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안락사, 생명윤리의 딜레마

[동변과 함께하는 동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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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억울이가 살고 싶으면 어떡해!” 아밀로이드증으로 죽어가는 고양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여동생의 절규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동생은 길에서 발견한 아픈 고양이를 구조해 수천만 원의 치료비를 들였지만, 결국 몇 달 만에 고양이는 생을 마감했다. 며칠마다 반복되는 수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져, 수의사도, 나도 조심스럽게 안락사를 언급했지만, 동생은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억울이의 생명을 놓지 않았다.

과연 억울이의 생각은 어땠을까?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 그만 편안해지고 싶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힘을 다해 삶을 붙잡고 싶었을까? 우리는 영원히 그 답을 알 수 없다.

인간의 존엄사를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당사자의 자발적 의사’다. 하지만 말이 없는 동물의 안락사는 결국 인간의 판단에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 반려동물 안락사가 지닌 가장 큰 윤리적 딜레마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맹견이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동물보호법 제18조 제4항), 동물보호센터에서 보호조치 중인 동물에게 질병 등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제46조)에 ‘마취 등을 통하여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인도적인 방법으로 처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물실험이 끝난 후 해당 동물이 회복할 수 없거나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신속하게 고통을 주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처리’하도록 정하고 있다(제47조 제6항).

그 외 우리나라 동물법은 안락사에 관하여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동물을 안락사시킨 경우 기본적으로 동물보호법 제10조에 따른 동물학대 해당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즉,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나 재산상의 피해 방지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의 문제이다.

지난 2019년 우리나라의 한 동물단체에서 보호동물들에 대한 안락사를 실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가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보호소에 장기간 입소된 동물, 입양이 불가능한 동물, 병원비가 많이 나오는 동물 98마리를 안락사한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목적인 동물단체가 오히려 생명을 끊었다는 모순적 상황은 큰 충격을 주었다. 위와 같은 사유가 동물을 죽일 정당한 사유일 리 없었고, 법원 역시 이를 동물학대로 판단하였다.

그렇다면, 수의사에 의한 반려동물 안락사는 어떠할까? 이 역시 현행법 하에서는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당한 사유’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동물보호법 시행령 제6조 제1항 제2호는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나 재산상의 피해 방지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로서 “허가, 면허 등에 따른 행위를 하는 경우”를 정하고 있어, 일응 형식적으로 수의사 면허만 있다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안락사가 허용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당한 사유 없는 임의적 동물 살해를 금지하고 있는 동물보호법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그리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의사는 전문가로서 동물의 질병 상태와 예후를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동물이 회복 불가능한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거나,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안락사는 하나의 의료적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객관적인 기준을 상세히 정할 필요가 있으며, 그 판단기준은 무엇보다 ‘동물의 복리’가 되어야 한다.

영국의 경우 왕립수의사협회(RCVS)가 제정한 수의사 행동강령(Code of Professional Conduct)에서 안락사의 요건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수의사는 질병이나 부상의 정도와 성격, 다른 치료 옵션의 가능성, 치료 후 예후와 삶의 질, 치료 성공 가능성, 동물의 나이와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하여 보호자와 충분한 상담을 거친 후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고통 없는 죽음’으로서의 안락사를 결정할 수 있다. 호주수의사협회(Australian Veterinary Association, AVA) 역시 안락사에 관하여 고통, 괴로움이 관리 가능한 수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있을 때, 동물의 건강이나 복지가 회복 불가능하게 손상된 경우 등 자세한 정책을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기준을 참고하여, 수의사의 안락사 결정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내용으로는 안락사는 ‘동물의 이익’을 위해서만 정당화될 것, 객관적인 의학적 판단이 전제될 것, 보호자의 충분한 이해와 동의가 필요할 것, 그 과정은 인도적이어야 할 것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수의사의 판단을 돕기 위한 객관적 기준도 필요하다. 예컨대 동물의 고통 정도 평가 지표, 예후 판단 기준, 보호자 상담 프로토콜, 안락사 시행 방법에 대한 표준 절차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수의사를 보호하는 동시에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권익도 보장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반려동물 안락사 문제는 단순히 법적 기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윤리적 문제다. 동물의 복지, 보호자의 의사, 수의사의 전문적 판단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선진국들의 사례를 참고하되,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합리적인 기준을 수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의사, 동물보호단체, 법률가, 윤리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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