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납 백신 늘면서, 동물병원은 백신 냉장고를 버렸다

관납 백신 증가에 동물병원 경영 직접적 피해 “농장동물 백신도 처방제에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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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관납백신 공급정책을 감축·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동물용의약품을 직접 사주다 보니 오남용이 우려될 정도로 비효율적인데다, 동물병원의 경영에도 타격을 입힌다는 것이다.

반려동물의 백신이 점차 수의사 처방대상으로 관리되는 것과 발맞춰, 농장동물의 백신도 처방제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돼지수의사회(회장 최종영)는 16일 더케이호텔 서울에서 2023년도 수의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8대방역시설부터 동물약품 불법유통, 관납백신, 3종 가축전염병 관리, 돼지의 도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과제를 조명했다.

김종식 이엘동물병원장

동물병원이 공급해야 할 약의 절반 이상을 관납이 차지한다”

관납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김종식 이엘동물병원장은 “관납 품목이 다양해지고 수량도 많아지면서, 동물약품을 취급하는 동물병원의 매출이 상당히 감소했다”며 “저도 백신 냉장고를 치웠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관에서 공짜로 백신을 나눠 주니, 병원은 백신을 판매할 수 없게 된다. 김종식 원장은 호남지역에서 활동하는 가금수의사다.

가금에서만 봐도 관납백신은 무섭게 증가했다. 2천년대 초기 뉴캣슬병(ND) 백신 정도였던 관납백신은 전염성기관염(IB), 감보로(IBD), 저병원성 AI, 가금티푸스 등으로 다양화됐다.

김종식 원장은 “동물병원이 공급해야 할 의약품의 절반 이상을 관에서 주고 있는 셈”이라며 “지역 동물병원에 큰 경제적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약품이라는 무기를 빼앗긴 수의사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농장의 백신프로그램 운영에도 관납이 악영향을 끼친다.

농가별로 질병 발생양상이 다른 만큼 백신제품이나 활용방법을 달리 해야 좋지만, 관납백신이 따로 있다 보니 굳이 다른 옵션을 선택하기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송치용 가금수의사회장도 “원래 육계 전문 수의사였는데, 이제는 진료를 하기 어렵다. 출장비도 안 나온다”면서 “관납 백신의 대량공급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종식 원장은 “과거와 달리 요즘은 관납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수의사들이 모이면 관납 문제가 항상 도마에 오른다. 다들 폐지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백신은 처방제 확대..농장동물 백신도 포함돼야”

농장 진료하는 수의사들 모였는데..처방전 써보신 분? “…”

이날 포럼에 모인 수의사들은 농장동물 백신을 수의사처방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종식 원장은 “개·고양이의 백신은 수의사처방제에 거의 들어갔는데 농장동물 백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처방대상으로 지정된 동물용 백신 26종 중 21종이 개·고양이용이다. 지정까지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개 4종 종합백신(DHPPi)을 포함해 현장에서 다수 사용하면 백신들도 포함되어 있어 실효적이다.

반면, 농장동물용은 소 브루셀라·탄저·기종저, 돼지 일본뇌염뿐이다. 많이 사용한다고 볼 수 없는 백신들이다. 구제역은 물론 가금 ND·저병원성 AI, 돼지 PRRS·PCV2 등 주요한 백신들은 모두 빠져 있다.

이들 백신을 처방제에 포함시켜 수의사 처방 하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농장동물 수의사들의 주장이다. 전염병 백신이라고 해서 처방이 필요하지 않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날 포럼에 참석한 공직 수의사도 “사람에서 백신을 접종할 때 의사의 판단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동물에서도 백신은 수의사 처방대상이어야 한다”고 지목했다.

이주용 내포동물병원장

이와 함께 수의사처방제 운영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동물약품 판매업체와 결탁한 수의사들의 불법 처방에서 벗어나, 실제 현장 임상수의사들이 처방을 내리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처방제의 문제는 포럼 현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돼지·가금을 현장에서 진료하는 수의사들이 모였는데, 정작 처방전을 발행해본 수의사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 돼지수의사는 “사실 진료한 농장에는 ‘어떤 약을 써야 한다’고 말씀만 드린다. 처방전은 농장이 다른 곳(약품판매업소)에서 받는다”며 “그러면 제가 원했던 제품이 아닌 다른 제품이 들어와 있고, 또 바꾸고 하는데 시간을 소모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약을 주문하면 형식적으로 처방전을 만드는 환경이 아예 자리잡다 보니, 실제로 진료를 한 수의사조차 처방전을 발행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처방제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 이주용 내포동물병원장은 “가짜처방전, 대리처방, 면허 대여 등 불법이 난무한다”며 “수의사의 내부 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예 1명의 수의사가 처방할 수 있는 상한을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eVET) 상에 설정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농장을 직접 방문해 진료한 후 처방을 내리려면, 어차피 과도하게 많은 농장에 처방을 내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관납 백신 늘면서, 동물병원은 백신 냉장고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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