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이상민 변호사·수의사 |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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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과 분리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법무부가 지난 7월 19일 「제98조의2(동물의 법적 지위)」를 신설하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 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추후 국회에서 표결을 거쳐 통과되면 민법이 제정된 이래 ‘물건’에 불과했던 동물의 법적 지위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신설될 예정인 민법 제98조의2는 총 2개의 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항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간결하고도 명쾌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민법은 「제1편 총칙」 아래 「제2장 인」과 「제3장 법인」을 두어 자연인(自然人)과 법인(法人)만을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으로 하고, 그 다음 「제4장 물건」을 두어 권리와 의무의 대상이 되는 객체에 관한 내용을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존하는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사람(민법 제3조)과 달리 그동안 동물은 단지 ‘물건’으로서 자연인인 사람과 법인의 ‘재산’으로만 취급되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그 「제4장 물건」 아래 제98조의2를 신설하면서도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물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도 아닌 동물의 법적 지위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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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위와 같은 개정이 당장 실생활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법 제98조의2는 제2항을 두어 “동물에 대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제1항을 통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함에 따라 생길 수 있는 법규의 공백을 막기 위한 것이다.

쉽게 말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만 하고 끝내버리면 동물을 매매, 분양하는 거래는 더 이상 민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되는 등의 법적인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별도의 입법이 없다면 동물은 여전히 물건으로 취급받게 되고, 동물이 여전히 물건으로 취급되는 이상 민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민법 개정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사법(私法)의 가장 기본이 되는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함으로써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적인 의식이 함양될 수 있다. 동물과 관련된 새로운 법률의 제정이나 기존 법률의 개정에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의식 함양’이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추가 입법이 없다면 결국 변하는 것은 없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의문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대대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추가 입법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입법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에서는 충분히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법관(판사)의 재량이 작용하는 영역이다. 별도 입법 없이도 법관의 재량으로 동물보호법이 금지하는 동물학대 행위에 대한 처벌 양형이 강화되거나 동물이 죽거나 다친 데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서 위자료 액수가 상향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동물사고에 대한 위자료 액수가 대폭 상향될 필요성이 있다.

우리 법원은 위자료에 대해 인색한 경향이 있다. 사람이 죽거나 다친 일반적인 인신사고(人身事故)에서조차 실무상 통용되는 위자료 액수의 최대치는 여전히 ‘1억 원’이다.

물론 우리 법원도 ‘교환가치(매매비용)를 초과하는 수리비용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물건에 적용되는 법리를 동물에게는 배제하여 동물이 죽거나 다쳐 구입비용을 넘는 수준의 치료비가 지출되는 경우에는 그 치료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재산상 손해’의 영역일 뿐 ‘정신적 손해’의 영역인 위자료 청구에 대해서는 여전히 박한 편이다. 10년이 넘는 기간을 함께 지낸 반려견이 사고로 죽었는데 사고의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정신적 피해로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이 수십만 원에 불과하다면 과연 온당한 것일까.

인신사고 손해배상소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만큼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것은 ‘일실수입’이다.

사람이 죽거나 다친 경우 가해자는 피해자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벌 수 있었을 수입을 피해자에게 배상해주어야 한다.

이 금액이 상당하기에 사람이 죽거나 다친 데 따른 피해는 비록 치료비로 지출한 금액과 인용 가능한 위자료가 얼마 되지 않는 경우나 소송에 따른 시간과 비용 소모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권리구제를 도모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동물은 돈을 벌지 못한다. 따라서 사고를 당하더라도 ‘일실수입’을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없다.

피해를 당한 보호자는 마음이 아픈 것과는 별개로 상대방에게 물을 수 있는 책임이 많아봐야 치료비 몇 백과 이보다 낮은 수준의 위자료 금액뿐이라면 이를 받아내기 위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소송을 진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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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동물사고의 위자료 상향이다. 같이 생활한 기간이 짧게는 수개월에 불과할지라도 탄생을 지켜보고, 함께 먹고 잠들며, 기쁨과 슬픔을 공유한 반려동물의 사고를 지켜본 반려인의 정신적 피해는 결코 적지 않다.

법 개정 후에도 여전히 사람과 동물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인신사고의 1/2, 1/3 수준으로라도 위자료가 상향되어야 반려동물 사고로 피해를 입은 보호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권리구제를 도모할 길이 열릴 것이다.

동물이 물건이 아님을 천명한 이번 민법 개정을 계기로 동물사고의 위자료 액수가 하루 빨리 현실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칼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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