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안전성 실증 규제 없이 ODM·마케팅에 의존한 펫푸드, 발전 어렵다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원인 규명 아직..멜라민 파동 이후에도 안전성 관리체계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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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포럼이 10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2024년도 제1차 포럼을 열고 펫푸드 제도개선과 선진화 방안을 모색했다.

한국수의영양학회(회장 양철호)와 함께 연 이날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펫푸드의 기능성과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제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만병통치약식 과대광고를 줄이기 위해 기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최소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펫푸드 안전성에 대한 모니터링과 리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유효성 검증 없이 의약품인양 광고

검증체계 없는 낮은 진입장벽이 펫푸드 산업 발목 잡는다

이날 발제에 나선 박희명 건국대 교수는 “국내 펫푸드에서는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만병통치약처럼 말하는 과대광고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효능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고 인증받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성 없이도 누구나 ODM만 하면 쉽게 펫푸드 제품을 출시할 수 있고 그럴 듯한 마케팅에만 열을 올리는 국내 환경을 꼬집으면서다. 펫푸드 업계의 낮은 진입 장벽이 오히려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양축용 사료에 초점을 맞춘 현행 사료관리법의 단미·배합사료 분류에서 벗어나 펫푸드를 일반·기능성·처방사료로 구분하고, 기능성·처방사료가 효능을 주장하기 위해 거쳐야 할 검증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교수는 “대충 만들어 팔다가 사고라도 나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현재 형태로는 펫푸드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면서 “수의사들도 실증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는 펫푸드를 더 우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창민 전남대 교수도 “사람의 건강기능식품에는 기능을 표현하기 위해 거쳐야 할 실험 기준이 있는데 반려동물 사료에는 없다”면서 기능성·처방 사료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동물병원협회 오이세 사무총장은 “사료를 추천해달라는 병원 고객의 요청이 많지만, 어떤 사료를 권할지 판단할 가이드도 없다. 가령 관절에 좋다는 사료인데 정작 관련 성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며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적절한 성분표시에 대한 규정이 정비되면 수의사뿐만 아니라 보호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희명 건국대 교수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원인 아직 모르지만..

2000년대 멜라민 파동 이후에도 안전성 관리체계 부재

이날 포럼은 최근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료의 안전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어졌다.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발생을 두고 펫푸드 문제를 의심하는 시각이 있지만, 아직 유력한 원인은 규명되지 못했다.

포럼 개최 후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사료 검사결과에서도 별다른 유해물질과 병원체가 검출되지 않았다(본지 2024년 5월 12일자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의심 사료 검사 결과, 모두 ‘적합’ 참고).

이날 전문가들은 2007년 멜라민 사료 파동을 거듭 거론했다. 2000년대에 원인 모를 신장 문제로 폐사하는 반려동물이 속출했고, 뒤늦게 멜라민이 첨가된 해외 사료가 문제로 지목된 바 있다. 초기에는 농약 성분이나 곰팡이 독소 등을 의심했지만 멜라민을 원인 물질로 찾아내는데 시간이 걸렸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은 “대한수의사회도 따로 사료분석을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멜라민 사례처럼)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라면 원인 규명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수의영양학회 오원석 이사는 멜라민 사료 파동 이후로도 국내에 펫푸드 안전을 위한 대응체계가 마련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오원석 이사는 “2007년 멜라민 사건 이후 일본, 미국, 유럽 등은 대응을 체계화했지만 국내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컨트롤 타워가 없다”고 꼬집었다.

박희명 교수는 “(사료 안전성과 관련해) 과거에 주로 관심을 뒀던 농약이나 중금속 등은 잘 관리되는 편”이라면서도 “반려동물 사료에 과거보다 다양한 재료와 성분을 사용하는데 이들이 체내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은 잘 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펫푸드의 안전성 문제가 의심될 때 선제적으로 잠정적인 판매중지나 리콜 등을 판단·실행할 주체가 없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펫푸드 급여시험 인프라 필요성 지적

이날 포럼에서는 펫푸드의 기능성·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급여시험(feeding test)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거듭됐다. 로얄캐닌·힐스 등 글로벌 기업은 자체적인 연구설비에서 수백 마리의 반려동물을 기르며 면밀하게 분석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400억원을 투입해 반려동물 용품 개발을 실증할 ‘원-웰페어 밸리’를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달 충청남도를 사업대상자로 확정했다.

박희명 교수는 반려동물 영양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개선 필요성도 강조했다. 임상영양학에 대한 수의대 학부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수의영양학전문의 제도 도입, 수의영양학 정보지 정기 발간 등을 제언했다.

오원석 이사는 “ODM, OEM으로 만드는 사료는 엄청 많은데 영양 전문가는 별로 없다. 수의대에도 영양학 교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기능성·안전성 실증 규제 없이 ODM·마케팅에 의존한 펫푸드, 발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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