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 A to Z] Profess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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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학의 다양한 분야 및 이슈에 대한 수의대생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8기가 “수의학 A to Z”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의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미리 학생들로부터 공모받은 알파벳에 따른 키워드를 정해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A부터 Z 키워드 기사가 계속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열여섯 번째 키워드 알파벳 P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입니다.

Life is short, Art is long

전설의 록 밴드 퀸(Queen)의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가 개봉한 후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그들의 음악에 다시 새로운 세대가 더불어 열광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영원하다! (Life is short, Art is long)” 그런데 이 유명한 말을 남긴 사람은 바로 고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입니다. 아니 의사가 갑자기 예술이라니요?

이 문장은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집 서문에 실린 문장입니다. 사실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영원한 예술혼을 예찬하기 위한 말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틴어 ‘아르스(ars)’에 어원을 두고 있는 영어단어 ‘Art’는 넓은 의미에서는 예술과 기술이라는 의미를 모두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미술, 음악 등의 창작활동을 이르는 좁은 의미의 예술로 오역되는 바람에 위와 같은 의미의 명언으로 흔히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자임을 고려했을 때 ‘의술’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전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은 짧고, 의술(art)의 길은 멀다. 기회는 한순간이며, 경험만 믿는 것은 위험하다. 좋은 판단력은 언제나 어렵다. 따라서 의사는 스스로 옳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수행원, 외부인 모두가 협조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위의 문장은 앞으로 설명해 드릴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관통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이란?

수의대생으로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학생과 대학원생, 수의사 선생님 심지어는 교수님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평소보다 목소리를 한 톤 정도 높이고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 못 하는 동물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때입니다. “아이구 우리 테리 아팠쪙? 쪼금만 참아!” 때로는 심지어 혀가 조금 짧아진 말투로 말입니다(?).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다 못해 수의사를 직업으로 선택하고, 앞으로도 평생 동물을 생각하며 일할 각오가 되어있는 동기들과 선배들의 이런 귀여운 모습은 누구든 절로 웃음 짓게 만들 만한 진풍경입니다.

수의사는 동물의 건강과 공중보건을 담당하는 전문직으로서 단순히 동물의 치료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족 같은 동물의 고통을 지켜보는 보호자의 슬픔과 두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동물과 관련된 모든 난제에 있어 정의롭고 지혜롭기를 기대받습니다. 어떤 보호자도 자신의 가족 같은 반려동물을 다소 과격한 말과 행동으로 대하는 수의사에게 맡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설령 치료 실력이 준수하고, 그 언행이 동물에게 실제로 해를 입히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동물에 별로 관심이 없으니, 수술을 잘하는 거로, 또는 연구만 잘하는 거로도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말할 수 있지만, 수의사는 그저 학문적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보통 전문가가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전문가만의 특별한 능력과 소양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 요구되지만, 이 영역은 눈에 쉽게 보이지 않고 이론으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는 특성 때문에 그 필요성이 쉽게 간과되곤 합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입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은 ‘Professional’(전문직, 전문직의)에 접미사 ‘-ism’(특성, -주의) 가 붙어 한국어로는 ‘전문직업성’, ‘전문가주의’, ‘전문가정신’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 중에서 ‘전문직업성’으로 합의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에서 전문직업성은 “한 직업이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전문직으로 인정받도록 만드는 속성”이라고 정의됩니다. 그리고 ‘한 직업이 전문화(professionalization) 과정에서 보여주는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며, 직업적 태도 및 직업 가치를 포함하는 직업의식’을 뜻하기도 합니다.

구글에 ‘수의사’ 이미지를 검색한 결과. 대부분이 흰 가운을 입고 동물과 함께 웃고 있는 모습입니다.

