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은 요식행위, 자가진료는 고도화” 돼지수의사회, 농장전담수의사 제도 추진

20년 된 돼지소모성질병 지도지원사업 개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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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소모성질병 지도지원사업 개편이 예고됐다. 가칭 농장전담수의사 제도 도입을 위한 수의사회 활동도 강화될 전망이다.

돼지수의사가 농장에서 제대로 진료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3월 19일(목) 대전 충남대 동물병원에서 열린 한국돼지수의사회 수의포럼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더불어 현장 돼지수의사의 평시 진료에 직결되는 현안도 함께 다뤘다.

한국돼지수의사회 엄길운 회장

ASF를 포함해 돼지 질병 관련 방역사업을 총괄하는 김정주 농식품부 구제역방역과장은 이날 포럼을 찾아 “사업 도입 초기에도 고민했던 농가 자부담 문제, 컨설팅의 통일성 등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개선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업 개편 필요성을 지목했다.

돼지소모성질병 지도지원사업은 양돈농가, 종돈장, 정액처리업체 등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방역·질병·사양·환기 전문가로 구성된 컨설팅 자문단이 생산성 향상을 자문한다. 전문가가 농장을 방문해 사육환경을 살피고, 시료를 채취해 돼지유행성설사병(PED),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을 포함한 소모성질병을 검사한다.

지원 예산은 업체별로 연간 1천만원이다. 자부담 400만원에 정부 예산 600만원을 더한다. 올해는 286개소를 지원하는데 28억 6,000만 원이 투입된다(자부담 포함).

국내에서 돼지소모성질병으로 인한 생산성 피해가 연간 5천억원으로 추산되는 만큼 농장 경영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사업으로 꼽히지만, 고질적인 문제들도 지목된다. 농가 자부담 비용을 받지 않는 방식의 불법이 벌어지거나, 컨설팅의 품질에도 편차가 있다는 것이다.

김정주 과장은 “올해 현장 수의사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양돈농장 질병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이를 통해 소모성질병 관리방안을 구체화하겠다”면서 “사업 자체를 개편하기 위해 돼지수의사회 의견을 구할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돼지수의사회도 자구 노력을 기울인다. 자체 예산을 들여 농장에서의 컨설팅 활동을 면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엄길운 회장은 “지도지원사업 문제는 정부가 수의사에 대한 신뢰를 잃은 계기이기도 하다”면서 4월 이후 ASF 사태가 안정화되면 지도지원사업 관련 수의사회 교육을 별도로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무열 한국돼지수의사회 농장수의제도위원장

박혁 한국돼지수의사회 정책부회장은 “돼지수의사들이 안정적으로 농장에서 진료하며 수입을 창출할 수 있어야 정체성도 확립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돼지수의사들은 현장을 속속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의사처방제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중요한 동물용의약품은 수의사 진료 후 사용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농장은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이라도 사실상 자유롭게 주문해 사용하고, 수의사의 처방전은 요식행위로 전락해 있다.

그간 자가진료는 더 고도화됐다. 농장 스스로 부검하여 가검물을 민간검사기관으로 보낸다. 정밀검사를 받고, 이를 토대로 백신·약물을 선택한다. 이런 관행이 지난해 당진 돼지농장에서 ASF가 늦게 포착되는 빌미를 제공하기까지 했지만, 개선은 요원하다.

돼지수의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앞서 김현섭 전 회장 집행부가 정부와 한돈협회에 돼지수의사 전담 진료를 포함한 ‘한돈케어’를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최종영 전 회장 집행부는 ‘양돈 항생제 수의사 처방 실태조사 및 개선안 제시’ 연구용역을 벌이면서 문제를 구체화했다. 국내 돼지농장 150개소를 대상으로 항생제 사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수의사 진료 후에 항생제를 구입한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본지 2025년 12월 4일 자 ‘수의사처방제 유명무실 사실로..돼지농장 76%가 처방전 없이 항생제 받는다’ 참고)

해당 연구용역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박혁 부회장은 “연구진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농장전담수의사 제도’와 ‘동물용의약품판매업소의 판매내역 전산기록 의무화’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일정 규모 이상의 돼지농장이 수의사와 동물건강 관리 계약을 맺고, 해당 수의사가 농장동물을 진료하면서 항생제를 처방하고 사용량을 모니터링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활동을 축산업 허가 갱신 조건으로 제시하는 덴마크와 비슷한 형태다.

바통은 현 엄길운 회장 집행부가 이어받는다. 김무열 농장수의제도위원장이 이날 포럼 말미의 토론을 이끌었다.

정부·수의사회·농장이 이루는 삼각관계 속에 현장 수의사의 역할을 두고 정부와 수의사회의 공감대가 높아졌지만, 농장에서는 규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 허들로 지목됐다.

농장 경영을 병행하고 있는 한 돼지수의사는 “농장 입장에서도 별 도움이 안 되는 관납 보조사업이 정말 많다. 눈먼 돈으로 무상 배포하고, 창고에서 썩는다”면서 이렇게 낭비되는 비용을 실질적으로 필요한 돼지수의사 진료 지원으로 전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농장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정말 필요한 사업이라면 추진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동물복지 규제도, 8대방역시설도 농가의 호불호를 떠나 필요성을 기반으로 추진됐다는 것이다.

김현섭 전 회장은 “선진국에 걸맞은 사회안전망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이라며 “일정기간 보조해주며 농가가 실질적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돼지수의사회는 제도 명칭 등을 확정해 추진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권역 단위의 시범사업 도입을 추진할 방침이다. 엄길운 회장은 “돼지수의사회원 각각의 의견과 공론화 노력이 필요하다”며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이날 포럼을 찾은 우연철 대한수의사회장은 “돼지수의사가 농장에 들어가서 제대로 진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처방전은 요식행위, 자가진료는 고도화” 돼지수의사회, 농장전담수의사 제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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