적 분위기에 발맞추기 위해’ 동물병원 진료보수기준을 폐지한 것은 정부고, 동물병원들이 가격을 통일하면 과징금 처분을 받는데, ‘천차만별 동물병원 진료비’라며 수의사를 비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천차만별 동물병원 진료비?표준수가 없앤 건 정부·진료비 통일하면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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