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투더퓨처:이민 수의사①] PAVE로 도전 시작한 김명찬·정현선 수의사


35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Vet to the Future』

여기 두 명의 수의사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길을 꽤 걸어왔습니다.

먼저 길을 걸어온 수의사는 뒤를 돌아보며 말합니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풍경을 보았다고.

이제 출발하는 수의사는 그 발자국을 따라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만의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Vet to the Future』는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먼저 걸어간 수의사에게서는 길 위에서 얻은 지혜를, 이제 길을 나서는 수의사에게서는 앞으로의 미래를 듣습니다.

경험과 가능성이 교차하는 그 길 위의 이야기를, 13기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전합니다.

30년 전, 한 한국 수의사는 IMF 환율 폭등 속에서 신문을 배달하며 미국수의사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10여 년 전, 또 다른 수의사는 PAVE 과정을 거쳐 미국에서 개원을 준비하며 ‘정착’이라는 단어를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펜실베니아의 로테이션 병동에서는 한국 출신 수의사 부부가 보호자 상담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들은 같은 질문 위에 서 있습니다. 이민 수의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벳투더퓨처:이민 수의사]편에서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민 수의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길 위에 놓인 미래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미국수의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명찬·정현선 부부(1부)와 10년차 이기은 원장(2부), 30년차 윤기종 원장(3부)을 차례로 만납니다.

(왼쪽부터) 김명찬·정현선 부부, 이기은 원장, 윤기종 원장

그 첫 번째 만남은 김명찬·정현선 부부입니다. 두 수의사는 함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PAVE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안녕하세요. 전북대 13학번 김명찬입니다. 여기에서는 타일러(Tyler)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요. 2019년에 졸업 후 2022년까지 공중방역수의사로 근무했고, 그 해부터 미국 수의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오기까지 약 2년 정도 준비했고, 현재는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수의대에서 PAVE 과정을 진행 중입니다.

정: 안녕하세요. 저도 전북대 13학번 정현선입니다. 2019년 졸업 후 바로 동대학원 내과에서 2년간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로컬 병원에서 약 3년간 근무하며 미국 수의사 준비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명찬 선생님과 결혼하게 되었고, 지금은 함께 유펜에서 PAVE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김: 본과 3학년 때, 미국에 먼저 진출하신 한인 수의사 선배님들이 학부생들을 초청해 실습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다양한 케이스와 체계적인 진료 시스템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임상 환경도 인상적이었지만 경제적인 보상 역시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공중방역수의사로 지내는 동안에도 그 경험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고, 이후 아내인 정현선 선생님의 제안으로 다시 미국 도전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습니다.

정: 저 역시 학부 시절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임상을 경험했어요. 막연히 ‘언젠가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내과 석사를 마치고 나니 앞으로 어떤 수의사의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한국에서의 삶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제 개인적인 성장 측면에서는 조금 더 도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예전부터 동경했던 미국의 선진적인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결심한 뒤에는 바로 익산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다니며 아이엘츠 학원부터 등록했죠. 익산에서 서울까지 매일 KTX를 타고 다니며 준비를 본격화 했었습니다.

정: 미국 수의사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PAVE와 ECFVG 두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먼저 저희가 준비 중인 PAVE(Program for the Assessment of Veterinary Education Equivalence) 과정은 American Association of Veterinary State Boards에서 운영하는 해외 수의대 졸업자 검증 프로그램입니다.

크게 ① IELTS 등 영어 성적 제출 ② QSE(Qualifying Science Examination)라는 기초과학시험 ③ 미국 수의대에서 4학년 clinical year(로테이션) 이수 ④ 미국수의사 국가시험인 NAVLE 통과까지 4단계로 진행됩니다.

NAVLE는 로테이션 전이나 중간에 응시할 수 있어, 최근에는 로테이션에 집중하기 위해 미리 시험을 마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ECFVG(Educational Commission for Foreign Veterinary Graduates) 과정입니다. 영어시험과 BCSE라는 기초과학시험까지는 비슷하지만, PAVE처럼 미국 수의대에서 1년을 보내는 대신 CPE(Clinical Proficiency Examination)라는 2~3일간의 실기시험을 통과하면 됩니다.

겉으로 보면 ECFVG가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PAVE의 경우 미국 수의대에 등록하게 되면서 졸업 후 1년간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로 합법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관련 정책 변화와 맞물려 안정적인 고용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PAVE 과정에 대한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한 학교 과정을 통해 미국 임상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김명찬·정현선 부부

김: 한국에서 본과 4학년 때 로테이션을 할 때는, 임상 환경상 학생이 주도적으로 환자를 맡기보다는 옵저버 역할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학생이 직접 케이스를 맡아 보호자와 소통하고, 플랜을 세워야 합니다.

물론 인턴이나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항상 더블체크를 해주시기 때문에 ‘혼자 책임진다’는 부담보다는, 안전한 환경에서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더 커요. 보호자분들도 대학병원 시스템을 잘 이해해주셔서 학생 진료에 대한 신뢰가 있는 편이고요. 그래서 요즘은 배우는 데 집중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재미있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생활 면에서는 생각보다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저희가 다니는 유펜이 필라델피아에 있다 보니, 도시 규모나 생활비도 한국의 대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요.

