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수의 고양이 이야기②] 느린 게 빨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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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한 달의 시간, 고양이와의 로맨스는 시작했다면 어떠했는가?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다음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필자의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고양이와 함께 한 시간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진수의 고양이 이야기’의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Being slow is to go fast”, 다시 말해 “’느린 게 빨리 가는 것이다”라는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고양이와 친해지는 과정에서는 토끼보다는 발걸음이 느린 ‘거북이식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아이들과 적응하는 입양 초기이자, 수의사에게는 동물병원에 내원한 아이들을 진료하기 위해 처음 대면했을 때에 해당된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지금까지는 고양이를 진료하기 위해 수의사에게 필요한 중요 기술 중 하나가 바로 속전속결의 치고 빠지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고정 관념을 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 없이 고양이를 대할 수 밖에 없는 수의사들은 아마 ‘빠른 접근’이 주는 폐해를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동물병원에서 밀려 있는 진료대기에 쫓겨 채혈이나 검사를 서두르다가, 어느 순간 아이들이 사나운 ‘호냥이’로 탈바꿈하는 경우들 말이다.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는 아무리 시간과 공을 들여도 다시 차분해지게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고양이 친화적인 진료의 핵심 중 하나가 ‘속전속결이 아닌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조금 더 강조하자면, ‘아주 아주 아주’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수없이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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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거북이식 접근의 필요성을 고양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면 우선 네오포빅(Neophobic)이라는 말을 이해하여야 한다.

새로움을 뜻하는 접두사(neo)에 공포증(phobia)이라는 단어를 조합한 네오포빅은 말그대로 ‘새로운 것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사냥꾼이지만 피식자이기도 한 고양이는 영역을 개척하고 보존하려는 본능 이외에도 포식자나 침입자를 경계하려는 ‘긴장감’을 가진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고양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처해진 새로운 장소와 냄새, 소리 등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때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처럼 ‘네오포빅’한 고양이가 동물병원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점진적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

고양이 입장에서 동물병원이라는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냄새, 새로운 소리에 적응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이를 돕기 위해 우선 동물병원이 갖춰야 할 요건이 있다.

고양이에 대한 거북이식 접근이 이뤄지는 공간은 병원의 대기실과 진료실이다. 때문에 가능하다면 고양이만 대기할 수 있는 공간과 최소 1개 이상의 고양이 전용 진료실을 마련하는 방안을 권하고 싶다.

그래야만 고양이와 보호자에게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줄 수 있고 수의사도 쫓기는 진료 스케줄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다.

보호자 입장에서도 고양이의 적응과정을 고려한다면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내원하여 절대 과정을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진료를 의뢰하는 보호자와 진료를 행하는 수의사들이 ‘네오포빅’한 고양이를 이해한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에티켓인 것이다.

 

고양이는 알면 알수록,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차갑고 도도한 여성으로 느껴진다. 많은 공을 들여야 냄새 한번 맡아주는 반면, 한번 토라지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쁜 여자, 나쁜 남자의 매력처럼 ‘나쁜 고양이’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바로 이런 게 ‘고양이다움’이 아닐까.

다음 시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네오포빅한 고양이의 거북이 진료가 이루어지는 병원의 모습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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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의 고양이 이야기②] 느린 게 빨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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