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안락사가 상품이 될 수 있나’ 수의대생들의 생각은

첫 수의인문사회학 컨퍼런스, 수의 역사∙윤리∙동물복지 조명..’안락사 대행’ 이슈에 학생 토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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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가 수의대생을 위한 수의인문사회학 컨퍼런스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지난달 25일 서울대 수의대 스코필드홀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는 전국 수의대생 100명이 운집했다.

수의인문사회학에 초점을 맞춘 학생 대상 교육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온라인으로 접수한 참가신청이 하루 만에 매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행사를 주최한 수대협 3기 집행부 윤서현 부회장은 “수의인문사회에 대한 데일리벳 인터뷰를 계기로 준비한 행사”라며 “학생들이 수의인문사회학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수의역사수의윤리동물복지 수업 맛보기

동물 대하는 시각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 온 수의사

수의사가 동물복지 배워야 하는 이유에 주목

수의인문사회학 교실이 마련된 수의대는 현재로선 서울대뿐이다. 서울대는 수의대생들의 전문직업성 함양을 돕기 위한 전공수업들을 예과∙본과에 걸쳐 배치하고 있다.

타 대학들도 동물복지 등에 대한 수업을 개설하기도 하지만, 체계적인 교육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컨퍼런스는 수의역사, 수의윤리, 동물복지를 뼈대로 구성했다. 각각의 수업을 맛볼 수 있는 특강을 진행하는 한편, 수의윤리 이슈에 대한 의사결정을 체험해볼 수 있는 토론수업이 이어졌다.

강연은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교실 천명선 교수팀이 맡았다. 천명선 교수와 정예찬 박사, 최태규 수의사가 각각 수의역사∙수의윤리∙동물복지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첫 연자로 나선 천명선 교수(사진)는 예과 과목인 ‘수의학의 이해’를 축약, 수의학의 역사적 정체성을 조명했다.

동물을 대하는 시각이 변화함에 따라 함께 달라져 온 수의사의 역할을 역사적 관점에서 소개했다.

동물을 영혼을 가진 숭배의 대상으로 보던 토테미즘의 시대부터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가축으로, 종교 속에서 사람보다 열등한 존재로, 과학 연구의 대상으로 이어지며 동물을 치료하는 사람의 모습도 변화했다.

근대 수의학은 의학, 농학, 생물학의 접점에서 발전해왔다. 우역에 대응하고 군마를 돌볼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며 수의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했고, 1762년 리옹 수의학교에서 근대 수의학 교육기관이 출발했다.

천 교수는 “질병에 대한 지식, 질병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라 질병치료의 양상이 변화했다”고 지목했다. 가령 20세기까지만 해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반려동물의 분리불안증은 이제 중요한 치료대상 중 하나가 됐다.

천 교수는 “인간의 치료와 동물의 치료는 다르다. 사람에게 들이는 치료비만큼 동물에게 들이고 싶지 않는다. 모든 문화권, 모든 역사에서 그랬다”면서 “이는 수의학이 가진 어려움이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만큼 창의적으로 고민하고 더 노력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사육곰 생추어리 조성을 위한 곰보금자리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최태규 수의사(사진)는 ‘수의사가 동물복지를 배워야 하는 이유’에 주목했다.

수의사라 해도 동물복지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회생불가능한 환자에게 안락사 옵션을 제시하는 것을 과도하게 주저하거나, 유해동물 박멸에만 몰두하다 동물복지를 심각하게 해치는 방법을 제안하는 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최태규 수의사는 “동물의 복지가 수의사(주치의)의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동물복지 이론의 기초를 다뤘다.

동물복지를 구성하는 요소부터 동물∙자원에 각각 초점을 맞춘 동물복지 평가방식에 대한 최신 지견을 소개했다.

안락사 대행 서비스를 두고 참가학생들이 조별 토론을 벌였다

당신이 안락사 대행 서비스를 제안받는다면?

이날 마지막 세션은 참가생들이 수의인문사회학 이슈에 대해 토의하고 직접 윤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조별토론으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 주제는 안락사 대행 서비스였다. 반려동물 장례업체와 연계해 안락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은 사례를 활용했다. 앞서 대한수의사회지 수의윤리 라운드토론에서도 다룬 바 있다(본지 2023년 1월 13일자 [수의 윤리 라운드토론] 죽여주는 서비스, 괜찮은가요?’).

토론에는 모든 학생들이 4~5명씩 16개조로 나뉘어 참여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본인이 당사자(원장)이라면 장례업체의 제안을 수락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천명선 교수팀 연구원들이 옆에서 학생들의 토론과 결정 과정을 도왔다.

천명선 교수는 학생들에게 윤리 결정을 위한 단계별 과제를 제시했다. 학생들이 조별로 7가지 키워드를 선정하도록 유도했다. 논의과정에서 각 결정에 연관되는 이해당사자가 누군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본 후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이날 학생들이 토론으로 도출한 윤리 결정 키워드
(자료 :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 교실)

토론 결과 윤리 결정 키워드로는 주로 ’동물‘, ‘삶의 질’, ‘판단‘, ‘상품화‘, ‘안락사’, ‘책임감’ 등이 제시됐다.

최종 결정으로는 1개조가 수락, 9개조가 거절을 선택했다. 나머지 6개조는 ‘안락사의 결정권을 수의사에게 부여한다’는 등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토론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천명선 교수는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장례업체가 결정한 안락사를 단순히 수행하는 수의사는 전문가가 아닌 도구적 기술자에 불과하다”면서 “의료행위라 하더라도 생명을 거두는 안락사는 적극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기에 적절한 수단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학생들은 대체로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어 한다. 해결책을 찾아 제시하기보다 결정을 내리고 그에 맞는 대안을 만들면 된다“고 조언했다.

이날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안락사와 수의사의 윤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보냈다. 토론이 끝난 후, 이에 관해 깊이 있는 질의응답이 이어지기도 했다.

행사에 참여한 충북대 주채원(본3) 학생은 “그동안 이런 기회가 없었는데, 다양한 학교에서 온 수의대 학생들과 직접 수의 윤리에 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어서 너무 뜻깊었다”며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홍진서 기자 vivian1009@naver.com

‘동물 안락사가 상품이 될 수 있나’ 수의대생들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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