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태어나서

[동변과 함께하는 동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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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변과 함께하는 동물법] 엄마로 태어나서 : 채수지 변호사(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작가가 닭, 돼지, 개 농장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만난 동물과 노동환경에 관해 기록한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책이 있다. 그 제목을 빌려, 그중에서도 ‘엄마로 태어난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일 년 전 엄마가 되었다. 처음 겪는 임신과 출산은 그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일이었다. 임신 기간 내내 메스꺼움, 빈뇨, 요통, 변비, 감정 기복, 우울 등 크고 작은 신체적·정신적 불편함과 싸워야 했고, 후기에 이르러서는 가만히 누워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출산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이후 산후조리 과정에서도 통증은 계속됐으며 일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안락한 침대에서 푹신한 바디필로우를 베고 누워도, 위생이 보장된 병원에서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출산을 해도, 산후조리원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영양이 가득한 식사를 하고 몸을 풀어도 이렇게나 힘든데.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 평생 감금되어 이 일을 반복하는 존재들이 있다.

모돈(母豚)이라고 불리는 엄마 돼지는 평생 자신의 몸 크기만 한 케이지(이를 ‘스톨 stall’이라 한다)에 감금된다. 스톨에서 엄마 돼지는 몸을 좌우로 돌릴 수조차 없고, 그저 눕고 일어서는 동작만 할 수 있다. 엄마 돼지는 이 스톨 안에서 인공수정을 당해 임신하고, 출산하며, 새끼 돼지들(자돈)에게 젖까지 먹이지만 그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아이들을 품에 안지 못한다. 엄마 돼지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누워 젖을 내어주는 일뿐이다. 아이에게 살을 맞대고, 냄새를 맡고, 쓰다듬어주고, 품어주고, 본능과 발달에 맞게 가르쳐 독립시키는 평범한 일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얼마 후 엄마 돼지는 새끼들을 빼앗기고 또다시 임신하며, 이 과정을 1년에 2회, 약 3~4년간 합계 7회 반복한 후에 도살장으로 간다. 물론 3년 이내에 살처분 당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름도 너무나 직관적인 ‘젖소’, 나는 막연히 자연상태에서 그냥 젖이 나오는 소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젖은 아이를 낳아야 나온다. 출산하면 저절로 원활한 수유를 할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나의 경우 꽉 막힌 유선을 뚫어줘야 했고, 종종 젖몸살로 고생하며 마사지도 받아야 했다. 그래도 내 아기를 위해 참고 견뎠다. 그런데 젖소는 오로지 인간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강제로 임신당하여 출산 직후 아이도, 젖도 빼앗긴다. 김한민 작가는 「아무튼 비건」에서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젖을 먹는, 그것도 다른 동물의 젖을 빼앗아 먹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라고 했다. 한 번 출산하는 것도 힘든데, 젖소는 이를 평생 반복하며 인공착유기에 의해 유축 당하다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도살장으로 보내진다.

유럽연합은 2012년부터 산란계 밀집 사육의 원흉인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를 금지했고(이사회 지침 1999/74/EC), 2013년부터 모돈에 대한 스톨 사육을 금지했다(이사회 지침 2001/88/EC). 미국은 2008년 매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6개 주에서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 사육을 금지했고,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등 10개 주에서 돼지 스톨을 금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9월부터 산란계의 마리당 가축사육시설 면적이 마리당 0.05㎡에서 0.075㎡로 늘었고, 다만 기존에 산란계 사육업의 허가를 받은 자는 2025년 8월 31일까지 적용이 유예되었다(축산법 제22조 제2항, 축산법 시행령 제14조 제2항, [별표 1] 제1호 나목 4)가)).

또 올해부터는 임신돈의 스톨 사육을 금지하고, 사육업자는 임신돈이 자연스러운 자세로 일어나거나 눕거나 움직이는 등 일상적인 동작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 군사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다만 기존에 허가를 받은 자는 2029년 12월 31일까지 적용이 유예되었다(축산법 제22조 제2항, 축산법 시행령 제14조 제2항, [별표 1] 제2호 가목 4)나)).

이와 같이 우리나라도 점차 축산 동물의 복지가 나아지고 있기는 하나, 동물을 지각 있는 존재(sentient beings)로 인정하고 종 특성에 맞는 본능의 실현과 실질적인 복지를 고려하고자 하는 세계적인 추세 및 기준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물론 동물복지가 곧 축산 동물의 완전한 행복과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생 스톨에 감금하는 식의 극심한 고통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제도는 필요할 것이다.

서양의 마더구스(mother goose, 전래 동요)에는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Old Macdonald Had A Farm’이라는 노래가 있다. 맥도날드 아저씨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소, 돼지, 양 등의 동물들이 우는 소리를 재밌게 표현한 동요인데, 슬프게도 이런 가족 농장은 현실 세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책이든 장난감이든 항상 행복해 보이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 동요와 동화를 접하며 자란 사람들은 돼지, 소 등을 떠올릴 때 나처럼 막연히 푸른 초원의 엄마와 새끼 동물들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고기를 낳기 위해 태어나 고통당하는 엄마 동물들이 있다. 자기 아이 냄새 한 번 맡지도, 얼굴 한 번 정면으로 보지도,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는 건 과연 어느 정도의 슬픔일까. 그저 작은 스톨에 누워 아이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부디 젖을 잘 빨아주기를, 배불리 먹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어미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갓 태어난 아기를 빼앗기는 심정은 또 어떨까. 그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음을 기억하고, 함께 요구하고 감시하면 좋겠다. 돌아오는 말복에는 영양 가득한 채식 한 끼 실천해보는 것도 작은 실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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