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116. 블러드 벤저민(Blood Benjamin Donald). 콜로라도대학교 수의과대학 졸업, 공군 중령으로 한국 파견, 미 군정청 보건후생부 수석고문, 수의국 설치 기여, 서울대 수의학과 분리 기여, 미국식 수의임상 교육 전파, PAHO 수석 수의사, WHO 천연두 퇴치 자문관, ACVPM 우수전문의상
1914년 6월 11일 미국 인디애나주 와바시(Wabash)에서 출생하였다. 1939년 콜로라도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디애나에서 잠시 동물병원을 운영하였으며, 1946년 6~7월경 공군 중령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같은 해 11월 17일 전역(예비역 대령)한 후에도 서울에 남아 미 군정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7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서울대학교 수의학부는 1947년 9월에 설립되었고 현 수의계 원로들은 이 무렵에 그를 만났기 때문에 그가 미국에서 민간인으로 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의 아들 브라이언(Brian)은 한국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하여 “미 군정청 보건후생부 수석 고문(Chief Advisor on Veterinary Affairs to the Department of Public Health and Welfare of the U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이라고 하였다.
공군 중령 블러드가 서울에 도착한 전후의 상황을 살펴보면 ①일제강점기 경무국 위생과(경무국 상위 직책은 조선총독)가 담당하던 위생업무를 미 군정청은 보건후생국에 수의과를 신설하여 수행하도록 하였다(1945. 11. 7.). 다음 해에는 ②수의국(위생과, 수의과, 방역과)을 설치하였다(1946. 9.). 이 수의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다음 해(1949. 4. 8.)에 “농림부 농산국 수의과가 보건후생부 수의국을 흡수한다.”라는 법 조항에 따라 농림부 수의과로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③1947년 7월 8일 서울대학교 이사회 결의에 따라 농과대학 수의축산학과는 수의학과와 축산학과로 분리되고, 수의학과(수의학부)는 서울로 이전되었다. 당시의 이사회 기록을 살펴보면, 이사회는 문교부장, 총장을 포함한 9명의 조선인으로 구성되었다. 서울대학교 교직원과 정부 직원은 임명이사가 될 수 없었으며 각 대학에서 1명씩 추천하였는데, 공대는 유재성(용산공작소 사장), 의대는 이의식(개업의), 농대는 이용훈(전 수원군수) 등이 임명이사로 참여하였다. 당일의 이사회 결의에 따르면, 농과대학 수의학부는 “단과대학으로 승격할 것을 전제로 하고 수원 농과대학으로부터 분리”하기로 하였다.
이 시기 서울대학교 초대 총장 해리 앤스테드(Harry B. Ansted, 1946. 8. 22.~1947. 10. 24. 재임)가 해군 대위(군목, 법학 박사)인 데다 1946년 3월(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개최)부터 1947년 5월(남조선 과도정부 선포)까지 미 군정청이 일제 총독부(중앙)기구를 기본으로 하면서 미국식 체제를 도입한 시기였기 때문에, 수의축산을 분리해 수의를 서울로 이전하는 결정이 수월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김교헌의 회고록은 블러드를 “수의대를 창립하고 행정부 기구 개혁을 단행한 장본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방환의 회고록과 존 아널드(John Phillip Arnold)의 보고서에서도 그의 활약상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블러드 혼자의 힘이 아니라 미 군정 공식 라인(수의병과팀)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겠지만, 그가 체류한 2년 동안 한국의 수의학 교육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47년 경성의학전문학교(京醫專)가 사용하던 100평 정도의 건물(현 홍익대학교 대학로 캠퍼스)을 인수하고 손수 설계하여 계단교실(임상강의실), 대소 동물입원실, 대동물 진료용 보정틀, 약품 창고, 조제실, 소동물 처치실, 교수실(임상 검사실 겸용)을 만들고 개보수해 동물병원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사용된 자재와 약품, 진료 기구, 현미경을 포함한 간단한 검사 기구, 영문 타자기 등은 미국에서 들여왔으며 수의장교인 브루크(Brook) 및 배큘라(Vacula) 대위, 3학년 학생 4명(1회 졸업생)이 그를 적극 도왔다(이 동물병원은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중 퇴각하던 인민군의 방화로 소실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의 수의임상교육은 독일식(판서식)이라서 말 임상 위주 교육이었고 미국식 임상교육은 산업(농장) 동물 및 소동물 실습식 교육이었다. 수의사 강습회를 예로 들면, 일제강점기의 임상 강습회는 말의 개복술, 말의 제왕절개술, 말의 거세술, 말의 파행 진단 또는 말 산통의 진료 등이었는데 비하여, 미 군정 하에서 실시된 강습회는 소 제1위 절개술, 소의 제왕절개술, 소의 제각술, 소의 거세술, 개의 난소 적출술, 개의 단이, 단미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일본식 수의임상과 미국식 수의임상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일본식 수의임상 교육에서 미국식 수의임상 교육으로 새로운 전환점의 문을 연 사람이 바로 벤저민 블러드였다.
또한, 그는 1947년 후반 돼지열병이 크게 유행하였을 때 현지답사를 직접 다녔고,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였다.
수의사 면허(DVM)와 보건학 석사(MPH) 학위를 소지한 그는 한국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 PAHO(Pan American Health Organization)에서 1964년까지 수석 수의사로 활동하였다. 그 후 PHS(Public Health Service)로 옮겨 국제 분야 부국장으로 있다가 다시 NIH로 옮겨 IPSC(Interagency Primate Steering Committee) 위원장을 맡아 영장류 연구와 보전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미국수의사회는 1978년 그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1979년 NIH를 정년으로 퇴임한 후에는 WHO의 천연두 퇴치 자문관으로 봉사하였다. 1986년 ACVPM(American College of Veterinary Preventive Medicine)으로부터 ‘우수전문의상(Distinguished Diplomate Award)’을 받았다. 1992년 1월 20일 버지니아주 매클레인에 있는 자택에서 영면하였다. 글쓴이_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