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처방제 유명무실 사실로..돼지농장 76%가 처방전 없이 항생제 받는다

검역본부·한국돼지수의사회, 처방제 도입 12년만 첫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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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동물용 항생제를 가장 많이 쓰는 동물종은 돼지다. 동물용 항생제는 반드시 수의사의 진료를 거쳐 필요한 경우에만 쓰도록 ‘수의사처방제’가 도입되어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시각은 사실로 드러났다. 수의사처방제 도입 12년만에 진행된 첫 실태조사에서다.

한국돼지수의사회(회장 최종영)는 11월 27일(목) 대전 KW컨벤션에서 열린 2025 컨퍼런스에서 검역본부 의뢰로 진행한 ‘양돈 항생제 수의사 처방 실태조사 및 개선안 제시’ 연구 결과 일부를 공개했다.

최종영 회장은 “우리나라는 중국을 제외하면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동물용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수의사처방제 도입과 항생제 전(全)성분 처방대상 지정 이후 처음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국내 돼지농장 150개소를 대상으로 항생제 처방 실태를 분석하고, 관련 설문조사를 벌였다.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eVET)의 처방 데이터도 추출했다.

조사대상은 다양한 규모로 구성됐다. 1만두 이상의 대형 농장 13곳, 2천두 이상의 소형 농장 50곳이 포함됐다. 일관사육 농장이 62%로 가장 많았고, 비육전문(17%), 멀티사이트(12%), 자돈판매(9%) 농장 등 운영방식도 다양했다.

조사 결과 대다수의 농장이 수의사 진료·처방과 무관하게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항생제 구입 시 수의사의 진료 후 구입한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수의사 진료와 관계없이 구입(14%)하거나, 필요하면 (동물용의약품판매업소에) 전화로 주문한다(45%)는 응답이 더 많았다. 농장 3곳 중 2곳은 여전히 진료 없이 항생제를 쓴다는 얘기다.

항생제를 선택하는 방법에서도 ‘수의사 처방’은 36%에 불과했다. 진료 후 구입한다는 응답과 비슷한 수치인 셈이다. 반면 치료경험이나 관행적 사용에 기대는 비율이 67%에 달했다.

여전히 훨씬 많은 돼지농장이 자가진료에 의존해 수의사 진료 없이 항생제를 쓰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처방전이 발행된 경우에도 판매행위와 실질적으로 연계되지 못한다는 점도 드러났다. 동물병원에서 바로 항생제를 공급받아 별도의 처방전이 필요없는 16개 농장을 제외한 134개 농장 중 76%가 동물용의약품판매업소에 처방전을 주지 않고도 약품이 농장에 도착한다고 응답했다.

이들 농장에 수의사처방전 발행은 쓸모없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일단 약부터 팔고, 판매업소와 결탁한 수의사의 명의로 그에 맞춘 처방전을 만들어두는 방식으로 변질됐을 가능성도 높다.

2024년도 국가 항생제 사용 및 내성 모니터링 보고서 중 발췌

이처럼 수의사처방제가 현장에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관련 불법행위를 단속하지도 않다 보니 항생제 판매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식약처와 검역본부가 발간한 ‘2024년도 국가 항생제 사용 및 내성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가축 및 반려동물에 판매된 항생제는 853톤으로 집계됐다.

이중 돼지가 595.2톤으로 70%를 차지한다. 전년 대비 52톤이 늘었고, 2015년에 대비해서도 25%나 증가했다.

최종영 회장은 수의사 진료도 없고, 처방전도 없는 불법적인 항생제 유통에 대한 관리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의사 처방까지는 전자기록이 의무화된 반면 판매단계에는 아직 의무화되지 않아 농장별로 어떤 항생제가 얼마나 판매됐는지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도 수의사처방제의 도입 취지에 맞게 항생제를 마련한 농장은 30% 안팎에 그쳤는데, 판매기록 전산화가 되지 않은 현행 관리체계에서 나머지 70%가량의 농장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라는 것이다.

최종영 회장은 “이번 조사에서 콜리스틴 등 최우선 중요항생제의 처방 빈도가 상당히 높은 점도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처방·판매·사용기록이 한 곳으로 모두 모이는 덴마크의 VetStat 시스템과 같이 국내에도 동물용 항생제 판매기록을 전산화하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의사처방제 유명무실 사실로..돼지농장 76%가 처방전 없이 항생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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