수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Veterinary Professionalism)은 ‘전문지식, 기술, 의사소통, 윤리관, 사명감 등 사회가 요구하는 수의사로서 역량을 갖추고 신뢰를 구축하려는 바람직한 수의사의 태도와 행동의 총체’를 이르는 말입니다. ‘가치관∙태도∙역량 등 바람직한 수의사가 행하는 모든 직업적 행위에 내재되어 있는 속성’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더 짧게는 ‘수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은 곧 수의사다움’이라고 정의해도 뜻이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는 의학 프로페셔널리즘(Medical Professionalism)이라는 개념이 1990년대 이후 의료윤리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며 주요 의제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일부 의사들의 물질주의적 사고방식과 윤리적 해이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의학 본연의 가치가 퇴색되었음을 자각한 의사들은 개인이 알아서 개발해야 하는 직업적 덕목 정도로 치부되어 왔던 바람직한 의사의 가치(value), 행동(behavior), 태도(attitude) 등과 같은 무언의 영역을 이 개념에 한데 담아 학문의 한 영역으로 포함하고 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론과 정의가 쏟아지고, 관련 교육과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의 기원, 전문직과 사회계약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면, 수의사집단과 사회를 경계 짓는 울타리, 면허제도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들 면허제도를 더러 ‘전문직 집단과 사회 사이의 계약서’라고 설명합니다. 사회는 전문직에게 면허제도를 통해 전문가에게 ‘독점권’과 ‘자율권’이라는 특권을 부여합니다. 여기서 오해해선 안 될 부분은, 특권이라고 해서 화려하게 살 권리를 주기 위함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특권은 제도적인 보호막을 쳐줌으로써 ‘수의사답게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보장해주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면허를 통해 전문가의 수를 조절하여 시장경쟁으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함으로써 전문가들이 생명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어 경제적인 요인이 끼어드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자율권을 보장함으로써 문외한의 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권위를 갖출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이 그들의 결정을 믿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처럼 사회가 전문직 집단이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 대신에, 전문직 사회는 책무 또한 부여받습니다. 이 책무는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1. 공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믿을 만하며, 책임감 있고 통찰력 있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 2. 구성원을 훈련시키고, 자격기준을 적절히 설정하여 노동에 유입하는 자들을 적절히 거를 것. 3. 윤리강령과 규범을 지킬 것을 약속하며, 이 약속을 어기는 구성원을 선도하거나 제명하며 노동의 질을 유지할 것.

이 책무를 한 명이라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집단 전체가 신뢰를 잃게 되고 계약의 내용은 변동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프로페셔널리즘 기원을 이해하는 것의 첫 출발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수의사다움’을 돕기 위한 면허제도라는 울타리는 하드웨어, 수의사다움을 실천하는 각각의 수의사들은 소프트웨어가 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비로소 수의사 사회가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가 완성될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히포크라테스의 말, “따라서 의사는 스스로 옳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환자와 수행원, 외부인 모두가 협조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라는 말을 다시 짚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사회계약의 맥락을 이해하면 면허는 ‘너는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다. 앞으로 평생 공부하며 살겠다 맹세하라’며 양어깨를 칼로 두드리는 것과 가까운 의미인 것 같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의 속성

결국, 수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 즉 ‘수의사다움’을 이루는 속성들을 밝히는 일은, 수의사는 왜 존재하는가?”, “수의사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가치는 무엇이며, 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이 집단은 중요한 권한을 맡길 수 있을 만큼 믿음직한 자들인가?”, “수의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들에 대한 답이 될 것입니다.

이런 질문들은 당장 들어도 추상적이며, 몇 마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내놓는 답변이 다를 수 있습니다. 태도와 가치와 같은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에, 어쩌면 명확히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성을 규명하려고 하는 것은 무언의 영역을 담론화하고, 이 질문들에 대해 공통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도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아주 많은 형태로 프로페셔널리즘을 이루는 속성들이 개념화되었지만, 여전히 하나의 통일된 개념은 없습니다. 전문직업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라서 탐구의 목적과 속성을 채택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전문직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국가별∙시대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전문직업성 또한 변할 수 있습니다.

의학 전문직업성 개념화의 예를 두 가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예로, Arnold는 전문직업성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신전처럼 생긴 모형을 제시합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임상수행능력(Clinical Competence, Knowledge of Medicine), 의사소통기술(Communication Skill), 윤리적∙법적 이해(Ethical and Legal Understanding)를 주춧돌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탁월함(Excellence), 휴머니즘(Humanism), 책임감(Accountability), 이타심(Altruism)이라는 태도의 가치를 세움으로써 프로페셔널리즘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황은영, 양은배. 2010. 의학 직업전문성의 특성과 실천원리

그리고 ‘의학 전문직업성 프로젝트 2002(Medical Professionalism Project 2002)’에서는 ▲환자의 복지, ▲환자의 자율성, ▲사회적 공평성이라는 3원칙과 원칙을 수행하기 위한 평생교육, 정직,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 등 열 개의 책무를 제시했습니다.

수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의 개념 정립을 위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2010년 이후). 그래서인지 수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 구성요소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는 많지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서울대학교 천명선 수의인문사회학 교수님께서 자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2011 대한수의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 ‘수의예과생을 위한 프로페셔널리즘 교육’).

이 연구는 수의전문직업성의 핵심요소를 제시하고, 핵심요소를 충족하기 위해 수의사의 전문직업성 역량을 지식, 기술, 행동의 세 가지 층위로 나누어 각 영역에 해당하는 세부 요소를 분류했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 교육

위와 같은 역량들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걸까요? 프로페셔널리즘은 배움의 장소도 어디든 될 수 있으며, 배움의 방법도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강의실 밖에서

