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지역 길고양이 TNR 보류 움직임‥해법 마련 서둘러야

체중 문제 공감대 있지만 고시 개정엔 이견..동물병원 외면하게 만드는 환경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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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의사회 지부장협의회가 지난 11일 ‘고양이 중성화사업 실시요령(농림축산식품부 고시)’ 개정을 공식 요구하고 보이콧까지 시사하면서, 실제로 TNR 사업 수행이 중단되거나 계약에 차질을 빚은 지역이 나타나고 있다.

지부장협의회가 지적한 체중, 수유묘 관련 금지 규정을 두고 해법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체중 문제에 대해서는 2kg에 인접한 건강한 개체의 중성화는 가능해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확인된다. 다만 고시 개정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도 엿보인다.

결국 규제보다는 누가 어떻게 TNR 사업을 수행하느냐가 핵심이지만, 일선 동물병원이 점차 외면하게 만드는 환경은 문제로 지목된다.

지부장협의회의 요구와 함께 사업자 선정방식과 시기, 백신접종 등 다른 현안도 함께 정비해야 한다는 제안도 거듭됐다.

‘1.8kg 건강한 개체는 중성화해야’ 공감대

수의사 판단 여지 줘야 vs 자의적 해석 확대 우려

지부장협의회의 첫 번째 요구는 몸무게 2kg 미만의 중성화수술을 금지한 규정의 수정 또는 삭제다.

국제적으로도 체중만으로 TNR 여부를 판단하는 사례가 없고, 2kg 미만 개체의 중성화를 원천적으로 금지할 수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2kg에 약간 미치지 못하더라도 건강상태가 양호하고 수술 후 자생능력이 있는 개체는 수의사의 판단하에 중성화하는 것이 TNR 목적에 더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TNR을 시행하는 지자체, TNR에 참여하는 수의사, 지부수의사회 등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에 대한 공감대는 분명하다. 1.8~1.9kg의 건강한 개체와 2.1kg 개체를 달리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길고양이 TNR 표준 지침은 이미 체중이 2kg에 가까우면서 넘지 않는 경우도 건강상태, 주변환경을 확인해 중성화수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 표준 지침도 서울시, 서울시수의사회, 동물보호단체의 의견을 종합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하지만 체중 관련 조항에 대한 의견은 조금 엇갈렸다. 현실론과 원칙론의 시각차로 풀이된다.

서울시 TNR 도입시기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김재영 국경없는수의사회 대표는 2kg 인근의 개체를 수의사 판단에 따라 중성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2kg 이상의 길고양이만 중성화사업의 대상으로 규정한 현행 고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길고양이의 성장 정도(체중)에 대한 원칙이 없으면, 1.2kg 등 너무 어린 개체에게 위험한 중성화수술을 해도 막을 수 없는 자의적 규정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재영 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는 수의사의 판단 여지를 주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2kg 미만 중성화를 금지하는) 현행 규정 하에서도 너무 어린 것으로 보이는 개체를 수술했다가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보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TNR 사업이 제대로 정비될 때까지는 당분간 체중 원칙을 두는 편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사고 위험성 문제는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지자체 TNR 관계자는 “지역별로 과도기적인 문제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사고 문제는) 시민단체와 계속 논의하고, 행정조직을 강화하고, APMS에 정보를 공개하면서 문제를 줄여 나갈 수 있다. (현행 고시처럼) 무조건 하지 말라는 식이면 TNR을 제대로 실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준서 대구시수의사회장도 “의료행위(수술)에 대한 판단은 수의사가 해야 한다”며 원칙을 강조했다.

한 개체를 여러 번 포획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포획된 개체는 가급적 예외없이 중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거듭됐다.

길고양이의 번식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큰 틀에서 길고양이의 복지를 높이는 효율적 방법이라는 것이다.

 

누가 하느냐가 더 중요한데..업자만 남는다

재능기부 강요 받으며 민원 시달리는 동물병원 ‘외면’

캣맘, TNR 감시자가 아닌 주체로 참여해야

농식품부 고시에 체중 관련 제한이 있든 없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1kg 내외의 어린 길고양이에 중성화수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누가 어떻게 TNR 사업을 수행하는지가 핵심이다.