정: 저도 학교가 저희를 굉장히 환영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 도착했을 때, 학교에서 저희 이름 앞에 ‘Dr.’를 붙여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이메일을 보내주셨는데 그게 인상 깊었어요. 외국인이라는 긴장감이 있었는데, 수의사로서는 인정받다 보니 그 순간 많이 안심됐죠.

로테이션을 함께 도는 유펜 동기들도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저를 자연스럽게 도와줬고, 학교에서도 스케줄을 짤 때 적응을 고려해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과부터 시작하도록 배려해주셨어요.

그리고 사소하지만 재밌는 이야기로, 한국에서는 미국 학생들이 ‘런쳐블’이라는 간편식을 먹는다고 하면 점심이 부실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도 지금 그걸 먹으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생각보다 맛있더라고요(웃음).

정: 아직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하루에 쓸 수 있는 영어 총량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웃음).

특히 소동물 내과나 대동물 외과처럼 힘들다고 알려진 로테이션을 돌 때는 아침 6시부터 나와 처치를 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많이 지칩니다. 잠이 부족해지면 영어가 더 잘 안 나오고요. 아무래도 체력과 언어가 함께 떨어지는 순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몰토크는 아직도 계속 연습 중입니다.

김: 저는 정형외과 로테이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보호자 응대를 맡아야 했거든요.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입된 느낌이라 많이 당황했습니다.

다행히 함께 로테이션을 돌던 친구가 정말 친절하게 도와줘서 큰 위기는 넘겼지만, 끝나고 나서는 ‘이렇게까지 못 알아들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좌절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로테이션 중반을 지나면서, 오히려 아래 학년 학생들에게 시스템을 설명해줄 정도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때의 좌절이 있었기에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명찬 수의사

김: 테크니션 선생님들의 역할 범위가 굉장히 넓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채혈처럼 침습적인 처치를 담당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예를 들어 닥터가 “쿠싱이 의심된다”고 말하면 필요한 진단 검사들을 테크니션이 먼저 세팅해두는 시스템은 꽤 놀라웠습니다. 팀 기반 진료가 정말 잘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 저는 분위기가 상당히 수평적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물론 보이지 않는 위계는 있겠지만, 라운딩 때 교수님 자리가 없다고 해서 학생들이 자동적으로 의자를 양보하는 분위기는 아니더라고요. 처음엔 조금 놀랐어요(웃음).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완벽한 진료를 위해 교수님들 역시 테크니션의 협조를 구하며 존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직군 간 역할이 명확하면서도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는 문화가 느껴졌어요.

한편으로는 한국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빠른지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워크인으로 건강검진이 가능하고, 검사 결과도 비교적 빠르게 안내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혈액검사를 해도 “결과가 나오면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바로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속도의 차이를 체감하면서 문화적인 차이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정: 최근 미국 상황이 어렵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비자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정부가 바뀌면서 이민 정책과 학생·연수 비자 심사가 더 엄격해졌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실제로 입학 승인을 받고도 대사관 인터뷰에서 비자가 거절된 사례들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국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PAVE나 ECFVG 같은 해외 수의사 경로 역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은 체감하고 있습니다. 제도 자체의 변화라기보다는, 외부 환경이 더 불안정해졌다는 느낌이 커요.

김: 경쟁도 확실히 치열해졌습니다. PAVE가 점점 알려지면서 학부생 때부터 영어와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이 늘어났다고 들었어요. 예전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준비한 지원자들이 많아졌고, 경험이나 스펙도 전반적으로 상향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도전해보자’는 마음만으로는 어렵고, 장기적인 계획과 준비가 더 중요해진 시기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김: 영어입니다. 정말 영어예요(웃음). 단순히 점수를 넘기는 수준이 아니라, 원어민처럼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의학 지식을 영어로 표현할 때도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교수님께 설명할 때, 동료와 토론할 때, 보호자에게 설명할 때 각각 다른 버전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제가 있는 유펜에서도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 중 하나가 영어의 유창성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을 정도입니다. 시험 준비만큼이나 영어 실력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저는 ‘왜 미국에 가고 싶은지’가 분명한 분들께 추천하고 싶어요. 막연히 “미국에 가면 돈을 잘 번다더라”는 이유만으로 오면, 생각보다 힘든 과정에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주권을 얻기 전까지도, 또 그 이후에 자리 잡기까지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조언 받았습니다. 그 과정을 견디려면 목표가 명확해야 하더라고요.

김: 이제는 영어 많이 늘었니(웃음)?

그때쯤이면 경제적으로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고 더 나아가 베풀 수 있는 수준이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제 모교인 전북대 농구동아리에도 작은 지원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것처럼, 다시 나누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네요.

정: 미국에 오기로 결심했을 때 생각했던 ‘성장’의 기준은 아마 그때와는 조금 달라져 있을 것 같아요. 수의사로서의 성장뿐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더 단단해져 있지 않을까요.

낯선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면서 제 자리에서 묵묵히 잘 살아가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수의사 적응을 넘어 개원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기은 원장을 [2부](보러가기)에서 만납니다<편집자주>

이한희 기자 hansoncall911@gmail.com

[벳투더퓨처:이민 수의사①] PAVE로 도전 시작한 김명찬·정현선 수의사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