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간·동물·환경 접점에서 수의학의 역사를 논하다|천명선

제45회 세계수의역사학회 학술대회, 이탈리아 브레시아 (45th WAHVM, Brescia,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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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의학과 수의학의 발전 그리고 인간-동물-환경의 접점에서 수의학의 역사를 논하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 교실)

아직도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투박한 중세의 거리와 두오모가 있는 광장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로마 시대 유적까지 안고 있는 단단한 성곽을 만나게 된다.

대개의 유럽 중세 도시들이 그러하듯, 구도심의 외곽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든 성곽이 있다.

하지만 예전의 목적은 역사에서나 찾을 수 있을 뿐, 지금은 도시의 가장 멋진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장소이다.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브레시아 성(좌)에서 내려다본 브레시아 전경(우)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와 베로나의 중간 쯤 위치한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 브레시아에서 세계수의역사학회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브레시아는 도시 차원에서 본 학술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우표와 인장을 발행하고 학술대회 기간 동안 해당 인장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올해로 45회를 맞는 세계수의역사학회(World Association for the History of Veterinary Medicine)는 1964년 독일 하노버에서 독일수의사회의 학술대회의 일환으로 그 첫 학술모임을 개최한 이래로 1976년에 이르러서는 국제학술대회로 면모를 갖추었다. 매년 학술대회를 열다가 1993년부터는 2년에 한 번씩 개최하고 있다.

세계수의역사학회는 각 국의 수의역사학회를 대표하는 학술단체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정식 학술 단체로서 세계수의역사학회에 등록된 수의역사학회를 보유한 국가는 독일, 영국, 스페인, 터키, 스위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일본 등이다.

이탈리아 Foundation for Zooprophylactic and Livestock Initiatives of BRESCIA의 후원으로 Italian Association for the History of Veterinary Medicine and Farriery가 세계수의역사학회와 공동주최로 개최한 이번 학술행사의 주제는 ‘군수의학과 인간-동물-환경의 접점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한국, 미국, 노르웨이 등 20 여개국의 수의역사학자와 관련자들이 참여했다.

브레시아 두오모 베키오(좌)
학회 기념 우표와 인장(우)

학술대회의 문을 연 벨기에 안트워프 대학 볼스(Peter E.J. Bols) 교수의 기조강연은 19세기 나폴레옹의 러시아 진군 이후 군 수의에 초점을 맞춘 수의학 교육 변화를 다루었다.

나폴레옹은 1813년 1월 15일 칙령(Décret impérial sur l’Enseignement et l’Exercice de l’Art vétérinaire)을 통해 기존의 리옹과 파리 이외에 세 곳의 수의학교 신설은 물론 각 학교별 커리큘럼을 두 단계로 나누어 제시했다.

3년 과정인 첫 단계에서는 문법, 해부학, 식물학, 약물학, 장제학, 법규, 동물 질환 치료를 배운다. 2년짜리 심화과정은 알포트 수의과대학에서만 제공됐는데 농촌경제, 농장경영, 동물 가축화, 동물학과 응용 물리와 화학 등을 수학했다.

이와 함께 나폴레옹은 군에 군 수의관의 지위를 신설하기도 했다.

두 번째 기조강연으로 브루노리 키안티(Brunori Chianti L.) 박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드로잉에서 즐겨 표현된 말의 형태학과 해부학적 특성을 다루었다. 

볼스(Peter E.J. Bols) 교수의 기조강연

학술대회에서는 포스터를 포함하여 약 70여 편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특히 식민지 나이지리아의 인간과 가축의 영양불균형의 문제, 18세기 런던에서 유명세를 탔던 “개 수의사” 존 노본(John Norborn), 런던 수의학교를 졸업했지만 면허시험이 금지되어 무자격 상태로 임상의가 되어야 했던 영국 최초의 여성수의사 알렌 커스트(Aleen Cust)에 대한 발표가 관심을 모았다.

현 세계수의역사학회 회장인 영국 링컨 대학의 아비게일 우드(Abigail Woods) 교수는 영국에서 1980년대까지 소의 보행이상이 어떻게 질병으로 자리 잡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찰했다.

질병 자체의 변화와 함께 진단법, 치료법의 변화가 현장 수의사로부터 비롯되고 이것이 학교 교육에 적용되고 결국 질병으로서의 정체성을 얻는 과정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재난형 질병 뿐 아니라 동물과 인간의 일상에서 만나는 질병의 역사 연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전 학회장인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수잔 존스(Susan Jones) 교수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페터 콜메스(Peter Koolmees)교수는 세계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수의역사학 교재 출간 기념으로 “A Concise History of Veterinary Medicine (2022; Cambridge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1017/9781108354929)”를 편찬한 과정과 의의를 발표했다.  

수의역사학 책 집필 과정을 소개한 페터 콜메스 교수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관련 학술단체로 2009년 발족한 수의역사연구회와 2019년 창립된 한국수의인문사회학회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 교실은 농림축산검역본부와 함께 2026년 세계수의사학회 학술대회 개최를 신청한 상태다.

학회 이사회의 결정이 완료되면 2024년 스페인 학술대회에 이어 아시아에서 최초로 수의역사학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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