이미 많은 수의대생이 학교 밖에서 스스로 진정한 수의사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방학마다 현장 실습을 떠나며 여러 분야의 수의사 업무를 직접 경험해보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수의사들의 삶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동물의료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휴일에도 동물들을 위해 봉사하는 선배 수의사들을 보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반대로 선배 수의사가 학생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며 다시금 초심을 되새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수의학이나 과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가 좋은 수의사로서 자질을 갖추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문학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직접 경험해볼 수 없는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수의사가 아닌, 다른 직종의 사람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프로페셔널리즘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가르친다 하더라도 어떻게 가르칠 것이며, 명확한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일도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개인이 노력해야 할 부분 아닐까? 과연 강제하는 게 맞을까?’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임상 실습시간의 부족을 통감하고 있는 일부 학생들은 “나는 윤리쯤이야 잘 지킬 자신 있고 수의사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요상한 화법과목 하나 추가하기 전에 실습 하나 더 합시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수의사를 둘러싼 난제들은 대개 답이 없기에 명시적인 성격이 강한 정규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전국 수의과대학의 예과 교육과정에서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개념은 생소합니다. ‘수의윤리학’, ‘동물복지학’, ‘수의학개론’, 또는 화법 및 작문과 같은 교양과목이 다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 학기, 한 과목만으로 위에서 언급한 기술과 태도가 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일방적인 강의식 교육은, ‘수의사는 왜 존재하는가?’, ‘동물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전문직으로서 수의사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신뢰의 뿌리가 되는 윤리·동물복지 과목이 여전히 필수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더 이상 사소한 문제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가르치기 어려운 일이라면 스스로 깨우치기는 더더욱 어렵고 현실성 없는 일일 것입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은 몇몇 깨어 있는 사람만으로 달성할 수 없습니다. 한 명이라도 책무를 어긴다면, 수의사집단 전체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때문입니다.

모든 수의대생이 능동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학교 내에 대화의 장을 마련하길 바라봅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은 곧 대화하는 문화

작년 가을,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수의대생 100명에게 물었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전국 10개 대학의 수의대생 100명에게 “사나운 보호자와 착한 댕댕이 vs ”착한 보호자와 사나운 댕댕이”, “본인은 어떤 수의사가 되고 싶은가?” 등등 가볍고 재미있는 분위기에서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영상의 재미를 위해 인터뷰 답변을 모두 담을 수는 없었지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재밌는 대답을 여러 개 늘어놓는 친구도 있고, 짧은 답변에서도 때 묻은 고민의 흔적이 전해져 오기도 했습니다. 답변의 내용이 어땠건 간에, 모두 공통적으로 수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엿보여 저도 덩달아 많은 다짐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첫 번째 전공 시간에 수의사는 동물의 편에 설지, 보호자의 편에 설지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순간들이 많다고 말씀하셨던 게 마음에 와닿았어요.”라는 갓 입학한 예과 1학년 친구의 대답, 그리고 “동물을 위한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지금은 인간을 위한 직업 같아요.”라는 선배의 대답. “흔히 사람들은 수의대생이 당연히 동물을 좋아할 거라고 하잖아요? 틀렸어요. 더 좋아해요!”라는 재미있는 대답. 국가시험을 앞두고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는 본과 4학년.

아마 대부분의 수의대생과 수의사들이 공감할 만한 말들인 것 같습니다. 설령 표면적인 명제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그 문장 너머에는 차마 말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과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는 점을 헤아릴 수 있을 겁니다. 수의대를 입학했을 때의 설렘부터, 모두 한 번쯤은 겪었을 고뇌의 순간까지 기억 속을 스쳐 지나며,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어’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회고하며,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어떤 수의사가 되어야 할지,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떨지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질 수도 있으며, 그리고 이 외의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맥락에서 자신만의 배움을 창출해낼 수도 있습니다.

수의대생들은 6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으며 동물과 수의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두고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밥을 먹을 때, 술 먹을 때, 여행을 갈 때, 영화나 문학, 음악을 감상할 때, 일상 속에서도 말입니다.

그런 특별한 문화는 모두 각각의 학생들이 진정한 전문가로 자라나는 과정에 포함되고, 그 자체로 수의사 사회가 가진 특별한 ‘프로페셔널리즘’이며, 수의사라는 사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프로페셔널리즘의 개념을 이해하고 나면 수의대생들에게 학교는 더더욱 중요하고, 대체 불가능하며, 소중한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학교에 가서 동기들과 교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 교육에 있어 재미있는 점은 누구에게나 ‘스승’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점입니다. 나이, 경력, 지위에 상관없이 수의사 사회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수의사다움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깨달음을 줄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배움의 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새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모두 기억하고, 보다 건강한 대화가 많은 수의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물과 함께하는 수의사에게 주어진 세계는 복잡하고 어려우며, 과학, 인문학, 철학, 예술 등 다채로운 분야가 한데 어우러진 매력적인 세계 같습니다. 서로를 마주 보며 광활한 세계를 함께 여행하기를 응원합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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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Curriculum Definition (www.edglossary.org)

수의사 70% `월 1회 이상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한다` https://www.dailyvet.co.kr/news/association/108339

[수의학 A to Z] Profess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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