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정확한 동물병원 진료비 공시제, 개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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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주요항목 진료비 게시의무가 1인 원장을 포함한 모든 동물병원으로 확대됐다. 각 동물병원이 게시한 금액은 전수조사를 거쳐 농림축산식품부 홈페이지에 공시된다.

지난해 수의사 2인 이상 동물병원을 대상으로 먼저 실시하면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올해 조사대상을 확대하면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위로 게시하는 비용을 조사해 통계화? 부정확하다

체중·세부분류 기준 잡아 조사해야

현행 공시의 문제 중 하나는 진료비를 게시하도록 한 항목 자체가 애매한데 있다. 가령 ‘엑스선 촬영비와 그 판독료’의 경우 O만원이라고 정해서 게시할 수 없는 동물병원이 있다. 촬영부위별로, 환자 체중별로 단가가 다양해서다.

이처럼 단가가 다양하면 O~OO만원의 범위로 명시하게 된다. 어떤 환자의 무슨 부위를 촬영할 때를 묻는 것인지 명확하지도 않고, 일단 게시한 금액보다 많이 받으면 과태료 대상이 되니 더욱 조심스럽다. 대한수의사회가 제시한 권고서식도 범위로 표기되어 있다.

이처럼 범위로 표시된 금액은 정부가 (수의사회 혹은 소비자단체를 통해) 조사하여 통계를 만들 때 장애물로 작용한다.

A동물병원의 흉부 엑스레이 촬영(판독료 포함) 비용이 소형견은 4만원, 중형견은 6만원, 대형견은 8만원이라 치자. 동물병원에는 4~8만원으로 게시했다.

그렇다면 정부 통계조사에는 몇 만원으로 반영해야 할까? 그냥 중간값인 6만원이면 되는 걸까? 실제 환자는 소형견이 더 많을텐데 단순히 중간값을 반영하는 것이 맞나?

병원마다 소형견/중형견/대형견을 나누는 kg 기준이 다르고, 어떤 병원은 아예 체중별로 단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이쯤 되면 통계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 의문에 빠진다. 본지가 지난해 11월 자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9%가 ‘공시된 동물병원 진료비가 정확하지 않은 편’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진료비를 게시·공시하라고 규제한 1개 항목이 사실은 1개가 아닌 여러 개였던 셈인데, 일단 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공시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사 방식을 개편해야 한다.

어차피 병원마다 진료항목의 세부분류가 천차만별인 상황을 일일이 고려할 수 없다. 때문에 특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가령 ‘5kg, 5년령, 중성화된 수컷 반려견’을 모델로 세우고 가상의 모델환자에 실시했을 때의 단가를 조사하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면 세부분류의 편차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사람도 병의원의 비급여진료비를 조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다. 동물병원과 달리 조사항목 자체가 세부적인데다, 사람은 통상 체중별로 의료비를 달리 책정하지 않으니 ‘일반 성인’이라는 기준이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환자 측의 기준과 함께 조사항목의 기준도 필요하다. 엑스레이 비용을 공시제를 위해 조사한다면 흉부면 흉부, 복부면 복부로 통일해야 한다.

진찰료도 일반적인 진료에 따라붙는 진찰료와 행동의학적 진료의 진찰료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진료의 내용이 크게 다르다. 제대로 조사하려면 후자는 제외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가상의 환자를 설정해 조사하여 자료를 공개하고, 체중이나 다른 요인에 의해 단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고지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공시제 데이터의 최저가로 운영하겠다는 공공동물병원

공시 항목에서 최저비용·최고비용 삭제해야

지난 3월 5일 김포시 공공동물병원 관련 조례를 심의한 김포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에서 김포시 측은 ‘공시된 진료비의 최저가로 책정하겠다’고 밝혔다.

시민 대상으로 장사할 것도 아닌데, 이미 최저가를 제시한 민간동물병원이 있으니 가능한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이후 지역수의사회와 단가를 논의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진료비 공시제의 나비효과가 현실로 나타나는데 1년도 안 걸린 셈이다.

지난해 조사에서 각 항목의 최저비용과 최고비용 간 격차는 평균 25배에 달했다. 재진료(개)나 입원비(고양이)는 50배에 이르렀다. 전혀 다른 내용으로 책정된 진료비를 응답한 것이 섞여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이처럼 조사의 신뢰도에 의문이 있는 상황에서 최저비용과 최고비용을 공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보호자의 알 권리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최저비용보다 비싸거나 최고비용보다 싼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오히려 동물병원비 격차가 크다는 부정적인 인식만 강화된다.

동물병원 진료비 공시제에서 최저비용·최고비용은 공개하지 않도록 개편해야 한다. 평균·중간비용만으로도 공시제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충분하다. 정 진료비의 분포를 보여주고 싶다면 상·하위 25% 값을 활용하는 등의 방법이 실제의 편차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다.

심평원이 공시하는 사람의 비급여진료비도 지역별 중간금액과 평균금액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기자수첩] 부정확한 동물병원 진료비 공시제, 개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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