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곰은 철창 안에서 겨울잠에 들지 않았다

구조한 사육곰을 강제로 재울 것인가 고민한 곰보금자리프로젝트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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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반달가슴곰은 겨울잠을 잔다. 그렇다면 우리에 갇힌 사육곰도 겨울잠을 잘까. 겨울잠을 꼭 자야 할까.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최태규 수의사(사진)는 15일 서울대 수의대에서 열린 인간동물연구네트워크 학술대회에서 ‘곰은 생츄어리에서 겨울잠을 잘까?: 회복적 정의로서의 곰 생츄어리’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야생에선 먹이 없어 겨울잠 자는 곰

사육곰도 번식 목적으로 강제로 겨울잠 유도했지만..

구조한 사육곰도 재워야 하나

학술대회는 ‘경계 위 인간-동물 관계’를 주제로 반려동물부터 곰, 야생조류, 동물축제 등 다양한 측면의 관계를 조명했다.

이중 곰과 사람의 관계는 부침을 거듭했다. 최태규 수의사는 “오랫동안 인간과 곰이 맺었던 관계는 빠른 시간 안에 소거됐고 곰발바닥과 쓸개(웅담)을 찾는 자본주의적 폭력만 남았다”면서 “하지만 결국 웅담이 의미를 잃고 보신문화가 천박한 과거로 변화한 반면, 곰의 생태적 지위와 동물복지의 중요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반달가슴곰은 잡식이지만 주로 도토리나 풀, 곤충 등을 먹는다. 겨울에는 이렇다할 먹이가 없다. 그래서 겨울잠을 자도록 진화했다.

사육곰은 사료를 먹는다. 농장주가 주기만 하면 먹이가 모자랄 일은 없다. 하지만 사육곰 산업이 활발하던 시절엔 강제로 겨울잠을 유도했다. 그래야 번식하여 새끼를 낳기 때문이다.

최태규 수의사는 “굴에 가두어 며칠 굶기면 잠에 드는 방식”이라면서 “번식주기를 단축하기 위해 새끼를 어미로부터 빨리 분리하고, 이듬해 겨울에 다시 잠을 재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정부가 사육곰 증식 억제를 위해 중성화사업을 실시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더 이상 번식할 수 없으니 굳이 강제로 재울 필요도 사라졌다.

동물권단체 카라와 함께 지난해 한 농장에서 기르던 사육곰을 구조(매입)해 돌보고 있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겨울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겨울잠을 재울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서다.

겨울잠을 자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굶겨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강제로 굶기면서까지 겨울잠을 유도하는 것이 윤리적인지, 동물복지에 부합하는지가 고민거리였다.

프로젝트 활동가들은 일단 살찌우기를 시도했다. 야생에서도 먹이가 풍부한 가을이 되면 식욕이 오르고 체중이 1.5배까지 늘어난다. 비축한 열량으로 겨울잠을 버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야생에서 먹는 도토리나 밤을 줘도, 먹는 개체와 먹지 않는 개체가 나뉘었다. 살이 찌는 곰은 엄청 쪘지만, 안 찌는 곰의 체형은 그대로였다.

최태규 수의사는 “살이 찐 곰들은 더 졸려했지만, 결국 겨울잠을 자진 않았다. 결국 겨울잠을 안 잔 채로 봄이 왔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 거품 목욕을 즐기는 반달가슴곰.
(사진 :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사육곰 문제에 ‘회복적 정의’는 가능한가

야생 방사는 불가능..보다 나은 환경·복지가 회복?

최태규 수의사는 이날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화두로 던졌다. 사육곰 문제에서 회복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 곰에게 ‘회복’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자·가해자의 처벌보다 피해자의 회복, 공동체의 안녕에 초점을 맞춘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피해자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우리에 갇힌 곰을 ‘피해자’로 본다 해도 누구를 가해자로 볼지 애매하긴 하지만, 그 가해자를 처벌한다 한들 곰에게는 의미가 없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웅담 채취를 겪지 않게 하고, 보다 넓은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생츄어리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곰의 복지 향상을 회복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최태규 수의사는 “도토리를 줘도 안 먹는 사육곰도 있다. 사육곰이 야생으로 돌아가는 형태의 회복은 불가능하다”면서 “그 상황 안에서 일상적 복지를 향상시키고, (사육곰을 길러) 잡아먹는 나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회복이라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학술대회의 한 참가자도 “동물과 인간 사이의 화해와 용서는 어렵지만, 피해자인 동물의 복지를 개선하고, 동물과의 관계에 대해 공동체가 더 나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는가가 핵심”이라며 이 같은 논의를 환영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에서 구조한 곰 13마리를 돌보며 생츄어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앞서 해당 사육곰 농장 부지에 100평 규모의 방사장 ‘곰 숲’을 조성하기 위한 기금도 모으고 있다(자세히 보기).

사육곰은 철창 안에서 겨울잠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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