취재 과정에서 ‘길고양이의 안전보다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는 업자들이 TNR을 맡으면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지적이 거듭됐다. 문제는 그러한 ‘업자’ 동물병원만 남게 만드는 환경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TNR 단가는 당초 마리당 15만원에서 올해 20만원선으로 증액됐다. 포획·방사에 5만원 내외, 수술에 15만원 내외의 비용이 책정된다.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실성이 떨어진다. 길고양이를 제대로 수술·관리하려면 수의사의 재능기부가 강요되는 상황이다.

그나마도 매년 최저가입찰 위주로 사업자를 선정하다 보니 금액은 더 부족해진다.

캣맘들의 민원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도 일선 동물병원이 TNR을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자칫 논란에 휩싸이면 민원폭탄, 여론재판으로 흐르고 동물병원 본업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지자체도 동물병원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김재영 원장은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참여했던 실력 있는 동물병원도 캣맘의 민원과 압박에 시달리며 점차 TNR을 외면한다. 문제가 있어도 보완해가면서 신뢰를 만들어야 하는데 조금만 의심을 사도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면서 “이러한 경향은 궁극적으로 TNR의 실패로 이어진다. 다 떠나고 업자만 남는다. 저조차도 군집TNR 봉사활동은 하지만, 지자체 TNR은 4년여간 했다가 관둔 지 오래”라고 말했다.

지자체 TNR 관계자는 “애초에 괜찮은 동물병원은 TNR 사업에 지원하지 않는다. 캣맘들의 민원에 너무 시달린다”면서 “아예 맡아줄 병원이 없어 지자체 담당자가 동물병원을 섭외하기 위해 부탁해야 할 판인 곳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캣맘이 길고양이 TNR의 감시자가 아닌 주체로서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대도시 길고양이 대부분이 (캣맘이 주는) 사료를 먹는다. 먹이가 풍부하면 그만큼 번식도 활발해진다”며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캣맘이 포획·봉사를 맡으면 체중 관련 사고도 막을 수 있고, 한정된 예산 안에서 더 많은 개체를 중성화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에서 진행된 길고양이 집중 TNR
(사진 : 경기도)

사업자선정위원회 늘리고, 계약·시행시기 앞당겨야

TNR 개체에 백신접종도 수의사 판단에 맡겨야

군집TNR 확대 필요

지부장협의회가 공식적으로 거론한 문제는 체중, 수유묘 관련 제한 조항을 삭제하고 군집TNR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기왕 관련 정책 개편을 논의할 때 현장에서 느끼는 다른 개선점들을 함께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재과정에 만난 관계자들 대부분 같은 개선과제를 제시했다.

이들은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동물병원이 TNR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계약구조를 바꾸자고 입을 모았다. 최저가 입찰 대신 사업자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심사하는 형태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각 자치구에 사업자선정위원회 구성을 권고했다. 지난해에는 25개 자치구 중 7곳에서 구성되는데 그쳤지만 향후 점차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1~2월에도 TNR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업자 계약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TNR은 1~2월에는 사업자를 선정하고 3월부터 본격화되는데, 3월이면 이미 대부분의 길고양이가 임신해 있거나 새끼고양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한다.

겨울이라도 일기예보를 살펴가며 2월에는 중성화를 집중적으로 실시해야 개체수 조절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서울 일부 자치구와 대전 등에서는 전년도 12월에 계약작업을 마치고 연초부터 TNR을 실시하고 있다. 지부수의사회가 TNR을 관리하는 대구는 2년짜리 계약을 맺어 연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중성화수술을 실시한 개체를 방사하기 전에 백신을 접종하라는 사업지침도 문제로 지목됐다. 이미 포획과 수술로 큰 스트레스를 받은 개체에게 백신까지 접종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박준서 회장은 “TNR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 동물병원에서 백신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다”면서 “한 쪽에서는 위험하다며 2kg 미만 개체는 수술하지 말라고 하면서, 한 쪽에서는 위험한 백신접종을 강제한다. 앞뒤가 안 맞는다”고 꼬집었다.

때문에 일괄적으로 백신을 강제하기 보다, 수의사 판단 하에 문제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개체에만 접종하는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현재는 일부 지자체에서 별도 사업으로 시범 운영되고 있는 군집TNR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길고양이 개체군의 75% 이상을 중성화해야 개체 수 조절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영 원장은 “민원해결용도로만 치우치면 개체 수 조절 효과는 없고 혈세를 낭비하는데 그치는 셈”이라며 “물론 민원해결도 외면할 수는 없으니 예산을 분배하더라도, 매년 특정 지역의 군집TNR을 병행하는 형태로 진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부 지역 길고양이 TNR 보류 움직임‥해법 마련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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